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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홍상수 인터뷰 [3] - 박찬욱 감독 인터뷰 ②

-이번 작품은 아직 모르겠지만 순결한 영혼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한 인간이 괴물이 되거나 파멸돼 왔다. 박찬욱 영화 속의 인간은 왜 자꾸 그렇게 되는가.

-영화는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좋다. 영화 속의 인물은 변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상업영화의 핵심이다. 그 변화에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어떤 깨달음을 거쳐 구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과 그 반대방향. 내 생각에는 괴물이 되어가면서 그것이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가 그런 추락을 의식한다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전락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인물들은 어떤 의미에선 올라가는, 구원의 운동을 하고 있다. 그게 내 영화 속 인물들의 운동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구원을 향한 몸부림치는 자체가 지닌 숭고함,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몸부림이 결과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는 목적론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가 되지 못하는, 되려고 하나 끝내 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좀 덜하다.

-아까 철없다가 지독하게 됐다가 끝내는 불쌍해진다고 하지 않았나? 결국 같은 것 아닌가.

=그런가? 마지막 장면은 다른데.

-일련의 부침을 겪으면서 그 피드백을 통해 영화의 가능성은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한 게 있지 않을까.

=만드는 데 같이 하는 사람들, 배우들과 스탭들, 그리고 나 스스로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갖는 느낌이 전부인 것 같다. 이 흥행은 나빴지만 잘 전달이 안 됐다고 볼 수도 없고, 를 많은 사람들이 봤지만 잘 전달됐다고 볼 수도 없다. 비평은 비평가 한명의 반응이라서 일반화하기 어렵고. 피드백에 대해선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은 것 같다. 타르코프스키 책을 보면 시골 아줌마가 편지를 보내왔다는 구절이 있는데 나한테는 그런 게 참 낯설다.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한명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고 주관이어서 타르코프스키처럼 뿌듯할 것 같지 않다. 영화를 완성한 순간 그 작품에 관심이 없어져버린다. 그래서 DVD의 오디오 코멘터리가 고역이다.

-2004년을 정리하는 기사를 마련하면서 기자로서 재밌었던 게,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 같은 경우는 박찬욱 감독이 칸에서 상을 받은 효과가 가 한국 영화산업에 미친 파급력과 비슷하고, 영화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보는 기준이 유연해졌다고 긍정적으로 본 반면 정성일, 김소영, 허문영의 3인 대담에선 요즘 영화 지망생들이 모두 박찬욱 따라하기 일변도인 것에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그런가? 정말? 난 진짜로 몰랐다. 2~3년 전에 심사하고 그러면 다 홍상수던데. 그 사이 바뀌었나? 그러면 또 바뀔 거 아닌가, 뭐가 걱정이지. 봉준호류가 나오든지, 임필성류가 나오든지. 바뀌는 거지.

-초고 나왔을 때, 아내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는데 무척 맘에 안 들어했다고 했는데 최종본에 대한 반응은.

=제일 잘 썼다고 한다. 해피엔딩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복잡한 느낌을 일으키는 결말을 높이 평가하더라. 그리고 금자씨라는 인물이 아주 독특하다고.

-이번에 테크놀로지든 뭐든 개인적으로 실험해보는 게 있나.

=한 가지 있는데 감춰두고 싶다. 때 하고 싶었던 건데 제작비 등의 문제로 못한 거다. 는 그게 어울리는 영화가 아니었고.

-이번에도 그렇고 왜 번번이 유괴가 등장하나.

=내가 그것에 심오한 뭔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컨대 살인은 한순간에 끝나버리는 건데 유괴는 아이를 빼앗긴 사람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고, 훨씬 잔인한 느낌을 주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다.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소재다. 이런 건 있다. 에 유괴의 테마가, 에 감금의 테마가 있는데 에선 그게 재등장하고 많이 바뀌어서 그 모티브들이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생각을 미리 하긴 했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앞선 두 영화가 언급되곤 한다. 예컨대, 배두나가 유괴를 합리화하기 위해 펼치는 논리와 비슷한 게 이번에도 나온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공포스러운 건.

