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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그들이 없는 재난을 상상하라!
옥혜령(LA 통신원) 2004-06-03

라틴계 이민자 문제 다룬 <멕시코인이 없는 하루>

4월 마지막 주, LA 도심 곳곳에 수상쩍은 가두 광고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할리우드에서 한 라티노 시민의 항의로 광고판이 철거되고, 미디어가 앞다퉈 사건을 보도하기에 이르렀는데. 문제의 광고는 “5월13일, 캘리포니아엔 단 한명의 멕시코인도 없을 것이다- 확인 www.adaywithoutamexican.com”이라는 해괴한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법 라티노 이민자들에 대한 주정부의 각종 법안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가운에 이 의문스런 광고는 5월13일 개봉하는 <멕시코인이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의 홍보용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캘리포니아의 모든 라티노(라틴계 사람)가 사라져버렸다면. 라티노 인구가 총인구의 34%에 육박하는 캘리포니아의 상황에선 이것이야말로 재난이다. 이 독특한 재난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캘리포니아의 56개 스크린에서 개봉 첫주 스크린당 평균 1만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트로이>에 이어 흥행 2위에 올랐다. 비록 이 영화가 불법 이민 노동자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한 똑 부러진 해답은 제시하지 않지만 가정부, 식당, 공사장의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하는 불법 이주 노동자부터 교사, 경찰관, LA다저스의 선수들, 주지사에 이르기까지 라티노가 몽땅 사라진 캘리포니아의 아노미 상태를 신랄한 풍자와 코미디를 곁들인 가짜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TV 미디어와 디지털 비디오의 미학을 효과적으로 차용해 일반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비판의 목소리를 들려준 이 영화의 감독은 멕시코 출신의 세르지오 아라우. 마지막 라티노 생존자로 출연한 부인 야렐리 아리즈멘디와 함께 1998년에 만든 동명의 단편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캘리포니아 전 주지사 시절, 불법 이민자들의 사회복지 혜택을 제한하는 법안 187에 대한 비판으로 만들어진 단편영화를 리메이크하기까지 4년이 걸린 것은 제작비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하도 당연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라티노 이민자들의 존재를 “보이게” 하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소망에 관심을 가질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있을 리 만무해서, 개인 자금과 멕시코의 각종 단체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150만달러의 제작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고. 결국 투자, 제작, 배급에 이르기까지 순수 멕시코의 파워로 만들어진 최초의 멕시코산 영어영화가 되었다.

크레딧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처음으로 영화 배급에 참여한 텔레비사 시네(Televisa Cine)사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미디어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멕시코 제일의 미디어 재벌, 텔레비사는 라티노 관객의 파워를 증명한 이번 영화의 흥행 성공에 고무되어 올해 안으로 몇편의 영화를 더 배급할 것이라고. 없을 때 아쉬운 자들의 목소리는 곧 미주 다른 지역으로 확대 개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