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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협회, 영협과 결별 `개혁 새출발`
2001-07-03

6월 27일 "영협탈퇴" 전격 선언, 이사장 사퇴한 영협은 '위기'

“뒤늦게나마 타율과 종속의 부끄러운 역사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사)한국영화감독협회(이하 감독협회)가 마침내 (사)한국영화인협회(이하 영협) 탈퇴를 공식선언했다. 지난 6월27일 감독협회(이사장 임원식)는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참석회원으로부터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총회에는 총회원 227명 중 136명(위임 44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안건 처리 뒤 박찬욱, 이미례, 정지영 감독 등이 낭독한 성명서에서 감독협회는 “최근 수년간 영화계 내부에서 여러 개혁적 정책이 추진돼왔음에도 불구하고 영협은 이에 대해 늘 거부하거나 소극적이었으며, 전체 영화인의 의견을 묵살하는 권위적인 조직행태를 반복해왔다”고 지적하고, “이제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대등한 영화단체로서 영협과의 관계 정립이 시급하다”고 탈퇴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현승 감독 등 7인은 결의문을 통해 “스크린쿼터제 지속, 현행 등급보류제도 폐지, 문예진흥기금 폐지 반대” 등 산적한 영화계 현안에 대해서 감독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국영화 제작활성화, 영화인 처우 및 제작시스템 개선 등을 위해서는 모든 단체가 독립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의 범영화인 협의기구가 필요하다며 결성을 제안했다.

영협 탈퇴논의, 지난해부터 본격화되어

이번 감독협회의 영협 탈퇴는 이미 예견된 ‘사건’이었다. 지난해 감독협회가 사단법인 결성을 준비하며 영협쪽에 수평적 관계를 요구할 때부터 탈퇴논의는 본격화했다. 감독협회의 한 회원은 “유동훈 이사장은 공약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해놓고서 지금까지 미뤄왔다”며 “최근에는 일부 인사들의 영향력 행사 탓인지 이사장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조차 막혀왔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도 감독협회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높아, 영협 내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존재로 꼽혀왔다. 특히 지난 90년대 중반, 정지영 감독을 중심으로 한 젊은 영화감독들의 모임이 보수적인 영협 내 감독분과위원회와 통합되면서, 나중에 협회로 탈바꿈한 감독분과가 영협 내 분과들 중 상대적으로 ‘젊고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것이다.

한편, 영협쪽은 감독협회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며 겉으론 태연한 입장이다. 영협의 마용천 부이사장은 “감독협회가 사단법인화할 때부터 예상한 일이다. 영협쪽으로서는 분과구성 등에 관한 정관만 개선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감독협회 임시총회 다음날 영협 이사회가 열렸으나 “우연의 일치였을 뿐 어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우협회 다음으로 회원 수가 많으며 대외적 영향력도 막강한 감독협회가 전격 탈퇴함으로써 영협은 급격한 조직 축소와 대외적 이미지 실추 등 깊은 상처를 입게 됐다는 게 영화계의 중론. 이에 따라 최근의 대종상 파동 등 여러 현안에서 젊은 영화인들과 맞서온 영협의 발언권이나 영향력도 대폭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6월25일, 유동훈 이사장 사퇴

한편 감독협회의 임시총회를 며칠 앞둔 지난 6월25일, 유동훈 영협 이사장이 전격 사퇴해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유동훈 이사장은 다음날인 26일 전화 통화에서 “구세대의 상징적인 사퇴로 봐달라”면서, “지금의 영협만으로 영화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엔 역부족이고, 유일한 해결방법인 노조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노조 설립에 힘을 쏟기 위해 그만뒀다”고 말했다. 굳이 이사장 직을 그만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 이사장은 “영협 회원 중에는 노조 설립에 반대할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두 가지 일을 겸하게 되면 나를 중심으로 한 임원들이 계속 집행부를 유지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까봐 미리 그만둔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충무로 일각에선 유 이사장의 선택이 감독협회의 이탈로 인한 조직 위기를 체감한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한 영화인은 “젊은 현장인들과 함께 노조를 결성하겠다는 것 자체를 두고 뭐라 할 수 없지만, 국면전환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지금까지 현장으로부터 유리된 이들이 주도해온 영협이 현장의 요구인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번 이사장의 사퇴가 영협 내 구성원간 불협화음의 결과라는 관측도 있다. 감독협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영협 이사장과 선거 때 그를 도왔던 회원들과의 불협화음이 일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결정은 그들과의 갈등 끝에 나온 일종의 정치적 카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사장이 사퇴했지만, 부이사장이 권한대행을 고사함에 따라 영협은 오는 7월2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분과별 회장단 중심으로 지도부를 짤 것으로 보인다. 감독협회의 영협 탈퇴와 맞물려 위기에 직면한 영협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이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