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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온 TV [3] - <퀴어 아이>
김도훈 2004-12-02

마초를 꽃미남으로 ‘수술’해 드립니다, <퀴어 아이>

Key Point l 구질구질한 이성애자 남자들을 개조하는 독수리. 아니, 퀴어 5형제.

카이안(미용 전문가): 당신 머리는 정말 기름기가 좔좔 흘러요. 도대체 어떤 헤어 제품을 썼죠? 마이클(이성애자 출연자): 음… (병을 꺼내며) 여기에 ‘부드럽고 아름답게’라고 쓰여 있네요. 카이안: 그래요? (병을 뺏어들며) 좀 보죠. 아악, 이건 흑인들 머리를 위한 제품이라고요! 마이클: 그러네요. 카이안: 그러네요? 그 말밖에 안 나와요 지금?

Fab Five를 아십니까. Fabulous Five(졸라 멋진 5인방)가 이성애자 남자들을 변신시키기 위해 떴다. <퀴어 아이>는 미국의 케이블 채널인 <브라보TV>에서 절찬리에 상영되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원제인 <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는 ‘이성애자 남자들을 위한 동성애자들의 혜안’ 정도로 재미없게 해석할 수 있을 터. 여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퀴어 아이> 역시 유쾌하게 가학적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패션 스타일리스트, 미용 전문가, 음식 감정가, 매너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이렇게 5명의 게이 전문가들이 등장해 (여자친구나 가족들의 신청으로 선택된) 구질구질한 이성애자 남자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들의 집은 화장실부터 거실까지 송두리째 바꾸어준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컨셉이기 때문이다. 독설과 잔인한 비평은 필수인 셈이지만 그게 그리 밉지가 않다.

시리즈의 첫회에 등장한 ‘부치’라는 이성애자 남자는 이름이 알려진 화가. 며칠 안 감은 듯한 긴 머리와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시커먼 색의 추레한 옷차림, 음식물 쓰레기가 구석구석 들어차 있는 집안 꼴에다 센스라고는 전혀 없는 집안 인테리어까지. Fab Five는 여자친구의 명을 받고 부치의 집으로 쳐들어가 옷장을 헤집어놓고 집안 꼴에 대해서 독설을 늘어놓으며 인간 개조 작업에 착수한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다섯명의 독설이 만만치가 않다. “나는 이 옷의 소맷자락이 똑바르게 줄잡혀(Straight) 있는 게 좋아요”라고 부치가 말하면, 옷장의 옷들을 휘휘 걷어내며 “오! 나도 그게 쫙(Straight) 다림질된 게 좋아요. 그러나 문제는, 그걸 당신 몸에 걸쳐놓으면 바보 같아 보인다는 거죠”라고 받아치는 식이다. 잔인하기도 해라. 하지만 바로 그것이 Fab Five의 매력이다. 다섯명의 게이 남자들이 한 남자를 둘러싸고 쉼없이 휘두르는 패셔너블한 삶의 권력. 특히나 카우보이, 해병대원, 변호사 등의 직업을 지닌 딱딱한 마초 남자들이 다섯명의 입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며 ‘그래요. 저도 한번 사람답게 살아볼게요’라는 표정을 짓는 모습은 잔인한 쾌감을 안겨준다.

Fab Five가 꽤나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게이들이라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게다(특히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는). 출연자의 낡은 청바지에 기겁하며 “어떻게 할인매장에서 옷을 살 수가 있어요!”라고 윽박지른 뒤에 한벌에 기백달러짜리 ‘디젤 청바지’를 사입히고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 친구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성애자-동성애자 권력구조를 핑크색 도끼로 내리찍고, 마초 남자들의 스타일과 사고방식을 헤집으며 신나게 노는 Fab Five를 그리 인색하게 바라보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지 싶다.

미국에서는 300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매주 TV 앞에 끌어모으고 있는 이 초유의 히트 프로그램은 특히 지난 10월31일 NBC가 제작비를 대폭 인상해서 지원하겠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더욱 탄탄한 앞날을 보장받았다. 이참에 백악관 특별판이라도 하나 제작해서 조지 부시의 하품나는 패션 센스라도 좀 바꿔주기를. 세계 평화는 원래 미미한 변화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