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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산행 [2] - 설악산의 절
2005-01-21

불이문에서 읽는 한용운의 시

설악산 화암사·건봉사를 가다

오대산을 벗어나 화암사를 찾아갑니다. 설악산국립공원 구역 신선봉 자락에 자리잡은 화암사는 가까운 설악산을 두고 분단의 저편에 자리잡은 금강산에 기댄 절집입니다. 오대산에서 화암사로 가려면 산을 넘는 6번 국도와 바다와 벗하는 7번 국도를 타야 합니다.

진고개를 넘습니다. 고갯길이 하도 길어 긴고개였던 이름이 이제는 진고개로 불리게 됐다는 그 길은 여전히 오대산 자락에 기대고 있습니다. 고개에 올라서 내리막에 들어서면 길은 이내 바다가 멀지 않음을 일러줍니다. 금강산에 버금갈 정도로 계곡미가 빼어나 오대산 소금강으로 불리는 계곡이 가까운지라 여름과 가을이면 사람이고 자동차고 차고 넘치는 길이지만 겨울인 지금은 호젓하기만 합니다.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절 화암사

고개를 내려서 7번 국도로 접어들면 이내 바다입니다. 눈을 뿌리려는지 하늘은 낮게 내려앉았고 그런 하늘이 못마땅한 바다는 심술이 한창입니다. 파도는 하얀 이빨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쉴새없이 모래밭을 할퀴어댑니다. 그 험한 바다에 몸을 맡긴 고깃배가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그 배에 삶을 위해 노동을 이어가는 어부의 팔에 굳센 힘줄이 돋아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완성됩니다. 화암사가 일주문에 ‘금강산화암사’로 현판을 걸 수 있는 것은 기댄 산자락이 금강산과 이어짐을 알고 인정하기 때문이며 그 금강산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미시령 동쪽 아래의 콘도미니엄촌을 지나 길이 미시령으로 오르막을 타기 시작하는 곳에서 화암사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화암사 가는 길은 로드무비에나 나올 법한 풍광을 선물합니다. 길 왼쪽 백두대간을 잇는 봉우리들은 하늘을 지탱하고 오른쪽 산들은 마치 바다를 가리면 큰일라도 나는 듯 낮게낮게 엎드려 있습니다. 낮은 구릉과 구릉으로 이어지는 길, 키 작은 소나무 너머 속초의 도심이 보이고 그 도심을 지나 바다가 보입니다.

보통의 절집들과 달리 화암사 일주문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일주문으로 이어진 까만 아스팔트를 가리는 그 무엇도 없고 일주문 뒤로는 오직 신성봉의 깊은 계곡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부도밭을 지나고도 꽤 들어서야 화암사 경내입니다. 여기서도 법당은 그저 바라만 보일 뿐입니다. 계곡이 길을 막기 때문입니다. 계곡의 이편과 저편을 잇는 두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자동차도 너끈하게 지날 수 있는 새로 세운 다리에서 내려보이는 옛 다리는 큰 돌 두개를 이어놓은 돌다리입니다. 새로 길을 낸 탓인지 옛 다리에는 다가가기조차 어렵습니다. 옛 다리는 이제 사람을 건네는 역할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다리를 잊지 않습니다. 이제 그 다리는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추억으로 건너는 길을 엽니다.

화암사에서는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법당을 지나고 산신각으로 오르면 산은 바다로 시야를 인도합니다. 좁은 골짜기가 바다를 향하며 넓혀놓은 그 시야. 적당히 가려지고 적당히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가까이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게 합니다. 가려진 만큼 마음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화암사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사람은 아름다운 세계를 꿈꾼다는 것을 압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은 마음에 있고 그 마음이 아름답지 않다면 화암사에서 바라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울 리 없겠지요.

난야원의 창에서 보이는 쌀 내는 바위 수암

요즘 대부분의 절집에 찻집이 있게 마련이지만 들르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여정도 여정이겠지만 낯섦을 참아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닌 탓입니다. 그럼에도 화암사 찻집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난야원이란 간판을 단 찻집에 앉아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창을 열면 화암사의 유래가 된 수암(秀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왕관을 닮은 빼어난 바위라는 뜻이지만 언뜻 보면 바다로 뜀박질을 하려는 토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바위 어딘가에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을 위해 끼니를 때우라고 쌀을 내주는 구멍이 있었다고 합니다. 꼭 한끼를 채울 수 있을 만큼만 쌀을 내주었다는 그 구멍을 어느 객승이 욕심을 내어 마구 헤집었다고 합니다. 그뒤로 바위는 결코 쌀을 내주지 않았다는 전설입니다. 그뒤 벼 禾자를 넣어 화암사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 절집 이름의 유래입니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導心)하고 온포(溫飽)에 생해태(生邂怠)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고프고 추워야 도를 닦을 마음이 일어나고 배부르고 따뜻하면 나태해진다는 말입니다. 화암사의 전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세를 일깨워주곤 합니다.

