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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온 TV [4] - <플레잉 스트레이트>
김도훈 2004-12-02

누가 스트레이트고 누가 게이인가! <플레잉 스트레이트>

Key Point l “누군지 맞혀보라니까요!” 스테레오타입의 허를 찌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묘미.

“시청자가 게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나중에는 스트레이트(이성애자)로 밝혀질지도 모르고, 스트레이트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게이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모든 미국인들에게는 ‘절대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정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레슨이 될 것이다.”-존(남성 출연자)-

여기에 14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 ‘재키’가 있다. 그녀는 100만달러와 사랑을 동시에 쟁취할 수 있는 인생일대의 기회를 맞은 상태. 문제는 14명의 남자들이다. 간택을 기다리는 남자들중에는 게이 남자들이 섞여 있다. 그녀는 ‘여자의 직감’과 주어진 찬스들을 적절히 구사하며 스트레이트 남자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녀의 선택이 옳다면 선택된 스트레이트 남자와 사이좋게 50만달러씩 나누어 가지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남자가 게이라면, 불쌍한 재키. 100만달러는 선택된 게이 친구가 꿀꺽 삼키게 될 운명이다. 그러니 원제인 <Playing It Straight>도 이제는 감이 올 터. ‘스트레이트(이성애자)처럼 가장하기’라는 뜻이다.

<플레잉 스트레이트>는 올해 초 미국의 <폭스TV>에서 금요일 저녁 알토란 시간대에 편성해 황금 같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다. “역시 팔리는 건 퀴어+리얼리티야!”라며 웃는 제작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한데, 어쨌거나 겨드랑이가 저절로 간지러울 정도로 재미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플레잉 스트레이트>에는 두개의 팽팽한 신경전이 존재한다. (1)스트레이트 남자를 골라내야만 하는 재키의 딜레마와 (2)스트레이트인 척 행동하면서 “이중에 어떤 녀석이 진짜 스트레이트일까?” 하고 머리를 굴리며 살아남아야 하는 게이 남자들 사이의 긴장감이다. 정체성을 숨기고 재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이는 남자들의 괭이싸움(Cat Fight)이 꽤 살벌하다.

물론 재키에게는 많은 기회들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14명의 남자에게 그녀는 “오늘밤 내가 입을 만한 옷을 사와라. 14벌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골라온 남자와 저녁 데이트를 하겠다!”는 지령을 내린다. 물론 이것은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는 트릭이다. 지나치게 패셔너블해서 재키의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사온다면 그건 게이일 가능성이 높다. 게이들이 스트레이트들보다 패션 센스가 뛰어나다는 게 일반적인 속설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본성을 억지로 숨기려고 일부러 형편없는 복장을 가져온다면 알토란 같은 그녀와의 데이트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게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스테레오타입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다리털을 밀었으니까 게이, 공화당원이니까 스트레이트, 패션 센스가 좋으니까 게이. 이런 식이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함정으로 작용할 것은 당연하다.

(스포일러의 강박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밝히자면) 첫회에서 재키는 단지 고등학교 이후로 심각한 여자친구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남자를 게이로 지목해낸다. 과연 그녀는 옳았고, 그는 게이임을 고백하며 <플레잉 스트레이트>를 떠난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다른 남자 출연자들은 망치로 크게 얻어맞은 표정을 짓는다. 왜냐하면 그는 (심지어는 게이들이 보기에도) 완벽한 이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이 재미없게 딱딱한 남자가 쇼를 떠나면서 남기는 말이 더 걸작이다. “나는 보수적인 공화당원이다. 그리고 스포츠를 좋아하고, 시가도 즐겨 피운다. 단 한 가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있다면 그저 내가 게이라는 사실뿐이겠지.” 이처럼 <플레잉 스트레이트>는 단순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알싸한 즐거움을 떠나, 게이와 스트레이트를 구분하는 일반적인 잣대에도 경쾌한 한방의 펀치를 날린다. 후진 패션에 개의치 않는 복학생 스타일의 마초들이 모두 이성애자라는 믿음은 이제 싹 거두는 게 옳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