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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 <달이 지고 비가 옵니다>의 박혜민
2001-06-08

잃어가는 것들을 위하여

산과 호수에 안겨 있는 작은 시골마을. 할머니와 사는 어린 남매는 외롭고 무료한 일상을 함께 나눈다. 이들의 유희라면, 정성스레 미꾸라지를 키우고, 어린애 간 빼먹는다는 문둥이네를 기웃거리는 것 정도. 문둥이네 집이라고 소문난 폐쇄적인 집에서 남매는 낯선 청년을 만나고, 그가 보여주는 동전 마술에 넋을 잃는다. 함께 소풍을 떠난 숲 속에서 누나는 청년에게 강간당하고, 그날 저녁, 누나가 좋아하던 달은 하늘에서 사라져버린다. 미꾸라지는 천둥치는 날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누나의 말을 믿지 않았던 동생은, 비오던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미꾸라지를 발견한다.

<달이 지고 비가 옵니다>는 나이들면서 잃어가는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과 서글픔을 서정적인 화폭에 담아낸 성장영화다. 재기발랄한 요즘 단편들에 비하면, 이 영화는 고전적이고 내성적이다. 일례로, 순박한 남매는 그들의 유년을 할퀴고 간 상처 앞에서도 의연하다. 박혜민(24) 감독은 아픈 남매를 침묵하게 하는 대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사물에 그들의 심경과 바람을 심어둔다. 소녀가 엄마처럼 의지하던 하얀 초승달이 하늘에서 사라질 때, 빗줄기에 섞여 하늘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려올 때, 상실의 절망감과 남은 희망이 엇갈리던 성장의 기억이, 길고 둔한 통증으로 전해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게 마냥 재밌고 신기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박혜민 감독은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를 떠올려 시나리오를 쓰면서 다소 비극적인 색채를 가미하게 됐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숲 속에 놀러갔는데,

동네 오빠랑 친구 하나가 사라졌다. 어느 누구도 그 얘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그때 그 친구를 따라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조금씩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켜켜이 상처가 쌓여가도, 한 가닥 믿음과 희망을 놓아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감독은 열린 결말의 판타지 속에 숨겨놓았다. <매그놀리아>의 개구리비처럼, 이 영화에도 빗줄기를 타고 미꾸라지가 내려온다. 영화를 본 관객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도, 바로 그 미꾸라지의 의미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도 어떤 위안이나 해결점을 찾지 못한 그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선물 하나를 주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믿음이랄지 희망이랄지. 다 잃은 것만은 아니라고, 그들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충북 보은에서 어린 배우들을 데리고 더러는 ‘몰래 카메라’로 나흘간 촬영한 이 영화는, 영상원 3학년 재학중이던 지난해 일년 내내 매달렸던 워크숍 작품. “그림은 예쁜데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거나, “이미지에 너무 집착한 것 아니냐”는 쓴소리를 듣지만, 그것은 “산문이 아니라 시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연출 의도가 적중했음을 방증하는 반응들이기도 하다.

박혜민 감독은 일찍부터 ‘영화가 내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당찬 영화학도다. 스스로 말주변이 없다고 믿었던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담긴 말을 영화라는 그릇에 담아 수줍게나마 세상에 건네고 소통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안양예고에 진학해 영화와 연극을 공부했고, 용인대 영화과에 2년 다니다가 “통학하기 너무 멀어서” 영상원으로 학교를 옮겼다. <달이 지고 비가 옵니다>는 박혜민 감독이 연출한 네 번째 단편영화. 전에 만든 <소년으로부터>는 어린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을 고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달이 지고 비가 옵니다>와 닮아 있는 영화다. 단편 작업의 매력을 “네 컷 만화의 힘”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현재 졸업작품으로 “인물의 감정선이 내러티브가 되는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온전한 ‘작품’으로는 첫 경험인 이번 작업이 서울여성영화제 대상과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고는 있지만, 박혜민은 감독으로서 자신의 색깔이 정해지지 않았고, 아직 어떤 것도 정해서는 안 될 시점이라며 조심스러워 한다. 다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갈 때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만은 또렷이 전했다.글 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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