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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사선(Ambush)
2001-06-08

1999년, 감독 올리 샤렐라 출연 피터 프란젠 장르 액션(새롬)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필두로 최근 극장개봉하고 있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진주만>까지 2차대전을 소재로한 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마당에, 소리소문도 없이 비디오로 출시된 작품이 있다. 우리에겐 낯선 핀란드영화 <침묵의 사선>이 바로 그것. 영화는 1939년부터 40년까지 치루어졌던 ‘러시아-핀란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핀란드 정권(리스토 라이티 수상)을 불신한 러시아는 쿠시넨이라는 인물을 새로운 핀란드의 지도자로 후원하며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의 혹한과 국제적인 여론에 밀려 서둘러 전쟁을 종식시키게 되고 다만, 핀란드의 일부지역을 평화협정의 대가로 점령한다.

이 처절했던 ‘러시아-핀란드 전쟁’을 다루고 있는 영화 <침묵의 사선>은 실제했던 전쟁의 역사적 사실이나, 스펙터클한 전쟁영화의 장르적 외관에 천착하지는 않는다. 다만 광기와 폭력만이 난무하는 전쟁 속에 불쑥 던져진 핀란드 병사들과 그들이 체감하는 실제적인 공포와 갈등만이 영화 전반에 깊숙이 묻어난다. 영화의 주인공은 페르콜라 중위. 전쟁에 징발돼 약혼녀와 헤어진 그는 우연히도 최전방에서 약혼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간호병으로 투입된 약혼녀가 실수로 근무지에서 이탈해 최전방까지 밀려온 것이다. 페르콜라는 약혼녀를 안전한 후방으로 보낸다는 조건으로 상사에게 적군지역 수색업무를 자원해 나선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후방으로 이동하던 약혼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실의에 빠진다. 그리곤 임무수행이라는 명목으로 몇명의 부하병사들과 철저하게 고립되고 외로운 전투를 치뤄나간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들이 웅장하고 화려한 전투신을 연출함으로써 전쟁 그 자체를 그 스펙터클한 볼거리로만 간주하는 반면, 이 영화는 오히려 전쟁영화라는 장르가 무색할 만큼 조용하고 담담하게 진행된다. 주인공 부대가 적군지역 한복판에 와 있건만 영화가 후반에 이를 때까지 전투 한번 벌어지지 않을뿐더러 수색 나간 병사가 총격을 받아 물 속으로 추락하는 장면에선 그의 눈에 비치는 수면의 물방울만이 몽환적으로 클로즈업된다. 그리곤 시종 고립된 병사들의 두려움에 휩싸인 숨소리와 날카로운 신경전만이 오갈 뿐이다. 그렇다고 테렌스 멜릭의 <씬 레드 라인>처럼 사색적이거나 성찰적인 경지에 이른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 속에 파묻힌 개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매력은 발휘한다. IMDb 평점 7.9. 지금 개봉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들보다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AFI가 주관하는 로스앤젤레스 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