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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영화 대약진
2001-07-05

`뉴뉴웨이브`의 질주, 할리우드 제압하다

■ 상반지 점유율 55% 돌파, 일각에선 상업적 대작주의 경계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55%!

할리우드영화를 저주하는 프랑스영화인들의 기원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프랑스영화의 믿기 어려운 질주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프랑스영화제에 온 프랑스감독들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영화인들은 반할리우드 혹은 문화적 다양성의 열혈 전도사들이다. 국제영화제에서 할리우드영화의

패권주의를 비난하거나 자유무역시대에도 문화의 예외성이 옹호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거나 한국의 스크린쿼터투쟁을 입이 마르게 칭송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프랑스영화인이다(유사 할리우드 키드인 뤽 베송조차 그랬다). 그러나 막상 프랑스관객은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1996년

37%를 넘어섰던 자국 시장점유율이 28.5%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자마자 <늑대의 후예> 등을 필두로 프랑스영화들이

엄청난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힘이 이룬 이유있는 흥행

아멜리에

지난 52주간의 흥행순위를 보면, 박스오피스에서 10위 안에 톱을 포함 프랑스영화가 5편을 차지해 시장점유율 55%를 주도했다. 이 수치는

지난해(28.5%)의 거의 두배. 여기엔 전국 8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은 코미디 <거짓말을 한다면, 진실2>와 <플래카드>, 액션 스펙터클

<늑대의 후예>, 우화적인 색채를 띤 코미디 <아멜리에>의 대대적인 성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올 개봉작 중 <루브르의 유령,

벨페고어> <야마카지> <몽파르나스 탑> 등이 전국적으로 200만명의 관객을 모아 지난 5개월간 전국적으로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프랑스영화

수는 10편에 이른다. 이는 전국 1000만명을 넘긴 <택시2>와 같은 예외적인 성공을 빼고는 1년 동안 전국 100만명을 넘긴 영화가 7편에

지나지 않던 지난해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영화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은 것은 20년 전인 82년의 53.8%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현재 프랑스에선 이런 현상에 대한 요인분석과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작품 외적인 요인으로는

우선 패스제도의 성공이 꼽히고 있다. 지난해 3월 말 UGC에 의해 시작된 고몽과 MK2까지 동참한 패스는 한달에 98프랑만 내면 동일 체인

내 극장에서는 무제한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제도. 패스 발행 이후 UGC 22.3%, 고몽 9.3%, MK2 8.7%씩 관객 수가 증가해

전체적으로 지난해 관객 수가 7.5% 늘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형복합관으로 몰리는 젊은이들에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프랑스영화는

2순위였는데 패스가 등장한 이후 우선순위 개념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흥행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의 배급망이 훨씬 넓어졌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 지난해의 경우 <택시2>를 제외하고 흥행영화의 평균

프린트 수는 451벌이었는데 올해는 526벌로 증가했다. <거짓말을 한다면, 진실2>의 경우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전편보다 3배에

해당하는 781벌의 프린트가 준비됐다. 올 상반기에 상대적으로 상업성이 강한 미국영화가 적었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거짓말을

한다면

그러나 무엇보다 작품 자체의 힘이 성공의 뿌리다. 다양한 종류의 프랑스영화가 이 시기에 동시에 개봉된 것이다. 전통적인 프랑스코미디(<거짓말을

한다면, 진실2> <플래카드>), 할리우드형 블록버스터(<늑대의 후예> <루브르의 유령 벨페고어>), ‘작가주의적 코미디’로 불리는 영화들(<아멜리에>)이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들이다. 이외에 프랑수아 오종의 <모래밑에서>와 같은 저예산 작가영화들도 전국적으로 60만∼80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으는 성공을 거뒀다. 이중에서도 코미디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문화예술 종합지 <텔레라마>는 최근 1급스타가 나오지 않는 코미디들의 꾸준한

성공에 초점을 맞춘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코미디영화가 프랑스영화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진 시기에 구원병과 같은 역할을 하다 몇년간 고갈상태에

빠졌는데 최근 다시 회생하며 흥행보증수표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의 코미디영화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통적인 코미디와 최근 등장한 작가주의적

코미디로 나뉜다. 기준은 얼마나 영화가 일상에 바탕을 두느냐는 것. 유대인집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신없는 단순한 주인공들이 황당한 사기를

