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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만점 라디오 프로그램 넷, 스튜디오 탐방기 [4]
박혜명 2004-11-08

답답하다고? 얼굴이 당기도록 웃게 해줄게!

‘연이형’의 유쾌화끈상담소 <남궁연의 고릴라디오>SBS 파워FM(107.7MHz) 매일 02:00~03:00

<남궁연의 고릴라디오> 녹음 시간은 깊은 밤 11시였다. 낮보다는 사람이 괜히 더 센티멘털해진다는 그 시각에 대낮 오후보다 발랄한 DJ가 방긋, 인사를 건넨다. 방송에도 익숙한 연예인답게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던 그. “뭐 질문하실 거예요? 재밌는 질문 좀 해주세요.” 기자의 질문이라는 게 어차피 뻔하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이 저렇게 나오니, 되레 마음이 편해진다. 해줄 얘기가 많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쪽에서 1번 질문을 던진다. “해철이는 만나고 오셨어요?”

2003년 4월7일 첫 방송을 한 <남궁연의 고릴라디오>의 이야기 본론은 이런 식으로, DJ가 먼저 유쾌하게 “확 벗겨버리는” 것으로 시작돼왔다. 여자친구와 차 안에서 방송을 듣고 있다는 남자 청취자의 문자메시지에 대해 “여자친구야. 그 차에 지금 시동 켜져 있는지 확인해봐라. 켜져 있으면 너랑 한번 하다가 여차하면 바로 자리 뜨려는 흑심이다”라고, 남자라서 잘 아는 남자의 본심을 알려주었다(이후 분노한 남자 청취자는 게시판에 원망 가득한 글을 올렸었다 한다). 악의없는 솔직함과 유들유들한 친근함이 가득한 그의 방송엔 20대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애청자들로부터 사랑과 섹스, 집안문제 등 숨기고 싶었던 개인 사연들이 털려 나온다. 친하고 편한 형에게만 들려주는 수다 같은 고민, 고민 같은 수다. 게시판에는 ‘연이 형’으로 시작되는 메시지들이 많이 눈에 띈다. 기자에게조차 솔직한 대답을 요구하며 그가 또렷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둘만 있던 조용한 스튜디오는 유쾌하고도 화끈한 상담소로 바뀐다.

이날의 녹음방송엔 ‘신곡분석연구소’ 코너가 있었다. 게스트로 초청된 3인조 신인그룹들과도 비슷한 모양새의 대화가 오고간다. “너희들은 신인이잖아. 요즘 애들이 약아서 그렇게 대충 소개하면 아무도 안 들어줘. 멤버들이 각자 컨셉을 확실하게 가져가야 돼.” 인생을 몇년 앞선 선배의 조언이, 상대에게 아무 부담도 주지 않는 말투를 타고 흐른다. 30분 남짓한 녹음시간이 얼굴 당기도록 웃겨주는 유머와 솔직한 분위기로 끝났다. 모두가 몸을 털고 일어나는 자리에 떨어진 먼지는 없어 보였다. <남궁연의 고릴라디오> 스튜디오가 저마다 답답하게 만들었던 먼지 뭉치들을 다 먹어버린 것 같다.

남궁연 인터뷰

“속고 살아온 것에 대한 커밍아웃 어때요?”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시간대를 이어받았다.

해철이와 내 방송은 완전히 다르다. 그쪽이 아버지 필이라면 난 아줌마 필이다. <고스트스테이션>이 ‘야, 우리집 가훈은 착하게 살자야. 알았지? 그럼 됐어! 나가봐!’라는 식으로 남성적이고 직관적이라면, 우린, ‘야, 아버지가 저렇게 무뚝뚝해도 말이야~’라면서 달래주고 배려하는 편이다.

그 프로그램의 청취자들이 남아 있었을 텐데, 프로그램 성격이 전혀 다른 걸 다 받아들이던가.

아니다. 그래서 초반 6개월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 사회엔 좋은 선배의 모델이 정말 없다. 나는 그 모델이 돼주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반응은 ‘니가 뭔데 대단한 척하냐’, ‘개똥철학 그만 해라’ 하는 식의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청취율도 안 나왔지만 그런 반응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해철이 방송은 사회에서 뭔가 바꿔야 할 것들을 말하는데 난 우리가 여태까지 부모님과 학교로부터 속고 살아온 것들을 커밍아웃하자는 정도였다. 사람들이 너무 솔직하게 자기 얘기 꺼내는 걸 싫어했다.

대본은 어느 정도 의존하는 편인가.

작가에겐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거의 무시한다. 그래서 오프닝은 잘 써오건 말건 신경 안 쓴다. 대신, 우리 방송은 내 맘대로 아무 때나 개편을 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많이 가져오라고 한다.

지금은 애청자들과의 결속력이 어느 정도 되나.

원래, 사회에서 관심 덜 받고 혜택 덜 받는 집단일수록 결속력이 대단하다. 깡패들 의리가 좋은 이유가, 같이 죄짓고 서로 불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우리 방송도, 시간대가 그래서인지 비슷한 결속력이 있다. 생방송 끝나고, 라면 먹으러 지금 바로 홍익대 앞에 모여! 하면 100명쯤 모인다. 그런 면에서 새벽 두시는 이제 특화된 시간대인 것 같다. 12시대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별세계다. 청취자들 족속도 완전히 다르고.

방송이 1시간인데 늘릴 생각은.

전혀. 전혀 없다. 1시간이 딱 좋다. 80% 정도 만족감이 차올랐을 때 끝내는 게 제일 좋다. 뭐든 아쉬울 때 끝내는 게 최고다. 긴장감도 있고. 생방송 같은 경우, 분위기가 막 최고에 올랐을 때 방송 끝난 적도 많다. 그럼 전부 아쉬워서 죽지.

지금 하는 방송에 굉장히 만족하는 것 같다.

초기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우리끼리 단합도 대단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맘껏 할 수 있으니까. 그 자유로움이 정말 좋다. 우리끼리는 방송사도 모르는 비밀이 진짜 많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