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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의 엔터테인먼트, <터미널>
박은영 2004-08-24

미국의 얼굴 톰 행크스, 미국이 방기한 무국적자가 되어 스필버그의 터미널에서 9개월을 노숙하다!

“웰컴 투 아메리카, 올모스트!”

이제 막 공항에 도착한 코르코지아 출신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지독히도 운이 없는 남자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동안 쿠데타가 일어나 그의 고국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졸지에 국적을 잃은 그는 미국에 들어가지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공항 터미널 환승 라운지에서 출입관리국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혼란에 휩싸인 고국의 소식에 황망해하다가 공항에서 내준 식권까지 잃어버린 그는 대기석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이번엔 의자 사이로 엉덩이가 빠져버려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이 우스꽝스럽고 가련한 남자가 관객을 웃기고 울릴 <터미널>의 ‘히어로’다. 못 미더워도 어쩔 수 없다.

나보스키의 단순명쾌한 캐릭터는 공항 사람들의 의혹과 오해 속에서 크고 작은 소동을 빚는다. 그는 공항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규칙을 양순하게 지키면서, 언어별 여행 가이드 책자를 대조해 영어를 배우고, 카트를 회수하는 노동의 대가로 푼돈을 챙기는 등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해나간다. 떠날 수 있을 때까지 그는 기다리고 또 살아가는 것뿐이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늘 공항을 배회하는 그는 CIA나 KGB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그는 출입국 관리자 딕슨(스탠리 투치)의 심기를 건드린다. “왜 도망가지 않는 거야?” 딕슨은 애물단지를 자기 구역에서 밀어내려고 도주로를 열어주기도 하고 망명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잘못 짚었다. 나보스키는 “법을 어기지 않겠다”고 버티는 ‘강적’이다. 모니터로 나보스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딕슨이지만, 나보스키의 자유 의지까지 통제하지는 못한다(<트루먼 쇼>의 앤드루 니콜이 각본에 참여한 흔적이다).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그러나, 여기까지다. 위기에 처한 러시아 출국자를 구하면서 나보스키가 공항 직원들 사이에 영웅으로 추대되는 것도 ‘마이너리티의 연대’로 이해할 수 있고, 오다가다 만난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캐서린 제타 존스)와 교감을 나누는 대목도 귀엽게 봐줄 만하다. 하지만 그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면서까지 뉴욕 땅을 밟으려 한 사연의 전말, 그리고 마지막 순간 별 계기도 없이 기권하고 마는 관료/악당들의 변심엔 맥이 풀린다. 입국이 까다로운 이즈음 미국의 문턱에서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시작된 영화는 너무나 이상적이고 온정적인, 그래서 비현실적인 ‘동화’로 막을 내린다.

장단점이 뚜렷한 <터미널>에는 스필버그의 인장 또한 선명하다. 지구에 홀로 떨어진 외계인(〈E.T.>)이나 나치에 핍박받는 유대인(<쉰들러 리스트>)이나 노예선을 탄 아프리카 원주민(<아미스타드>)처럼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남자를 내세웠고, 언제나처럼 그를 돕는 친구들을 붙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한 여행을 완수한 뒤, 한때 그를 고아로 만든 조국이라는 더 큰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게 한다. 스필버그가 (몇 작품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역사와 사회 현실에 침묵했던 것처럼, <터미널>에서도 9·11 이후 삭막해진 미국의 공기는 담아내지 않았다. 살벌하고 불쾌한 현실의 디테일을 반영하는 것이 ‘휴머니즘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지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까닭일 것이다.

〈E.T.>의 자전거 비행으로부터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파일럿 사칭에 이르기까지, ‘비행’에 대한 스필버그의 동경은 <터미널>에서 아예 공항에 눌러앉는 것으로 극대화된다. 재미난 건, 배경 그 이상의 역할인 공항이 실물이 아니라 100% 세트라는 사실. 공항 경비가 삼엄해진데다 유동인구 통제도 불가능하다고 본 스필버그는 프로덕션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에게 실제 사이즈의 공항 세팅을 주문했다. 캘리포니아 팜데일 1700평 부지에 200명의 인력이 20주 동안 매달려 완성해냈다는 JFK 공항의 라운지와 매장, 통유리창으로 비치는 자연광과 활주로 풍경까지 모든 게 ‘짝퉁’이라는 사실은 영화를 보면 더 믿기 힘들어진다.

공항 세트를 짓지 않았다면 ‘소품’에 그쳤을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스펙터클은 역시 톰 행크스의 연기다. ‘미국적’인 배우 톰 행크스가 영어 한마디 못하는 무국적자를 연기했다는 것이 아이러니 같기도 하지만, 다시 보면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등 그를 거쳐간 캐릭터와 그 딜레마(혹은 로버트 저메키스 영화의 패러디)를 반영한, 그렇게 ‘맞춤 설정’된 역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 테크 <캐스트 어웨이>”라는 비유를 낳기도 한 <터미널>에서 톰 행크스는 비슷하지만 다른 시도를 선보인다. 단순한 삶에 적응해가는 문명인이 아니라, 문명사회(자본주의)에 적응해가는 동구 촌부(사회주의)의 서바이벌 스토리에 뛰어든 것. 현지 평자들이 자크 타티에 비견한 톰 행크스의 몸의 코미디는 슬프고 우습고, 무엇보다 살갑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방인 행세를 하면서도 그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이상화된 미국의 얼굴이다.

:: <터미널>의 실제 모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내 쉴 곳은 샤를 드골 공항뿐이리”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느 날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을 16년간 지킨 한 노숙자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가 된 이 거짓말 같은 실화의 주인공은 이란 출신의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59). 그는 1970년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6년 뒤에 귀국을 시도했지만, 유학 시절에 이란 왕정 반대 시위에 가담한 전력이 드러나 추방되고 말았다. 영국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어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절당했다. 프랑스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그는 1988년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아예 눌러앉았다. 그리고는 공항 지하상가를 안방 삼아 11년간 생활하기에 이른다. 1999년 프랑스 정부가 그런 그에게 망명자 신분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번엔 나세리가 거절했다. 서류에 자기 이름이 잘못 적혀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 그는 자기 이름은 메르한 카리미가 아니라 알프레드라고 주장했다(실제로 공항 직원들은 그를 알프레드라고 부른다). 나세리를 돌봐온 공항 소속 의사는 “그는 현실감각을 잃어버렸다”면서, “과거사를 잊기 위해 본명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공항이 붐비기 전에 세면을 마치고 조용히 독서로 소일하는 등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드골 공항 당국은 나세리의 공항 숙식 생활을 16년째 막지 않고 있다(이것이 영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이다). 영화제작을 계기로 팬레터도 받고 사인도 해주는 유명인이 되었고, 드림웍스로부터 저작권 개념으로 30만달러를 받은 몸이지만, 나세리는 “내 삶은 변한 게 없다”면서 공항을 떠날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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