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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만점 라디오 프로그램 넷, 스튜디오 탐방기 [2]
박혜명 2004-11-08

‘반말’이 우리의 유일한 원칙!

절대‘마왕’이 군림하는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MBC FM4U(91.9MHz) 매일 01:00~03:00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녹음 스튜디오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신문지로 유리를 온통 가려놨다. 그 안에야, 사실 별것 없다. 작가 두명, PD, DJ, 기자까지 다섯 사람이 채워지고 나니 적당히 아늑해진 그 공간 안에선, 잡동사니로 어지러운 책상을 앞에 두고 DJ가 ‘혼전순결 지키기와 육체적 탐닉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자 청취자의 사연을 읽고 있다. 녹음방송 1부를 마치고 기자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신해철. 뒤에 조용히 앉아 있던 PD에게 묻는다. “오늘 ‘클래스 오브 록’(목요일 2부 고정코너) 뭐 할래요?” 가을개편과 함께 이날로서 딱 이틀째 그와 작업하는 PD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친다. “그걸 여기서 결정해요?” “원래 그렇게 해요.” DJ와 작가는 열심히, 아트록 특집을 할지 아니면 꽃미남으로 태어나 음악성을 평가절하받은 뮤지션들을 꼽을지 의논 중이다. 조용한 PD가 신해철에게 다시 묻는다. “저, 혼전순결, 예전에도 얘기한 적 있었나요?” “예.” “그때도, 뭐, 얘기 나온 건 없었죠?” “특별한 얘긴 없더라고요.”

MBC에서 2003년 11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은 전신인 SBS-FM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2001년 4월∼2003년 4월)을 방송사만 옮긴 프로그램이다. 녹음은 신해철의 개인 스튜디오나 MBC 스튜디오에서 하는데 장소를 가리는 기준은 없다. 방송용 바른말, 고정코너, 대본, 이야기와 음악의 비율 등 대개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사항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철저히 지켜지는 원칙 하나는 청취자들이 나이 불문하고 DJ ‘마왕’과 반말을 튼다는 것. 게시판뿐 아니라 전화상담에서도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진다. 청취자들은 DJ를 닮아 사회 이슈에도 민감하고 자기 목소리가 크다. 그들은 마왕의 자유분방한 태도와 열혈적인 연설을 마왕의 선곡 음악들만큼 사랑한다. “결국 오락부장은 나고, 카드를 쥔 사람도 나라는 걸 애들이 안다. 그러니까 내가 나와서 노래해, 하고 시키면 해야 되는 거야, 그냥. 그게 싫으면 나가는 거고….” 이것이 좋아서 매달리거나 싫으니 외면하거나. 누군가 그 스타일을 따라하려고 작정을 해도 쉽지 않을 이 방송은, 이날의 고정코너 ‘클래스 오브 록’의 주제를 ‘음악성 뛰어난 꽃미남 뮤지션들의 비운’으로 결정했다. 단 3명의 뮤지션이 케이스로 정해지자마자 DJ는 “좋아∼”라며 미완성의 리스트를 들고 2부 녹음을 시작했다.

신해철 인터뷰

“라디오는 사적인 맨투맨 매체다”

SBS에서 시작할 때부터 본인이 기획한 방송이다. 계기는.

방송하는 건 재밌는데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있으니까. 방송사들은 덩치만 비대해지고 시대가 바뀌는 건 못 쫓는다. 미디어가 민중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려면 그들의 귀와 눈과 입이 돼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방송이 나서서 소재나 언어 등에 대해 폭력적인 제재를 가하고 사람들의 귀와 입을 묶는다. 방송에 특정 상품 이름이 왜 등장하면 안 되나. 돈만 안 받으면 되지. 비속어 같은 언어 제재도 자기네가 문책당하기 싫어서지 언어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왜 그런 것에 대해 제약을 강요해서 마치 하면 안 되는 일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드냐는 거다.

SBS에서 방송을 그만둔 이유는 뭐였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잡아논 고기에는 밥을 안 준다. <고스트 스테이션>이 새벽 2시대에 청취율 5% 나왔다. 5%면 거의 최고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그럼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 내가 요구한 걸 들어줘야 하는데 방송사쪽에서 동작이 늦더라. (웃음) 프로그램 이름을 가지고 방송사를 이동하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앞으로는 DJ도 프리랜서처럼 바뀔 것이고 프로그램도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될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하고.

그런데 MBC로 오면서는 프로그램 이름을 바꿨다.

‘고스트스테이션’이란 이름을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 등에 브랜드처럼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다른 법인체들이 이미 있기 때문에 그게 방송 이름하고 똑같으면 법적으로 문제 소지가 있다더라. 그리고 ‘네이션’이 ‘스테이션’보다 사이즈도 더 크다. (웃음)

청취자들의 전화상담을 하염없이 듣고 있다. 대답도 하염없긴 하지만. (웃음)

쓸데없는 소리라고 미리 제한할 거면 그걸 왜 하겠나. 또 그 얘기 계속 들어준다고 해도 방송엔 전혀 문제 안 생긴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란, 또 DJ란 뭐라고 생각하나.

라디오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빗한 맨투맨 매체다. 가오잡고, 방송이란 이유로 위장하고 틀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라디오는 한 개인의 일상 중 일부가 되는 패턴과 내 패턴을 결합하는 매체다. 그 사람의 생각, 생활의 일정한 시기가 통째로 결합하는 거다. 그래서 난 방송을 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얘기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개개인과 얘기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이 방송에 대해 엄청나게 노력하거나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너희들도 너무 불편해하지 말아라(웃음), 하는 게 내 태도다. 나도 그렇고 우리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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