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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어드벤처 바람
2001-06-29

인디아나 존스의 후예들, 흥행의 성배를 들다

■ <미이라>로 다시 불붙기 시작한 액션어드벤처영화의 매력과 흥행요인

이건

일종의 유행이다. 98년 <딥 임팩트> <아마겟돈>을 고비로 재난영화가 쇠퇴기미를 보이더니 올해 여름 극장가는 어드벤처영화의 쇼윈도가 됐다.

<미이라2> <툼레이더> <아틀란티스>, 이 세편의 원전은 같다. 이집트, 고고학자, 도굴꾼, 잃어버린 대륙, 이 정도 키워드만 있으면 금방

눈치챌 것이다. 이들 영화는 모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난해 서사극 <글래디에이터>가 차지한 영토를 전쟁영화 <진주만>이

점령한 걸 제외하면 확실히 유행은 바뀌었다. 회오리바람, 화산폭발, 혜성충돌에 무감각해진 관객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건 이제 풍뎅이떼와

터미네이터 같은 고대 전사들과 3D로 만든 괴물들인 것이다.

모두가 존스의 후예들

눈에 띄는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시즌 패션은 1999년 <미이라>의 흥행에서 예견됐다. 제작비 8천만달러에,

스티븐 소머즈라는 낯선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 4억달러를 넘기는 성공을 거뒀다. 브랜든 프레이저, 레이첼 와이즈 등 결코 할리우드

A급스타라고 할 수 없는 배우들로도 이만한 결과를 냈다면 연출이 뛰어나거나 대단한 스펙터클이 있어야 정상일 텐데 <미이라>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피라미드와 모래사막과 괴물이 주연 남녀보다 부각된 포스터는 <미이라>의 출신성분을 슬쩍 감추고 있지만

영화를 본 관객은 그들이 본 게 뭔지 금방 알아차렸다. 미라에 납치된 여인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미국인 모험가 릭 오커넬, 그는 1989년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더 젊어진 인디아나 존스였던 것이다. <미이라>의 흥행비결은

무엇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데 있다. 제작진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저작권을 가진 유명한 공포영화의 캐릭터,

미라를 어린이가 볼 수 있는 눈높이로 맞췄다. 연애담은 말랑말랑하고 폭력장면은 절정에 이르더라도 다량의 피를 분출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렀다.

대신 유머와 액션은 쉴틈없이 이어져서 일단 올라타면 정확히 뭘 봤는지 기억 못해도 지루할 틈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미이라2>는

<미이라>의 이런 요소만 버전업한 경우다. 전편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구조에 대해 “이번엔 뭐였냐고? 뭐 미라랑, 피그미랑, 또

큰 벌레들이랑. 늘 똑같지 뭐”라고 스스로 답하는 <미이라2>는 <미이라>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베낀

것을 개정증보판으로 되풀이한 영화인 셈이다.

<미이라>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참조한 방식이 공포물 캐릭터인 미라를 수입하고 젊음과 유머를 첨가한 것이라면 <툼레이더>는

영화 밖에서 활로를 찾은 특이한 경우다. 널리 알려졌듯 게임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는 여자 인디아나 존스다. 1996년 탄생한 <툼레이더>는

인디아나 존스에게 없는 매력으로 치장한 액션어드벤처게임이었다. 1930년대 활약한 인디아나 존스는 채찍이 가장 강력한 무기였지만 현대의 영웅

라라 크로프트에겐 쌍권총을 비롯한 첨단무기가 있다. 게임이 지적매력을 갖춘 터프가이를 섹시한 여성전사로 탈바꿈시키자 할리우드는 그(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간 할리우드가 <모탈 컴뱃> <수퍼마리오> 등 유명한 게임캐릭터를 초빙해 별 재미를 못 봤지만 <툼레이더>

제작진의 기대는 좀 달랐다. 유명한 영국 고고학자의 딸이라는 표면적인 혈통 외에 그녀가 수차례 스크린에서의 모험으로 10억달러 넘는 돈을 거머쥔

인디아나 존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이 제작진을 고무시켰다. 게다가 그녀가 안젤리나 졸리라면? 감독 사이먼 웨스트는 “그녀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과장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툼레이더>의 성패는 누가 라라 크로프트 역을 맡느냐에 절반 이상 달려

있었다. 제작진은 그녀야말로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최고의 스펙터클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스토리나 캐릭터가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에만 관심을

둔 영화 <툼레이더>는 그 증거다.

2001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 역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빚진 작품이다. <아틀란티스>

제작진은 동화보다 비디오게임에 익숙한 어린 관객을 겨냥해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 <아틀란티스> 제작자인 돈 한은 “우리는 수많은

동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 더 신선한 시도를 하고 싶었고 더 중요하게는 관객의 요구에 귀기울여

종전과 다른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사라진 대륙을 찾아 해저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된 계기가 어드벤처영화의

유행을 뒤쫓는 건 아닐까?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 책임자 토머스 슈마허는 이런 견해를 부정한다. “애니메이션은

패션을 쫓는 게 불가능하다. 제작기간만 4∼5년씩 걸리는데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사실 인과관계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미이라>는

유니버설이 80년대 말부터 매달린 프로젝트였고 <툼레이더>는 1996년에 나온 게임에서 비롯된 영화이며 <아틀란티스>는

<해저2만리>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디즈니의 모험영화 전통에서도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각자 나름대로 정통성을 주장할

근거를 갖추고 있지만 유전자의 절반쯤은 확실히 같다.

유아적인 어른을 위한 가족 어드벤터

그런데 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일까? 우연찮게도 올해는 삼부작의 첫 작품인 <레이더스>가 개봉한 지 20년이 된 해이다.

