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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지우개
글·그림 안규철(미술가) 2005-01-14

지금 당신의 책상 서랍이나 필통 속에는 아마 지우개가 한두개쯤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것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연필과 함께 늘 챙겨야 했던 이 보잘것없는 고무덩어리는 글씨를 쓰거나 계산을 할 때 번번이 일어나는 실수를 처리해주는 아주 요긴한 물건이었지만, 학교를 마친 다음부터는 쓸모가 없어진다. 그때부터는 연필이 아니라 검정색 볼펜이나 만년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력서나 입사지원서,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연필로 쓰지 않는다. 한번 기록된 것은 지울 수도 없고 지워져서도 안 되며, 지워지더라도 분명한 흔적을 남겨야 한다. 진술과 약속의 세계에서 연필로 쓴 기록은 무효다.

연필과 함께 지우개도 쓸모가 없어진다. 그리고 지우개의 퇴장과 함께 실수와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가버린다.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그것은 더이상 연습이 아니며 틀렸음을 알아차렸을 때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받아쓰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지우개와의 작별은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조용히 우리의 시야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어쩌다 아이들 공부방에서 그것들을 발견하고 그 익숙한 촉감과 냄새 속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일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삶에서 중요한 도구가 되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연필의 짝이지만 그것은 연필과는 대조적인 물건이었다. 종이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연필이 종이 위에 쓴 것을 지우개는 지운다. 연필이 종이 위의 세상을 헤쳐나가며 자신의 존재를 단호하고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달리 그것은 세상과 부대끼며 사라져갈 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연필이 한 일, 특히 그것이 잘못했던 일을 지워서 없던 일로 돌려놓고는 종이 밖으로 사라져줄 뿐, 지우개는 한번도 저 스스로 무엇을 말하는 법이 없다. 종이 밖으로 추방당하게 된 연필가루와 뒤섞여 더럽혀지고 산산이 부서진 가루가 되어 저쪽 세상으로 깨끗이 떠나주는 것이 그의 소명이다. 이따금 종이에 구멍을 내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원래 지우개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그 본심은 자신의 부드러움과 연약함을 통해서 상대역인 종이에 가능한 한 어떤 상처도 기억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연필이 종이 위에 묻어 있는 검은 가루로서 악착같이 이 세상에 남고자 한다면, 지우개는 그 욕망의 부질없음을 침묵으로 드러낸다. 지우개는 망각과 소멸을 기록하기 위한 연필이 됨으로써, 종이 위에 남을 것들을 빛나게 한다.

지우개는 새것으로 내 손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을 급속히 잃어버린다. 반듯하게 각이 졌던 형태가 허물어지고 나면 남국의 이국적인 풍경을 연상시키던 그 특유의 냄새도, 손 안에서 나의 체온을 받아들이는 그 정겨운 촉감도 이내 사라져버린다. 흑연가루의 검은 얼룩을 뒤집어쓴 채 그저 되는대로 둥글둥글 뭉개져 사라진다. 이 과정에는 스스로를 태워서 한줄기 빛을 만드는 촛불의 극적인 비장함도 우아한 아름다움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공상과 독백의 공간을, 실수와 오류를 범할 자유를 주었다.

미술을 하는 덕분에 나는 아직도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한다. 소묘를 하는 과정은 머릿속의 어렴풋한 생각을 연필 끝의 한점을 통해 세상의 빛 속으로 풀어내고 다시 그것들을 지우개로 수없이 지워버리면서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우개를 사용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을 나는 각별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책상 서랍을 열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지우개를 꺼내보라. 당신이 잊었던 몽상과 실수의 세계,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호기심과 두려움과 열정으로 조금씩 다가서던 시절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