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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말하는 ‘나의 영화, 나의 인생’

“영화는 우주 속의 내 위치를 그리는 것이다”

10월11일 오후 1시30분부터 부산 메가박스 10관에서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허우샤오시엔감독의 마스터클래스의 주제는 ‘나의 영화, 나의 인생’. 객석을 빼곡히 메운 관객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감독의 “내 영화와 나의 인생은 완전히 합치된 것”이라는 말로 시작된 30분 동안의 강연은 “단 한순간도 영화를 떠나본 적이 없었던”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그것이 자신의 영화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이었고, 이후 1시간30분 동안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제한된 시간, 통역을 거쳐야 한다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영화에 대해 고민했던 거장의 구체적인 사고와 정확한 예시들은 충분히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강연과 질의 응답을 몇 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그의 육성을 그대로 전한다.

감독이 되기까지 - 가짜표로 극장가기

47년 중국 대륙에서 태어나 바로 대만으로 건너왔다. 천식을 앓았던 아버지 때문에 대만 남부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는 전국 연극대회가 열리는 커다란 공터가 있어서 여러 가지 연극들을 봤다. 무협소설을 비롯해서 모든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영화도 매우 좋아해서 5, 6살부터 어른들을 따라다니면서 극장을 들락거렸다. 나중에는 담을 넘거나 가짜표를 만들어 극장에 들어갈 정도였다. 내가 자란 곳에서는 남자아이들의 패싸움이 정말 심했는데, <동년왕사>에 나온 것처럼 당시 우리 집에는 칼뿐만 아니라 많은 무기들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대학시험에 두번 실패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국립예술학교 연극영화과 1기로 입학했다. 입학한 뒤, 도서관에서 처음 빌렸던 책은 <영화감독>이었는데, 영어시험에 한번도 합격한 적 없는 실력으로 사전을 놓고 서문을 계속해서 봤다. 그런데 2쪽짜리 서문의 마지막에 “이 책을 다 이해한다고 해도 감독이 될 수 없다”고 써 있더라. 바로 책을 덮었다. (웃음) 졸업 뒤 전자수첩 세일즈 같은 것을 하다가 학교 선생님이 영화 스크립터 일을 소개해줘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투신했다. 2편의 영화에서 스크립터를 했고 나중에는 내가 쓴 시나리오의 조감독을 맡았다.

감독으로서의 궤적 - <펑쿠이에서 온 소년>부터 <밀레니엄 맘보>까지

처음에는 코미디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다가 해외 유학파들이 돌아와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과 함께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전에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구상하긴 했지만 그때부터는 이론적인 것을 고민해야 했다. <펑쿠이에서 온 소년>을 찍을 때부터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알게 됐다. <비정성시>를 비롯한 3부작을 찍고 나서 이런 영화들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영화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남국재견>부터 혹은 <호남호녀>부터 또 다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최근까지는 영화의 미학을 계속 고민했던 긴 시기였다. 지난해 <카페 뤼미에르>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이 정도면 됐다고, 더이상의 탐구는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취해야 할 방법을 알게 됐고,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더이상 형식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소재로 돌아가서 아주 소박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예전에는 대만의 현재에 대한 영화를 1년에 한편씩 찍고 싶었다. 그런데 <밀레니엄 맘보>를 찍고 나서 현재 타이베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나의 관찰이 부족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모든 계힉을 나중으로 미루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대만의 역사를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대만의 민주운동이 어째서 도리어 도태되었는가에 대한 영화)가 있고, 3년 전 PPP에서 상받았던 프로젝트를 찍어야 한다. 양조위, 양가휘와 함께하는 새로운 장르영화도 준비 중이다.

