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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와 자율

오늘도,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면 우리는 엄청난 시각적 공해의 바다에 침몰하게 된다. 대도시 서울은 무분별한 간판들과 건축물들과 플래카드와 포스터와 각종 홍보물들이 태풍에 휩쓸려온 파괴된 도시의 잔해들처럼 우리의 시각을 괴롭힌다. 이제는 대도시뿐이 아니다. 이 시각적 난장판의 정글에서의 피곤함을 달래보려 교외로 탈출을 시도해도 서울보다 더 심한 시각공해의 첨단을 달리는 위성도시들을 통과해야 하고, 이제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었다 싶은 순간부터 해남의 땅끝까지 가는 동안, 역시나 온갖 무자비한 간판들의 시각적 공격을 피할 길이 없다. 이렇듯 엉망진창인 간판들의 시각공해를 한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에 미술대학이 몇개이고 해마다 디자인과를 졸업하는 인구가 몇이나 되는데 왜 그들 전문가들은 동네간판에 신경쓰지 않는가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알고보면 간판에 대한 규제와 규칙과 법률은 디자인 전문가들이 개입되어 상당히 까다롭게 제정되어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간판이 그 규칙을 무시한 불법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과연 문제는, 규칙을 무시한 행동일까, 아니면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 문제일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우니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는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게 되므로 아름답게 여겨진다.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은, 약속과 규칙과 규제의 질서가 아닌 갈등의 풍경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적절히 갈등하고 있다는 것이며, 아름답다는 것은 혼란을 겪으면서 갈등의 균형이 정착된 상태이다. 우리의 거리에 간판들은 추하고 복잡하고 아름답지 않다. 그것은 규칙을 무시하고 법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다. 모든 상점들은 간판을 달면서 이미 마련되어 있는 규제 속에서 교묘히 살길을 찾느라 옆집의 상점과, 경쟁사들과, 또 직접 협의를 해야 할 이웃들과의 갈등의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개입되어 빨간색은 전체 비율의 몇% 이상 사용하면 안 된다는 둥, 2층 이상 높이에는 간판을 달아서는 안 된다는 둥 각종 현실성 없는 규제안을 마련해준 덕분에 사람들은 규제를 피할 방법에만 골몰할 뿐 무제한의 무질서 속에서의 갈등을 통해서 얻어지는 자율적 질서를 만들어낼 기회를 갖지 못한다. 서울시내의 모든 간판이 전부 빨간색이면 왜 안 되나. 정말 모두 빨간색이면 세계적 관광명소가 될 터이다. 홍콩의 간판은 서울의 간판보다 훨씬 무질서하지만 도시 전체 풍경은 훨씬 자연스럽다. 우리의 기질은 홍콩처럼 역동적인 것에 더 가까운가 유럽처럼 우아한 것에 더 가까운가.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맘껏 저질러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성향이 어떻고, 우리의 미감이 어떻고, 우리의 자정능력이 어떻고, 우리의 자율이 빚어낼 아름다운 질서가 어떤 풍경을 남겨줄지 알지 못한다. 모르긴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안에서 우리에게 자생적으로 건강한 자유와 아름다운 질서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자율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언제나 우리는 규제의 대상일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를 자율적으로 꾸밀 수 있는지 모른 채, 오늘도 그저 먹고살자고 구청의 단속을 걱정하며 싸구려 간판을 내걸고 있다. 저 간판들이, 다름아닌 우리의 초상이다. 각종 규제 속에서 먹고살겠다고 요리조리 아쉬운 대로 비집고 뿌리내린 우리의 초상이다. 자유를 박탈하는 가장 교묘한 방법은 법과 질서를 핑계로 자율의 시간과 갈등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자연스러운 존재’로 믿지 않는 것이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