1981년 6월 개봉한 <레이더스>는 조지 루카스가 제작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아 콤비를 이룬 첫 작품. 각자 <스타워즈>와

<죠스>로 흥행기록을 작성한 영화신동들이 아직 30대이던 시절, 의기투합한 이 작품은 2천만달러의 제작비로 흥행수입 3억8300만달러를

넘기는 흥행작이 됐다. 그리고 1984년 <인디아나 존스>, 1989년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으로 이어진 삼부작은

80년대를 인디아나 존스의 시대로 만들었다. <스타워즈>에서 조연에 머물렀던 해리슨 포드는 이 시리즈를 통해 특A급 배우가 됐으며

루카스-스필버그조는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이 됐다. 단순히 지난날의 영광을 회고하자는 건 아니다. 80년대를 풍미한 인디아나 존스의 매력을

사람들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올해 초 영국잡지 <엠파이어>가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영국인들은 인디아나 존스를 영화사상 가장 선호하는

액션영웅으로 뽑았다. 3200여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43%,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는 22%,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매클레인은 18%를 차지했다. 시카고대학의 별볼일 없는 고고학 박사가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앞지른 이 결과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사실 <레이더스>의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을 때 스필버그는 제임스 본드 같은 플레이보이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중간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해리슨 포드가 캐스팅되고 루카스, 스필버그 외에 로렌스 캐스단 등이 시나리오작업에 참가하면서 존스는 본드와

전혀 다른 인물로 태어났다. 깔끔한 정장과 칵테일 파티가 어울리는 본드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적을 물리치곤 하지만 존스는 연신 얻어터지고

번번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어쨌든 존스가 플레이보이가 아니란 사실은 관람등급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평론가 로빈 우드는 <스타워즈> 삼부작과 <인디아나 존스> 삼부작으로 대표되는 루카스-스필버그 신드롬에

대해 “성인관객을 염두에 둔 어린이용 영화들, 아니 성인관객을 어린이로, 더 정확히 말하면 유아적인 어른,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으로 보는

영화들”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건 가족어드벤처영화의 순진성에 은근히 배어 있는 가부장제와 보수주의와 인종주의의 편견을 꼬집으려는

것이지만 영화산업은 이런 정치적 의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그게 흥행이 되고, 그것도 엄청나게 잘된다는 점이었다. 유아적 환상으로

도피할 것을 권하는 스필버그식 모험담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프랜차이즈와 머천다이징에도 적합했다. 삼부작을 기획할 때부터

타고난 사업가인 루카스의 머리에 들어 있던 것이었지만 속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관련상품(인디아나 존스의 채찍, 모자, 만화 시리즈, 비디오게임,

테마파크 등)이 하나둘 시장에 나왔다. 비아냥거리는 말이긴 하지만 루카스-스필버그가 할리우드를 맥도널드 체인처럼 바꿔놓은 인물이라 말하는 것도

이런 면에서 수긍이 간다. 여하튼 그들이 바꿔놓은 할리우드는 동심을 그리워하는 대중에게 미지에 대한 꿈과 무용담과 현대적 영웅을 선사했고 그건

지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유용한 것들이다. 게다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액션활극으로서 최상급의 작품들. <레이더스>는

최근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발표한 가장 스릴있는 영화 100편 가운데 10위를 차지했다. 레이건 시대의 반동적 흐름을 반영한 영화라는 근엄한

평단의 입장이 무색하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지금 다시 봐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게 하는 에너지로 넘친다. 수차례 반복되는 위험한

상황을 스턴트와 재치와 순발력으로 극복하는 이들 영화는 적당한 로맨스와 유머도 잊지 않는 대중영화의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돈냄새가 나는 곳에 블록버스터가

뭐가 돈이 되는지 잘 아는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이 이런 시리즈를 지난 10년간 묵혀뒀다는 게 오히려 의아하지만 <미이라>가 선수를

치고나간 지점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대한 향수인 것은 분명하다. <레이더스>의 4500마리 뱀, <인디아나

존스>의 2만 마리 벌레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의 7천 마리 쥐는 모두 진짜인 반면 <미이라>의 딱정벌레떼와

미라 전사들이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는 차이가 있지만 <미이라>는 내러티브 구조까지 <레이더스>를 빼닮았다. 물론

<미이라>나 <툼레이더>는 결코 그들이 기대고 있는 원작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원작의 영화적

정수는 놓치고 그래픽과 마케팅 기술만 버전업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프랭크 샤넬로가 쓴 전기에서 스필버그는 <레이더스>에 쏟아진

비판에 대해 “<레이더스>는 팝콘이다. 팝콘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 게다가 소화도 잘되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결국 <레이더스>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몇번이나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영화인 것이다”라고 답했다지만 최근의 모작들을 보노라면

아무나 맛난 팝콘을 만드는 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지금 추세로 보면 <미이라>나 <툼레이더>는 계속 속편을 이어갈 것이다. 비평가들이 아무리 불만스러워해도 개봉 첫주 흥행성적은

어드벤처물의 호소력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90년대 재난영화들처럼 상당기간 유행을 이어갈지, 잠시 스쳐지나는 바람이 되고 말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인디아나 존스> 4편이 나온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스타워즈> 삼부작에 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1>

열풍이 루카스 제국의 건재를 확인시켜준 경험에 비쳐보면 4편도 만만찮은 반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이미 스필버그와 해리슨 포드가 합류할

뜻이 있다고 밝힌 4편 시나리오는 현재 <식스 센스>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이 쓰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렇게 <레이더스>

20주년을 기억하고, 시리즈 4편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것 자체가 루카스-스필버그식 마케팅 전략에 말려드는 것 아닐까? 설령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유년은 제다이의 기사나 채찍을 잘 쓰는 헐렁한 옷차림의 고고학자를 만날 때 괜시리 흥분하고 만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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