연기연출 - 반복과 이해, 배어나오는 자연스러움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기자와의 관계다. 그들의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일 아무리 해도 안 된다면 무리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날 찍는다. 내가 알기로 왕가위는 다른 방법을 쓴다고 알고 있다. 그는 빅스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그들에게 연기하는 것 같은 흔적을 없애라고 주문한다. <아비정전>에서 유가령이 바닥을 닦는 장면은 30, 40번을 반복한 끝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스타급 연기자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거쳐서 한 장면을 찍은 것이다. 왕가위는 그래야만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능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스타들에게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연기자들이 그를 아주 무서워한다고 들었다. (웃음) 하지만 나는 어린 배우들과 작업할 때, 그들의 연기가 별로라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배우에게 잘 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조명 등의 다른 부분이 문제가 있어서 다시 찍는 것처럼 하면서 배우에게 다시 한번만 하자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잘했다고 이야기해야, 진짜 어린이처럼 잘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을 계속 쳐다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웃음)

<해상화>를 찍을 때는 한번 찍은 것을 배우들에게 보여주면서 공부하게 했다. 하지만 <해상화>의 배경이 된 19세기 말 유곽의 생활을 배우들이 이해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 어려웠다. 1, 2개월 전부터 나는 그들에게 대본을 주고 느낌을 가져보라고 했지만, 현장에 올 때도 그 분위기는 제대로 재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양조위와 유가령의 장면을 하루에 한 장면씩 5일에 걸쳐 찍었다. 그리고 6일째 되던 날은 다시 처음부터 찍었다. 그렇게 3번을 중복해서 찍은 뒤에야 연기자들이 그 분위기를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자기네들끼리 있다가 손님이 왔을 때 어떤 분위기가 되는지, 하다못해 손으로 어떻게 인사를 하는지 등 그 생활의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원래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놓고 연기자들이 상황에 들어오도록 한다. 밥을 먹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나는 그 장면을 배우가 배가 고플 만할 때 찍는다. 따뜻한 국 한 그릇이라도 있으면 더 좋겠지.

그래서 내가 배우의 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자연스러운가’이다. 물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감독으로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연기자들로부터 어떻게 경험을 끌어낼 것인지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관찰로 가능해진다. 그들의 일상을 계속해서 관찰해야 한다. 오랜 관찰 끝에 어떤 사람도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 누적된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 그리고 한달 뒤에는 그녀와 곧 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지막으로 3번째 내가 그녀와 그를 함께 만날 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한 정보와 실제 그녀와의 만남을 종합하면, 비로소 그들이 왜 헤어지려고 했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어떤 상황과 다른 상황을 종합하면 누군가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런 것은 아주 재밌는 일들이다.

나는 연기는 쉽지 않음을 안다. 끊임없는 반복의 과정이 필요하다. 양조위가 <아비정전>의 마지막, 도박사로 잠깐 등장할 때, 그는 세밀한 조사를 했다. 실제로 도박꾼을 만나 이런저런 관찰을 했고, 도박할 때는 손동작이 중요하다는 말에 모두 손동작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남들에게 손톱을 정리해달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그가 직접 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촬영 전 분장할 때도…. 그는 그 정도까지 그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도박꾼에 관한 모든 사실들이 정리가 되어 있고, 그것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그것을 해냈다.

영화라고 하는 것 - 중요한 것은 돌 위에 새겨야 한다

문학이나 영화의 깊이는 표층에서 드러난다. 문학이 글자와 문장의 연결을 통한다면, 영화는 행동, 이미지, 사건을 통해서 드러낸다. 우리는 어떤 흐름을 직접 전달할 수는 없어도 바라보며 느낄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있다. 영화가 표현하는 것은 결국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작은 조각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 그 안에 숨겨진 큰 덩어리를 알 수 있지 않나.

그러므로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전체 우주를 그리는 것, 전체 사회와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그리는 것이다. 나는 일상 속에서 매번 내가 겪는 상황이 영화 속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자신의 생활 속 장면을 영화에 적용하려면 내가 무엇을 하는가를 위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시각을 둘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하나의 눈은 언제나 바깥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것인데, 당연히 물은 흘러간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돌 위에 새겨야 하고 그러면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한 글자씩 새겨나가면 그것들은 계속해서 쌓여나간다.

한때 나는 영화 속에서 내레이션을 즐겨 사용했고 그것은 일종의 소설적 기법이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함에 있어 영화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내레이션으로 보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에 너무 의존하게 된 것 같아서다. 이제는 이미지에 집중할 생각이다. 각각의 이미지에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 즉 기호가 있다. 모든 사람의 활동의 배후에는 그의 생각이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의 행동은 결국 사람의 내재적인 생각을 표출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알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것들을 참고하면 서로 다른 방식들을 그려갈 수가 있다. 나는 내레이션이 아닌, 그런 이미지를 통해 형상, 본질에 가까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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