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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젊은 한 때,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김현정 2004-11-09

아르헨티나에서 페루까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으로 자라나게 될,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젊은 한때.

낡은 모터사이클을 탄 청년은 내 이름은 에르네스토, 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은 ‘체’라고 불리지 않는다. 자신이 태어난 대륙을 더듬으면서, 혁명보다는 연민에 동요하는 젊은 영혼.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알베르토 코르다의 사진이 각인시킨 전사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타고 넘어 천진한 열정으로 여행을 시작한 스물세살 에르네스토와 동행하는 영화다. ‘미알’(나의 알베르토)이라는 다정한 애칭으로 친구를 부르곤 했던 그는 15년 뒤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헌신한 혁명가라는 이유로 살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그 비극을 멀찌감치 두고, 다만 여행을 할 뿐이다. 그리고 기다린다. 에르네스토가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1952년 1월,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생화학을 전공하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페루를 가로지르는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떠난다. 스물셋과 스물아홉. 철없이 들뜬 두 청년은 포데로사라고 이름 붙인 구식 모터사이클을 타고 언덕처럼 배낭을 쌓아올리고선 시동을 건다. 아름답지만 험한 라틴아메리카 흙길을 따라가던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수명을 다한 포데로사를 떠나보내기에 이른다. 히치하이크를 하거나 걸어서 여행을 계속하는 두 청년은 포데로사를 잃은 대신 이전보다 훨씬 생생한 만남을 갖게 된다. 땅을 잃고 일자리를 찾아서 거대한 광산으로 향하는 가난한 부부, 침략자의 흔적이 뚜렷한 고대도시 쿠스코에서 마주친 인디오들, 정글 사이에 묻혀 있는 산파블로의 나환자촌. 다섯달 여행 끝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8년 뒤에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작별을 고한다.

<중앙역>으로 알려진 월터 살레스는 “이 영화를 찍기 전에 나는 브라질 감독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그보다 한 세기 전에 죽은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처럼, 라틴아메리카가 하나가 되기를 소망했던 체 게바라. 살레스는 불가능한 꿈을 가졌던 이 로맨틱한 전사가 어찌하여 거대한 대륙을 가슴에 품게 되었는지, 관객보다 그 자신이 먼저 공감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한동안 안데스와 파타고니아에서 날아온 사진엽서처럼 보이기만 하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차츰 길을 따라 영혼도 변해가는 로드무비가 되고 성장영화가 된다. 빨리 자라거라 보챈다고 해서 씨앗이 나무로 솟아나진 않는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베레모를 쓴 혁명가와 마주하고 싶은 조급한 관객을 팜파스와 호수의 풍경으로 달래가면서 아주 천천히 다섯달에 걸친 성숙의 과정으로 인도한다. 그 끝에는 가혹한 현실을 목격하고선 오히려 하늘처럼 순수한 이상을 품게 된 에르네스토가 서 있다.

그라나도와 체 게바라가 쓴 두권의 여행기를 바탕으로 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그들이 실제 밟았던 길목을 순서대로 따라갔다. 호수가 거울처럼 비춰내는 흙길과 숨쉴 공기도 희미한 산길, 어둠 속에 떠나오는 뱃길까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단 한번도 정직하고 고집센 스물세살 에르네스토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커브를 돌 때마다 몇년 뒤 체라는 애칭을 갖게 될 혁명가의 어린 그림자가 잠깐 자기 자리를 내달라고 주장한다. 낭만적인 공상을 펼쳐놓는 알베르토에게 “폭력없는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고 무심한 듯 말하는 에르네스토는 소총을 쥐고 쿠바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의 게릴라 대장으로 싸울 체 게바라와 가느다란 밧줄로 연결되어 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이 여행이 에르네스토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열기로 무르익은 연상의 여인에게 이끌리고 맘보와 탱고를 구분 못해 ‘맘보-탱고’를 추는 순진한 젊은이. 그는 “당신들도 일자리를 찾고 있나요?”라는, 가난과 핍박에 지친 부부의 질문에 부끄러워하면서, 그저 여행하고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 투 마마> <아모레스 페로스>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그처럼 흔들리는 표정을 갖고 있던 청년이 하나의 아메리카를 외치기까지의 굴곡을 직접 겪은 것처럼 온몸과 그 몸을 감싼 공기에 새겨넣었다. 에르네스토가 예전의 그가 아니듯,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도 영화가 시작될 무렵의 그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혁명을 이룬 쿠바에 안주하지 않고 볼리비아로 떠난 체 게바라는 정치적인 알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 선택 때문에 혁명보다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티셔츠와 배지와 휘장과 포스터 속에서 아주 멀어 보이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살레스는 왜 그 결연한 시선 대신 사랑에 우는 앳된 눈동자를 택했을까. 로버트 레드퍼드가 판권을 사고 제작을 추진한 제작자라는 배경이나 영화가 지나치게 밋밋하다는 약점을 제쳐놓고 본다면,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한장의 사진 속에 갇혀버린 듯했던 체 게바라가 잠시라도 숨을 쉬고 있다는 애틋한 울림을 준다. 1967년 10월 눈을 반쯤 감은 시신으로 식어갈 체 게바라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안에서만은 젊고 자유로운 에르네스토로 되살아난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이후 체 게바라의 여정

그는 단 한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

여행 도중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았던 에르네스토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1953년 7월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친척 카를로스 페레르를 동반자로 삼은 그는 볼리비아와 페루, 코스타리카를 거쳐 과테말라에 도착했고, 그곳에 머물며 의사로 일했다. 그가 젊은 혁명가 ‘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체’는 아르헨티나인들이 무언가를 강조할 때마다 습관처럼 붙이는 단어. 이제 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진 그는 1954년 과테말라 민주정부가 CIA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멕시코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무장봉기를 신봉하고 있던 체 게바라는 혁명은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믿음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아르헨티나 출신임에도 쿠바혁명에 가담하게 된 건 그 때문이었다. 카스트로 형제와 함께 쿠바에 상륙한 그는 전멸하다시피한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세력을 구축해서 1959년 1월2일 수도 아바나에 입성했다. 체 게바라는 천식을 앓고 있었지만 위험한 게릴라 전투 중에도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 엄격해 신망을 얻을 수 있었다. 날카로운 지성과 타고난 성실함을 갖춘 체 게바라는 해방된 쿠바에서 국립은행 총재와 공업장관을 맡았고 외교 활동도 함께했다. 그러나 그는 쿠바에 머물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해방시키려 했던 체 게바라는 콩고혁명에 참여했고, 그 실패 뒤에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했던 볼리비아 혁명 세력에 합류했다. 그가 최후를 맞은 나라 역시 볼리비아였다. 눈을 반쯤 뜨고 죽은 그를 두고 최후 감금처에서 그를 만났던 어떤 이는 “체 게바라는 단 한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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