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영화작가의 영화작가’를 만나다, 자크 리베트 회고전
홍성남(평론가) 2005-01-06

서울아트시네마, 1월4일부터 자크 리베트 회고전 개최

<알게 될 거야>

앙드레 바쟁을 위시한 의 편집진이 모여 벌인 1957년의 토론은 여전히 자주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것이다. 당대 프랑스영화의 상황(전개와 위기)을 이야기하기 위해 마련된 그 자리에서 바쟁은 자크 리베트부터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고 말한다. “리베트야말로 그 주제에 대해 가장 급진적이고 단호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이에 리베트는 바쟁의 그런 언급을 배반하지 않을 만큼 ‘급진적이고 단호한 의견’을 개진하면서 논의의 서두를 뗀다. 그 가혹한 첫 발언인즉, 당대의 프랑스영화란 야심도, 그리고 진정한 가치도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버전의 영국영화라 불러도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르면, 리베트는 단지 프랑스영화의 당대 상황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의 상황에 대해서도 격하지만 야심찬 발언을 토해낸다. 그는 영화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문학을 따라가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에 뒤처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가 진정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은 문학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클로드 샤브롤의 말마따나 평론가 시절의 리베트란 사람들이 언뜻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유순한 사람인 듯하지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누구보다도 사나워지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경력 전체를 돌이켜보자면, 리베트는 나쁘게 말하면 그런 사나움 혹은 광포함, 좋게 말하면 급진성의 자질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단지 앞의 예와 같은 과격한 발언을 내뱉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발언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몸소 보여줘왔던 인물인 것이다. 그는 출신의 누벨바그 동료들 가운데 일찌감치 영화 만들기에 뛰어들면서 하나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장편 데뷔작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진로가 구축되는 ‘과정’으로서, 만들기와 보기의 지속되는 ‘경험’으로서, 그리고 상이한 가닥들이 만나고 충돌하는 ‘구조’로서 내러티브에 대한 과감하고 급진적인 실험에 몰두해왔다. 그렇게 영화란 매체 자체를 근본적인 시각에서 다시 사유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이른바 “영화작가의 영화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영화적 야심을 재료 삼아 만들어진 리베트의 세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드나들 출입구를 찾을 수 없는, 그래서 다가가기 힘든 견고한 어떤 영역으로 여겨진다. 그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통로들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이 알려준 ‘픽션의 집’(The House of Fiction)이란 개념일 테다. 리베트의 세계에서는, 연극무대( )의 형태를 띠든, 아니면 화가의 작업실이 되었든(), 혹 그것도 아니면 우스꽝스럽게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상한 집의 모습을 보여주든(), 여하튼 거의 항상 그렇게 불릴 공간이 존재한다. 일종의 무대이기도 하고, 공백이기도 하며, 심연이기도 한 그것을 통해 미스터리와 음모의 기운이 뿜어나오고 픽션의 본질에 대한 사유가 펼쳐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이 어디로부터인가 결국에는 삶 자체가 슬그머니 비집고 나온다.

리베트의 세계가 범접하기 힘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마치 미로처럼 구획된 내러티브의 진로 안에서 시간의 굉장한 압력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를 경험하는 것은 보통 세 시간에는 가볍게 육박하는 긴 지속시간을 통과한다는 것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이건 사실 리베트의 영화들 자체가 그 긴 흐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러티브의 실험가로서 그는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이 결국 하나의 발언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처음에는 지루함만 안겨줄지 모르지만, 조금 있으면 탐색의 즐거움을 제공할 긴 지속시간을 통과해야 그 자체가 구조를 말하는 혁신적인 영화에 다가갈 수 있다. 그 장대한 내러티브의 흐름을 때론 힘겹지만 유쾌하게 유영할 기회가 우리에게도 드디어 왔다.

자크 리베트 회고전 The House of Fiction: Jacques Rivette Retrospective 주최: 서울시네마테크 후원: 주한프랑스대사관,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기간: 2005년 1월4일(화)∼13일(목)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문의: 02-3272-8707, www.cinemathequeseoul.org ☞ 상영일정표 보러가기

상영작 안내

파리는 우리의 것 Paris nous appartient l 1960년 l 흑백 l 141분

미치광이 같은 사랑 L’Amour fou l 1969년 l 흑백 l 252분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Celine et Julie vont en bateau l 1974년 l 컬러 l 193분

대결 Duelle l 1976년 l 컬러 l 121분

누드모델 La Belle noiseuse l 1991년 l 컬러 l 229분

잔다르크Ⅰ- 전투 Jeanne la pucelle: Les Batailles l 1993년 l 컬러 l 160분 잔다르크Ⅱ- 감금 Jeanne la pucelle: Les Prisons l 1993년 l 컬러 l 176분

파리의 숨바꼭질 Haut bas fragile l 1996년 l 컬러 l 169분

은밀한 방어 Secret defense l 1998년 l 컬러 l 166분

<파리는 우리의 것>

<미치광이 같은 사랑>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대결>

<누드모델>

<잔다르크 I - 전투>

<파리의 숨바꼭질>

<은밀한 방어>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