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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 <연애에 관하여> <바다가 육지라면> <웃음>의 김지현 감독
2001-06-08

디지털이다, 생활이다

세 여자가 연애와 실연을 이야기한다. 한 여자는 짝사랑을 정리하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이젠 그 기억들을 웃으며 회고할 수 있다. 또 한 여자는

친구들이 모두 아는 누군가와 비밀리에 연애를 했지만, 그 남자로부터 얼마 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말한다. 세 번째

여자는 그 이별의 이유가 자신 때문임을 알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연애에 관하여>는 대사도 많고 롱테이크도 많은 영화다. 30분 내내 한자리에 앉아 수다떠는 여자들을 줄창 비춘다. 간혹 지난 일을 회상하거나

미래의 어떤 사건을 예시하는 장면이 끼어들긴 하지만, 영화는 장면이나 상황 전환에 인색하다. 그런데 범상치 않은 데가 있다. 여자라면 누구나

익숙한 수다의 자리가 제법 리얼하게 재현됐구나 싶어 동조의 웃음을 보내다 보면, 이별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예상치 않은 순간에 예상치 않은 결과로

풀려나와 놀라게 되고, 세 여자의 현재가 서로에게 과거이자 미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애에 관하여>를 만든 김지현(33) 감독은 “무관해

보이는 낱낱의 이야기들이 결합해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순간, 사는 보람을 느낀다. 의미있는 순간은 같이 나누고 싶은 것 아닌가”라고, 그 의도를

밝힌다. “영화에 대사가 많은 것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 생활의 자연스러운 반영”

이라고도. 이러한 독특한 짜임새 때문에 김지현 감독의 영화는

무수한 작품 속에서도 대번 식별 가능한 것이 돼버린다. 이번 인디포럼에서 김지현 감독 특별전을 마련한 것도, 최근 가장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단편 작가라는 사실에 더하여, 그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새로운 방식들에 주목한 이유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다가 육지라면>(공동 연출 김나영)도

그런 작품 중 하나로, 요리 퍼포먼스 등의 경력이 있는 미술가와 사진작가들이 자기 식대로 라면 끓이는 모습을 TV요리쇼처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인디포럼쪽이 ‘실험영화’로 분류한 이 영화는, 정해진 각본 없이 ‘라면 끓이기’라는 상황만 주고 찍은 일종의 ‘다큐멘터리’다. “라면 끓이는

과정을 통해 산업사회를 사는 작가들이 어떻게 고유의 개인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작업하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동시에 두 남자에게 실연당한 여자의

이야기를 세 사람의 주관적 시점으로 보여준 <웃음>도 지난해 인디포럼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지현 감독은 <바보들의 행진>과 <브레드리스>에 열광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92년 언니가

미술 유학중이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3년간 ESEC에서 유학했다. 95년과 97년에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연작으로 찍었는데,

서툴렀지만 진심이 주는 감동이 있는 영화였다는 자평이다. 99년 디지털 장비와의 만남은 “생각이 행동이 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측면에서,

김지현 감독의 영화 인생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줬다. “필름으로 찍어야 하는 영화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 나오는

밀밭신 같은 거. 내 영화는 디지털과 잘 맞는데, 굳이 많은 돈과 노동력이 드는 필름을 선택할 이유가 있겠는가.” 앞으로 만들 영화도 따로

생각해두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그때 그때 하면서 산다. 미래에는 미래에 할 일이 따로 있다.” 그러니 그가 카메라를 들이댈 새로운 얘깃거리가

무엇일지는, 기다려볼 일이다. 김지현 감독의 특별한 당부 하나. 김 감독은 전두환 노태우가 사면됐을 때 그들의 집에 폭탄테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폭탄 제작비를 대겠다던 친구들 그리고 세종로에서 만세 부르겠다던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신뢰를 잃었다면서, ‘두 전 대통령으로부터

벌금 징수라도 꼭 하자’는 발언으로 개인적인 명예회복과 벌금징수에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그 얘기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글 박은영 기자

▶ 인디포럼

2001의 다섯가지 젊은시선

▶ <연애에

관하여> <바다가 육지라면> <웃음>의 김지현 감독

▶ <오후>의

장명숙

▶ <달이

지고 비가 옵니다>의 박혜민

▶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의 김영남

▶ <`GOD`>의

이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