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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저씨가 좋다
김현정 2004-11-26

나는 남들보다 조금 어린 나이에 폭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돈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5천원짜리 돼지 머릿고기 안주를 세 조각으로 자르는 것도 모자라서, 술을 마신 사람만 그 1/3짜리 고기 하나를 먹을 자격을 얻을 만큼, 내 대학 시절은 처량했다. 떡을 다 먹고난 떡볶이 양념도 치우지 않고 아껴먹을 정도였다. 그렇게 가난한 대학생이 폭탄주를 마시기 위해선 소주에 맥주를 섞거나 누가 술을 사주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두 번째 경우였다. 몇년 전에 학교를 졸업한 이십대 후반 아저씨들과(그때는 이십대 후반이면 아저씨인 줄 알았다) 어울려다니다 보니, 폭탄주도 마시고, 남한산성이나 장흥 같은, 스무살 먹은 애들은 근처에도 안 가는 아저씨스러운 동네에 가서, 아저씨처럼 고기도 굽고 매운탕도 끓이며 지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아저씨들을 좋아한다.

‘아저씨’의 사전적인 의미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저씨들이 단란주점에 가서 도미노 폭탄주를 제조하거나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거나 “나는 마음이 젊어서 젊은 애들하고만 통한다니까”라고 우기는 남자들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이런 아저씨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생존능력이 있고, 그래서 자기가 부끄럽지 않고, 또한 그래서 누군가 부끄러운 처지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범죄의 재구성>을 보면서 김 선생(백윤식)의 대사 한마디에 두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느꼈다. 이미 위대한 사기꾼의 경지에 오른 김 선생은 젊은 사기꾼 창혁(박신양)에게 당하고 나서 장총 한 자루를 짊어지고 응징에 나선다. 나이먹어 폭력은 추하지 않느냐는 친구에게 던지는 한마디, 나이먹으면 추해도 돼. 그 말이 내겐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말하는 “신을 믿느냐고? 내가 바로 신이야”와 맞먹을 만한 것 같았다. 와, 저런 게 아저씨의 힘이로구나, 나는 추해질 수도 있다는, 추해져도 괜찮다는, 추하지 않게 나이먹어온 남자의 자신감. 멜로도 코미디도 비슷하다. 주름이나 충혈된 눈동자가 아니라 온몸으로 자신의 나이를 보여주는 아저씨들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데미지>에서, 매끈한 총각들보다 더한 관능을 증명하곤 했다. 물론 나에게만.

이런 취향을 함께 나누며 흥분할 동료가 없다는 사실은 불행하다. 지금까지 나와 비슷한 아저씨홀릭 증세를 보이는 아가씨는 딱 한명밖에 못 봤다. 그녀와 나는 남자보는 눈이 너무 비슷해서, 혹시 이상형을 만나거든 절대 서로에게 소개시켜주지 말자고 굳게 약속도 했지만, 그런 걸 기우라고 하는 거다. 현실에 그런 아저씨가 있을 리가 없다. “나도 아저씨거든”이라고 감동하는 넥타이 동여맨 아저씨나 안 만나면 다행이겠다. 하지만 더 불행한 건 백인보다 흑인보다 황인종이 잘생겼다고 믿는 내가 외국영화에서만 진정한 아저씨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 한국영화에선 나무처럼 튼튼하게 늙어서 젊은 시절 자기가 출연했던 영화를 조롱할 수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아저씨(…가 아니고 지금은 할아버지지만)가 없는 것일까? 숱한 꽃미남들이 빨리빨리 늙어서 장총 둘러멘 김 선생 같은 남자들이 되어 몰려왔으면 좋겠지만, 그런 날이 올까? 혹은 그땐 내가 아줌마가 되어버려서 총각들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김현정 parady@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