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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Ebay, 이젠 배역도 판다!

가난한 초보 감독, 배역 팔아 제작경비 마련

인터넷의 라스베이거스라는 Ebay, 일단 돈이면 만사형통이다. 큰돈을 움켜쥐려면 운이 따라야 하는데, 별 대책없이 운에만 무작정 매달리게 만드는 것도 도박판이나 다름없다. 밤을 꼴딱 새우며 인터넷 경매에 매달리는 꾼들의 모토, “적어도 판돈의 2배는 건진다”.

“내”게는 쓸데없는 물건을 “너”에게 다시 보낸다는 아름다운(?) 정신으로 출발한 이 경매사이트는 세상의 온갖 아이템들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엽기사이트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독일의 한 대학생이 자신의 영혼을 경매물로 제공, 파우스트 박사의 후예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엽기판에 영화까지 끼어든 참이니 목적은 오로지 돈뿐! 배역을 경매로 팔아 제작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랄프 리스트는 지난해 지방 라디오 방송사 사장이라는 직함을 아낌없이 내던졌다. 영화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수년간 심혈을 기울였다는 시나리오가 막 끝난 참이었다.

<파울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코미디로 소명 실현의 관건은 이제 오직 한 가지, 제작비였다. 그리고 돈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지만, 출연배우를 찾는 일도 수월치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Ebay 경매사이트를 접한 리스트는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을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인터넷 경매로 배역 팔기. 영화에 등장하는 총 24명 배역 중에 벌써 16개가 팔렸다. 목표액은 총제작비 절반 정도인 7만5천유로로 첫 작품인 만큼 저예산영화로 찍을 작정이기 때문이다. 주연인 파울 역은 3만8500유로로 스위스의 한 의사에게 넘어갔다. 연구소에서 의약품 효과를 테스트하고 있는 38살의 이 의학박사는 인터넷 경매로 영화배우라는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물론 조연급 가격은 훨씬 싸다. 상당히 비중있다는 웨이터 역할은 쾰른 중앙역 야간경비원이 4510유로에 사들였다. 여기에는 촬영기간 동안 감독과 숙식하며 종종 바비큐도 해먹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단다.

<파울은 과연 누구일까?>는 이미 9회분 촬영을 마쳤다. 제작비도 줄일 겸 직접 메가폰을 잡은 왕초보 감독의 서투름은 촬영감독을 비롯한 전문 스탭이 알아서 만회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리스트 감독은 도박 같은 캐스팅이었지만 아마추어 배우들에 대체로 만족한다. 같은 장면을 15번 정도 반복하다보면 봐줄 만한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서 유일한 양성애자의 좌충우돌을 그린 영화는 2005년 봄 개봉예정. 리스트의 배역경매는 제작비가 고민스러운 감독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안겨준 모양이다. 베를린의 한 감독 역시 차기 작품의 배역들을 몽땅 Ebay에 경매물로 내놓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