건봉사 불이문의 진리의 무늬 ‘금강저’ 그리고 한용운

화암사와 함께 금강산 자락에 기댄 또 하나의 절 건봉사. 1990년까지 군복을 입지 않고서는 갈 수 없었던 민간인통제선 이북에 있었던 절집입니다. 분단이 있기 전까지는 남쪽의 해인사와 함께 한국 불가의 한축을 담당했다는 큰 절이었습니다. 사명당이 승병을 일으켰고 만해 한용운이 수학했다는 건봉사는 많은 복원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절터 그대로 인 곳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건봉사의 자랑 중 하나였던 옛 다리인 능파교마저 보수 중에 무너져버려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건봉사를 찾아가는 것은 불이문과 만해 한용운이 말하는 ‘사랑하는 까닭’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불교 신자라면 석가의 진신치아사리도 친견할 수 있기도 합니다.

건봉사 일주문은 다른 절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불이문(不二門)이라는 이름이 다르고 보통 2개의 기둥으로 이뤄지는 일주문과 달리 기둥이 4개입니다. 그리고 그 기둥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불교의 절대진리를 수호하는 금강저입니다. 다이아몬드와 같이 파괴할 수 없는, 순수한 ‘절대’ 또는 ‘진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옛 모습을 만날 수 없는 능파교를 건너 대웅전에 이르기 전에도 10개의 문양을 새긴 돌기둥이 남아 있었습니다. 대승불교의 기본수행법인 십바라밀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불이문을 드나들며 금강저로 마음의 진리를 다듬고 십바라밀의 가르침을 행했을 만해 한용운의 추억도 불이문 앞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만해가 남긴 수많은 시 가운데 을 골라 새겨놓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금강저가 지켜내고자 했던 절대진리의 모습과 만해가 말하는 사랑의 실체는 서로가 닮아 있는가 하는 추측만을 해볼 따름입니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드디어 눈이 내립니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에서, 중대 적멸보궁에서, 화암사와 건봉사에서 만났던 많은 것들은 이제 저 눈에 덮여 봄을 기다리겠지요. 뒷날 당신이 내가 걸은 이 길을 걸을 때 당신에게 보이는 것들은 내가 본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래있던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것들은 그냥 거기 있을 뿐이지오. 다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달라지겠지요. 내가 걸으며 보고 느낀 것들…. 당신은 또 어떻게 보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설악산 산사 가려면

속세의 때를 씻는 사찰 체험

낙산사 흙담

정보 | 미시령 아래의 화암사는 설악산 콘도지역과 가깝지만 많이들 지나치는 곳이다. 겨울바다를 보러가는 길에 둘러본다면 여행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화암사는 속초지역에서 가깝고 건봉사는 화진포, 송지호 등이 유명한 고성군에서 가깝다. 화암사에서 건봉사로 이어지는 속초내륙지역의 길은 차량통행이 거의 없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풍광이 아름답다.

가는 길 | 화암사는 미시령 동쪽 아래 대명콘도쪽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입구에 돌로 된 이정표가 크게 있다. 세계잼버리대회장 팻말을 따라 들어가면 길찾기가 어렵지 않다. 대중교통은 속초시내에서 대명콘도까지밖에 이어지지 않아 불편하다.

건봉사는 진부령 정상쪽에서 내려올 땐 광산리 마을에서 좌회전한다. 위천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왼쪽 개울길을 따라 계속가면 건봉사에 닿을 수 있다. 대중교통은 간성읍에서 위천교 못 미처 해상1리 마을까지 다니는 버스가 있지만 이곳에서부터 4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문의: 건봉사(033-682-8100), 화암사(033-633-1525)

사찰 체험 | 대한불교조계종을 비롯한 여러 종단에서 사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절집의 예절이나 다도, 참선, 발우공양, 사찰기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지만 절집마다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철저한 조사를 하고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겨울에 운영되는 템플스테이의 자세한 프로그램과 사찰 소개, 주의할 점 등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www.templestaykorea.net을 참조한다.

글·사진 윤승일/ 자유기고가 nagneyoon@empal.com·편집 박초로미·디자인 문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