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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성우극회 회장 김환진
사진 오계옥오정연 2005-01-13

“<토요명화>를 죽이지 말라”

짐 캐리, 조지 클루니, 주성치. 언뜻 절대로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듯 보이는 이 이름을 잇는 유일한 키워드는, 1977년 동아방송에 성우로 입사한 김환진씨. 그는 그간 KBS에서 방영된 영화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담했다. 첫 만남의 자리임에도 어디선가 만난 것은 아닐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요즘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 KBS성우극회 회장인 그가, 동료 및 후배들과 함께 방송사를 상대로 이유있는 항변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계기는 1월8일부터 10주 동안 시간대에 를 재방송하겠다는 KBS의 결정. 그리고 이것은 한때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외화와 그 주인공이었던 성우들의, 달라진 입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KBS는 10주 뒤에, 를 정상적으로 방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지 재방에만 국한된 불만이 아닌 것 같다.

=우리 성우들은 그간 계속해서 소외돼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방송사가 외화구입을 자제했고, 이후에는 인기있는 외화의 수입비용이 방송사간 경쟁으로 지나치게 상승한 것이 결정적인 타격이었다. 좋은 외화를 방영하지 못하니까 시청자가 외면하고, 그래서 광고가 안 들어오고, 심야시간대로 밀려나니까 시청률은 다시 떨어지고. 계속된 악순환이었다. 그런데 이젠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를, 한차례 재방했던 드라마의 임시편성을 위해 중단한다니 자존심까지 상처를 받은 기분이었다.

-어떤 식으로 방송사와 대화를 진행하고 있나.

=몇 차례 침묵 시위 끝에 편성본부장 등 관련된 인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방영을 철회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최대한 성우들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약속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엔 단지 밥그릇 싸움처럼 비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언론사나 네티즌들이 우리의 입장을 많이 이해해주더라. 를 비롯한 외화에 대한, 향수도 작용한 것 같다. 사실 TV드라마보다 먼저 있었던 것이 라디오 드라마 아니었나. 1기 선배가 54년에 입사했으니까. 그간 성우들이 방송에 기여한 정도, 대중이 우리에게 주었던 사랑을 생각했으면 한다. 아직도 자막이 대신할 수 없는 더빙의 맛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떻게 성우가 됐나.

=원래는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부모의 반대로 번듯한 직장을 갖기 위해 방송사 성우공채에 응모했지만, 자리가 잡히면 다시 배우수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정이 생기고 나니 쉽게 회사 생활을 접을 수가 없더라. 하지만 배우를 꿈꿀 때도, 목소리만으로 연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라디오 드라마 성우들의 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애니메이션을 더빙할 때는 보통 때 할 수 없는 과장되고 재밌는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외화의 경우는 영화 마니아인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목소리를 직접 연기하는 순간이 가장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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