=조연이 워낙 많이 나오는데 조연 모두가 항상 연기를 잘할 수만은 없을 테니까 어떤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 조연들을 다 베테랑으로 할 수도 없고, 모험적인 캐스팅도 있다.

-조연이 많은 건 이야기를 위한 방편인가.

=물론, 난 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 만들면서 흥미를 느끼는 게 금자씨를 이영애 자체로 설명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를 만나면 그의 회상 같은 것을 통해 설명한다는 점이다. 어떤 여자는 금자씨가 무서운 여자로 마녀 같다고도 하고, 어떤 여자는 친절하다고도 하고.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금자씨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노력이 일시에 물거품이 되는 허무한 지점에 이른다. 거의 다른 영화가 되다시피. 그것이 너무나 허무해서 같은 반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프로듀서와 미술감독을 빼면 대부분 의 스탭과 다시 작업한다. 이번 작품은 이전과 달리 이렇게 간다고 말해둔 게 있다면.

=아주 기교적인 작품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촬영에서 무브먼트가 많지 않으며 카메라 픽스가 많다. 날카로운 커팅으로 편집이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상상선을 넘어가는 편집도 많고, 장면 전환도 금자씨 얼굴에서 다른 장소의 금자씨 얼굴로 넘어가는 등 편집이 중요한 영화다. 조명은 중요하다. 와 달리 인물은 시각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으로 간다. 시각적으로 풍성한 볼거리의 향연이 아니고 소박하다. 그렇다고 리얼리즘영화를 만들겠다는 건 전혀 아니고.

-음악은.

=빠른 바로크. 비발디를 많이 참고한다. 이 영화가 빠른 리듬을 가진 영화가 아니라서 상이한 음악을 찾고 싶었고 조영욱 음악감독과 거의 동시에 비발디의 아이디어를 냈다.

-장도리를 이용한 롱테이크나 이빨 뽑기 같은 폭력의 테마는 이번에 어떤 식으로 다뤄지나.

=그래피컬한 묘사는 별로 없다. 대신 폭력적인 느낌이 있는 시퀀스가 아주 길게 가는 게 있다. 폭력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길고 폭력신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 여운은 길 것 같다.

-몸에 대해 가혹한 편인데.

=별로 없다. 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마음, 영혼에 대한 영화라서. (웃음)

-영혼이라고 하니 다시 묻고 싶은데 인간이 자기 의지를 발현하면서 살 수 있다고 보나.

=아니. 조금이라도 관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거 금방 알 수 있지 않나.

-예술적인 통찰, 관점이 아니고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운명을 수용한다는 건 다른 차원일 수 있지 않나.

=… 그런 건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냥 예술적으로 비관적인 사람으로 내버려달라. 영화에서 결정론적 세계관이 자꾸 보이는 건 정말 염세적이어서라기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 근거를 대지도 못하면서 의지로 뭐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쉽게 말하는 것에 대한 반박의 의미가 더 크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몹시 어려운 것인데 선한 의지로 쉽게 할 수 있다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리니까.

-그런 결정론적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평론가 중에서 감독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진정성이란 말조차 쓰기 싫다. 이상한 조어다. 굳이 쓰고 싶다면 진심? 예술에서 그게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해냈느냐 못해냈느냐가 중요한 거지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학적 기준도 아니고 윤리적 기준 같은데, ‘다른 건 부족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다’라고 일컬어지는 영화들이 가끔 있는데 이건 칭찬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반대로 잘 만든 영화인데 진정성이 없어서 싫다는 게 있는데 그건 못 만든 거다.

-3월에 촬영이 끝나고 6월 개봉을 계획하고 있으면, 칸에 갈 수 있는 일정인 것 같다.

=칸에 못 맞춘다.

-그럼 칸에서 실망하지 않겠나.

=맞춰보도록 노력은 하겠다고 말했는데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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