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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온 TV [1] - <퀴어 애즈 포크>
김도훈 2004-12-02

케이블에서 방영 중인 퀴어 드라마, 시트콤, 리얼리티 프로그램 4편

게이(Gay), 퀴어(Queer), 레즈비언(Lesbian), 호모(Homo), 패곳(Faggot), 동성애자, 동성연애자. 당신이 뭐라고 지칭하든 상관없이, 당신이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공정하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그들이 TV 속으로 들어왔다. <퀴어 애즈 포크> 같은 본격 드라마로부터 <윌 & 그레이스> 같은 시트콤을 거쳐 <플레잉 스트레이트>와 <퀴어 아이>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동방‘보수’지국의 케이블TV들은 지금 브라운관 위에서 달콤쌉싸름한 성(性)혁명 전단지를 매일매일 시청자들의 망막으로 던져주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동성애 프로그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파를 타는 것은, 본격적인 케이블 시대를 맞은 이후 가장 진보적인 매체의 용틀임이라 할 만하다. 물론 거기에는 쿨한 팬시상품으로서의 동성애 문화 소비욕구가 일정 정도 똬리를 틀고 있음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비가시적이었던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들의 숨어 있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케이블 방송의 전파를 타고 있을까. 대표적인 4가지 프로그램들을 여기에 소개하며 간략한 겉핥기를 해본다. 이제 TV를 켜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농밀한 입술들이 맞닿는 솔직담백한 세계로 티켓을 끊어보자.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냐는 유생들의 목젖 부르트는 부르짖음이 들려오더라도 짜릿하게 무시하도록. 케이블TV는 지금 통쾌하고 짜릿하게 혁명 중이다.

보통 게이들의 ‘섹시한’ 인생 오페라, <퀴어 애즈 포크>

Key Point l 밥먹고 일하고 사랑하고 헤어지며 살아가는 게이(=사람들)가 TV로 들어오다.

“내가 배운 것에 따르자면 말이지, 신이란 존재가 사랑 그 자체인 이상 신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아. 그렇다면 신은 너를 있는 그대로 창조했음이 분명해. 그리고 그건 다른 모든 사람들, 모든 행성들, 모든 산들, 모든 모래알들, 모든 노래들, 모든 눈물들, 그리고 모든 호모 녀석들에게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모두 신의 아이들이니까. 에멧. 신은 우리 모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퀴어 애즈 포크> 중-

원제인 ‘Queer as Folk’를 굳이 풀어보자면 ‘보통 사람들인 게이들’ 정도가 될까. 동성애자를 뜻하는 영국 속어 Queer에 ‘사람들’을 뜻하는 Folk의 절묘한 어울림. 함축적인 영국식 위트가 꽤 느껴지는 제목이다.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되었던 동명의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미국판 <퀴어 애즈 포크>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사는 게이 군상의 삶을 그린다. 광고회사 중역이자 희대의 플레이보이인 브라이언과 갓 커밍아웃한 꽃소년 저스틴, 브라이언을 사랑하는 만화가게 주인 마이클을 중심으로, 답답한 성격의 회계사 테드와 ‘가장 게이스러운’ 에밋, 레즈비언 커플 린제이와 멜라니 등 (미국에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동성애자 주인공들이 얽히고 설켜 미워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과연, 성정체성을 흔쾌히 팝 컬처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세대의 소프 오페라다.

황금 시간대의 케이블TV에서 게이들의 삶을 (놀랄 만큼 과격한 섹스신을 듬뿍 장식한 채로) 그려내는 드라마가 방송된 것은 북미에서도 가히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급기야는 동방보수지국의 케이블 방송에서도 별다른 검열의 상처없이 꿋꿋하게 방영되고, 케이블TV로서는 놀랄 만한 시청률까지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 중 한명인 마이클이 <퀴어 애즈 포크>식의 농담을 던지며 <스파이더 맨2>에 카메오 출연했던 것처럼, <퀴어 애즈 포크>는 북미에서 이미 대중적인 트렌드로 무사 안착했다. 하지만 핑크산업(Pink Industry: 동성애자를 소비자로 하는 산업)과 문화 자체가 전무한 한국에서는 이것이 마치 일종의 ‘성정치 혁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아, 그러나 지나치게 심각하게 따지고 들어가지는 말도록. 그들도 우리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다가 성적 매력 하나만으로 (연봉도, 학벌도, 집안도 따지지 않고) 짝짓기가 가능할 만큼 순결한(!) 세계를 은밀하게 엿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도 <퀴어 애즈 포크>는 아찔한 쾌락이다. 물론 동성애라는 화두를 패셔너블하게 포장해 팔아먹는 술수가 아니냐는 손쉬운 비판들도 유효하지만, <퀴어 애즈 포크>가 게이 사회극이 아닌 이상 주류사회의 억압된 섹스 에너지에 살짝 농을 걸려면 원래 그 정도 스타일은 필수다. 오히려 <퀴어 애즈 포크>의 문제는 이게 ‘소프 오페라’라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횟수를 늘리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야 하다보니,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야기는 늘어지고 캐릭터들은 망가져간다. 특히 계몽적인 이야기들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제작진의 강박이 드러날 때마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아쉽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가 있나. 그래도 여전히 <퀴어 애즈 포크>는 21세기 한국에서 방영, 상영된 모든 매체를 통틀어 가장 ‘섹시한’ 도발이다.

오리지널 <퀴어 애즈 포크> 영국 시리즈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카피는 없다!

1999년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되어 브리튼 섬을 뒤집어놓았던 오리지널 시리즈. 미국 시리즈와는 달리 두번의 시즌으로 깔끔하게 막을 내렸다. 전체적인 캐릭터 구성과 이야기의 발단은 동일하다. 하지만 과도한 MTV와 팝 컬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미국 시리즈와는 달리 좀더 현실적인 플롯 구성과 깊이있는 캐릭터의 만듦새를 지니고 있으며, 시니컬한 영국식 블랙유머의 알싸함도 뛰어나다. 주연배우들이 미국 시리즈보다 ‘덜’ 섹시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이에 동의하기 힘든 팬들도 꽤 있을 듯. 일종의 우화처럼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영국 TV역사상 기념비적인 순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직까지 국내 방영 계획은 전혀 성사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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