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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돌아와요, 동독으로!

옛 동독을 그린 TV 드라마·영화 인기 몰이… ‘오스탤지어’란 신조어 생기기도

DDR, 즉 옛 동독이 지난 10월 중순 칸에서 열린 국제프로그램박람회 밉콤(Mipcom)에서 TV드라마 부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몇년 전만 해도 이미 사라져버린 동독이 방송계나 영화계에서 해뜰 날을 맞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밉콤에 참가한 세계 각국 프로그램 구매자들은 저먼 유나이티드 디스트리뷰터 부스로 떼지어 몰려왔으니, 독일 제1공영방송 <ARD>가 제작한 <그 당시 동독에서는>(Damals in DDR)의 방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에서 11월8일 첫 전파를 타게 되는 이 4부작은 이미 일본, 폴란드, 헝가리, 네덜란드 등 25개국에 방영권이 팔려 올해 국제 TV드라마 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스탤지어”라는 신조어가 독일 사전에 등장한 것이 1990년대 말이다.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Ost)와 노스탤지어를 합한 단어로 옛 동독에 대한 향수를 의미한다. 현재 TV드라마와 영화시장에서 동독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근간 역시 오스탤지어다. 저먼 유나이티드 디스트리뷰터의 질케 슈파아 사장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15년이 지난 지금, 공산주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동독 사람들의 일상을 이국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선들도 있다”고 말한다. <그 당시 동독에서는>의 주인공 40명은 각자 대단히 주관적인 시점으로 40개의 에피소드를 끌어간다. 그리고 이 4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동독이라는 공산독재국가를 40년이나 지탱해온 힘(?)들이 설명된다. 동맹국 소련의 무지막지한 동무들, 동독 주민들을 40년 동안 감금한 베를린 장벽, 그리고 죽음의 국경선 등등 말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프로듀서인 구나르 데디오의 모토는 “무조건 비판적일 것”인 듯 보인다.

이 다큐 TV드라마는 옛 동독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국제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많은 사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독일 민영방송 <SAT1>이 제작한 드라마 <터널> 역시 방영권이 일본, 미국을 비롯한 30개국에 판매됐고, 프랑스에서는 극장개봉까지 했다. 상복도 많아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일본에서는 “올해 최고의 성공작”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동독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레안더 하우스만 감독의 <태양의 거리>(Sonnenallee, 1999)와 국내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볼프강 베커 감독의 <굿바이 레닌>(2003)(사진)은 예술성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성공작들이다. <굿바이 레닌>의 경우, 독일영화에 대해 상당히 시니컬한 프랑스에서조차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독일 역사에서 분단이라는 챕터가 세계적으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상을 미디어학자 조 그뢰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독은 동서 이데올로기 갈등의 상징이자 냉전의 중심이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무대인 만큼 이전부터 인기있는 영화 주제였으나 냉전이 종말을 고한 현재 ‘냉전의 신화’까지 더해졌다. 게다가 동일한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 민족의 반을 잘라 전혀 다른 시스템에 이식한 거대한 실험장이었다는 비극적 역사가 관심을 갖게 만든다.”

역시 미디어학자인 클레멘스 슈벤더는 “오스탤지어”의 힘을 영상의 힘으로 설명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이 함께 경험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미디어적 대사건이었고, 시청자들에게는 독일 통일이 히스토리이자 스토리로 다가왔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동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슈벤더는 시청자들이 장벽이 붕괴되는 TV 화면을 통해 ‘통일’이란 개념의 아이콘을 갖게 되었으나, 그런 화면들이 사건 뒤에 숨은 개개인의 사연들까지 말해주지 않는 만큼 지대한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된다. 나의 일상과 다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점에서는 SF영화에 대한 관심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나’적인, 혹은 인간적인 그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