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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의 진상 [4] - 임상수 감독 인터뷰 ②
사진 오계옥이종도 2005-01-04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감이 있다.

=그 평가가 부당하다는 의미로 묻는 거겠지? 그야 내가 기자들에게 충분히 존경심을 표하지 않아서 그랬겠지. (웃음) 아직 네 작품밖에 안 했다. 부당한 대접은 있을 수 있지만 길게 계속 영화를 만들었을 때는 그런 대접이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난 묵묵히 만들 뿐이다. 저평가된 이유는 생각해본다. 내 영화의 지적 영역이 저평가하는 이들의 지적 영역보다 넓다는 거다. 내 영화는 복잡하다.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그렇다. 내가 배우‘빨’이 없는 것도 저평가의 원인이다. 박찬욱과 허진호 영화는 배우가 꼬이고 그러면서 투자가 끝나잖나. 배우들이 읽고 반해야 펀딩이 되는데, 내 건 좀 쉽지 않다. 만 해도 캐스팅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충무로에서 15년 동안 배운 게 있다면,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적 야심이 느껴진다.

=상업영화감독으로서 나는 정체성이 확실하다. 난 제작자와 투자자에게 돈을 벌어다준다. 그렇게 가야 한다고 믿고. 또 하나, 나의 영화는 동시대 한국인의 정신상황을 살펴보는 일이다. 일본에서 그 역할을 이마무라 쇼헤이가 해냈다. 이 작품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겠지. 하지만 난 내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만들 뿐이다. 새롭게 찍지도 않았다. 손톱만큼도 새로워지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발칙해지려고, 냉소적으로 되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디 그게 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인가. 쌓인 게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일간지 기자, 카페 사장, 공무원을 캐스팅하고 심지어 감독 자신도 연기를 하는 등 배우를 고르는 안목도, 캐스팅하는 안목도 남다르다.

=연극배우인 경우에는 조역, 단역까지 일일이 공연장 쫓아다니며 그들이 나오는 연극을 다 봤고 직접 만나보는 등 부지런을 떨었다. 심재명 대표가 그러더라. ‘다 이렇게 해도 될까. 이렇게 해서 나아질까?’ 난 미세하게 나아질 거라고 했다. 그 미세함들이 모여서 작품을 만드는 거 아닌가. 가령 내가 의사로 출연하는 장면은 신은 하나지만 대사가 제법 되고 백윤식 선생과 맞붙는 장면이다. 누가 하려고 하겠나. 돈은 많이 못 받고 내공은 엄청나야 하는데. 그래서 내가 했다. 고문장면의 경우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아무나 와서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극단 목화 배우들이 와서 고생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목화 출신과 많이 작업하는데 그들과 쌓인 신뢰와 팀워크가 내겐 중요하다. 이번 캐스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비전문 배우를 기용해서 불안한 구석도 있었을 텐데.

=한 통신사의 부장을 출연시켰는데 마스크가 좋더라고. 단역이라고 해도 젊은 사람을 캐스팅하면 싸구려 조폭영화처럼 되니까. 백윤식 선생의 경호요원으로 썼는데 차에서 내리는 장면을 찍었다. ‘당신이 내린 뒤 부하가 차 문을 닫을 테니 문은 닫지 말라’고 했는데 긴장해서인지 계속 닫더라. 패닉상태인 거야. 계속 NG를 내는데 구경온 그 부장의 아들이 ‘아버지 문 닫지 말랬잖아’라며 핀잔을 주더라고. 백 선생이 그러대. ‘얘야, 그게 쉬운 게 아니란다.’

-처음부터 백윤식 선생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던데.

=정말 매력적이다. 세상에 그렇게 대사를 맛있게 하는 배우가 어디 있을까. 따로 뵙고 언젠가 다시 다른 작품으로 모시겠다고 얘기를 했다.

-백윤식 선생을 비롯해 연배 있는 영화배우들이 정치적으로 이 영화에 동의했을까.

=백 선생조차 ‘정치적 의도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캐릭터의 예술성에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박정희를 비판하겠다는 게 아니라 박정희를 크게 존경하지 않는다는 의도다.

-한석규와 함께 일한 느낌은 어땠나.

=영화사에선 한석규가 2%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좋아하더라. 크게 부활할 거라고 말이다. 첫 컷을 찍는 순간 저래서 스타구나 느끼게 해주더라. 큰 배우들 특히 한석규와 촬영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은 아쉽다.

-베를린영화제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

=아마 영화사에서 VHS 테이프를 보냈을 거다. CG도 음악도 없는 거다. 베를린 말고 칸에 보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디서 상을 타는가가 작품의 가격을 크게 좌지우지하니. 그러나 못 갈 수도 있는 거다. 사실 중요한 작품을 꾸준히 생산할 수 있다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다. 이런 식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완성된 프린트를 보내야 하는데.

-동시대 작가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나. 당신의 영화는 다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함께 묶기도 어렵다.

=연출부 그만두고 1994년부터 로 입봉하기까지 4∼5년을 백수로 보냈는데 그때 좋은 감독 다섯만 있어도 한국 영화계가 폭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영화지에서 특집거리를 할 만한 감독이 열명은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시장도 커졌고. 아름다운 일이지. 나는 홀로 돌아다닌다. 또래들과도 잘 안 어울리려고 한다. 그러는 순간 내가 ‘꼰대’가 되니까.

-그렇게 혼자 다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으로 혼자 떠돈다는 건 무서운 일 아닌가.

=폭압적인 중·고등학교 시절은 너무 힘들었다. 대학을 가면 전혀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고등학교 동문회에 나갔는데 늦게 왔다고 야구방망이로 때리는 걸 보고 10분 만에 나왔다. 그뒤로 동창회에 나간 적이 없다. 최악은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그게 군대였다. 진짜 한국에서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이번 영화엔 아무튼 총격사건이 들어가야 하는데, 액션영화를 찍은 경험이 없지 않나.

=개인적으로 시리즈와 등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난 임권택 감독 연출부 시절 1, 2와 등에 참여했다. 액션쪽으로 안 풀리고 섹스물로 풀려서 그렇지 나도 액션영화, 버디무비를 좋아한다.

-당신 작품은 끊임없이 가족주의와 남근주의와 폭력적인 부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영화도 넓게 보면 그렇지 않나.

=나는 정신과 의사들이 쓴 사례연구를 즐겨 읽는데 인상적으로 읽은 책 가운데 란 게 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남기는 고통이 대물림된다는 내용인데 이를테면 도 고통의 연원을 부모로 보고 있지 않나. 한국에서 가족의 가치는 신화화되고 있다. 가족이 중요하다면 가족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진실을 직면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괴물만 양산할 따름이다. 그게 바로 의 이야기다. 난 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멱살을 잡는 장면이 가장 전복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개봉 뒤에는 뭘 할 건가.

=난 실업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크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 사실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호하다. 이 작품이 돈이 되어야 뭘 할 수 있겠지. 난 엄청나게 게으르지만 작품에 관해서만큼은 아니다. 이 끝나자마자 벌써 , 프리프로덕션 때 을 준비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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