당한 뒤 멋지게 복수하는 이야기인 <거짓말을 한다면, 진실2>를 보면서 관객은 쉴새없이 웃지만 그 웃음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반면 작가주의적 코미디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지난해 흥행 2위인 <타인의 취향>의 경우 관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이 남의 시선과

평가에 평소답지 않은 제스처를 시도하는 대목에서 대부분의 유머가 나오는데 정신없이 웃다보면 씁쓸함이 남는다. 현실적인 등장인물의 상황에 동일시된

관객이 결국은 자기를 향해 웃고 있다는 자각이 어느 틈인가에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주의적인 코미디’의 성공을 놓고 <타인의 취향>의

제작자인 샬 가소는 이런 영화들이 일상에 대한 냉철하지만 웃음어린 관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중과 소통없인 예술도 없다

늑대의 후예

그러나 비평가들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주목해 최근 프랑스영화 흥행물결의 시작은 마티외 카소비츠의 <크림슨 리버>라고 보고 있다.

<무빙 픽처스> 최근호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이 자국영화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출발점이 <크림슨 리버>라는 것이다. 장

르노, 벵상 카셀이 주연을 맡은 <크림슨 리버>는 외딴 산 속 마을의 엽기적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로 개봉 첫주 1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았다. 프랑스비평가들이 보기에 뻔뻔스러울 만큼 상업적인 유사 할리우드영화 <크림슨 리버>의 대성공은 프랑스영화계의 기류를

바꿔놓았다. 레전드 엔터프라이즈의 프로듀서 알랭 골드먼은 “영화제작자들이 최근 그들이 자기 만족보다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영화는 더이상 지식층들의 손 안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간 과장이 섞여 있다 해도 골드먼의 말을 전적으로 부인하긴 힘들다. 올해의 흥행작인 <아멜리에> <늑대의 후예> <루브르의

유령, 벨페고어>는 <크림슨 리버>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높은 제작비에다 가파른 편집과 화려한 시각적 스타일로 젊은 관객의

감각과 소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영화 붐의 진정한 주역은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대작들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비평가들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작가주의와 지적 태도가 존중되던 프랑스영화계를 유보없는 대중주의로 이끌어

산업적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뉴뉴웨이브’라고 명명하고 그들의 기수로 마티외 카소비츠를 지목한 조너선 롬니의 논의는 흥미롭다. 롬니는 카소비츠를 80년대 시네마

뒤 룩의 후예라고 본다. 시네마 뒤 룩은 한국에 누벨이마주로 소개된 뤽 베송(<서브웨이> <니키타>)과 장 자크 베넥스(<디바>

<베티블루>) 등 광고와 만화에 영향받고 감각적이고 화려한 비주얼과 상업성에 몰두한 감독들의 작품경향을 일컫는 단어다. 이들은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예술은 쓸모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고, 소신대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잘 알려진 대로 베넥스는 그뒤 부진했지만 뤽 베송은

국제적인 흥행사로 발돋움하면서 많은 후배감독을 거느려 베송학파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데뷔작 <증오>가 칸 감독상을 받으면서 한때 젊은 작가로 오해된 마티외 카소비츠는 실제로 <쥬라기 공원> 티셔츠를 입고

다니면서 자신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첫 세대”라고 주장하는 인물. 그의 세 번째 작품 <크림슨 리버>는 프랑스적인

요소는 거의 없으며 포스트 매트릭스적인 액션시퀀스와 본드 스타일의 살인장면이 특징인 시네마 뒤 룩의 최신판이라는 게 조너선 롬니의 견해다.

<크림슨 리버>는 카소비츠의 단골배우인 벵상 카셀과 뤽 베송의 단골배우인 장 르노가 공동주연을 맡아 선배 뒤 룩 세대와의 상징적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고 롬니는 덧붙이고 있다. 배우이기도 한 카소비츠가 출연한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는 할리우드적인 요소는

별로 없지만 비주얼과 정서적 호소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선 <크림슨 리버>와 같은 범주에 묶일 수 있다.

‘반영화’인가 돌파구인가

몽파르나스 탑

프랑스영화의 상업적 약진은 예술영화적 전통의 전통을 소망하는 프랑스비평가들에게 그리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일찍이 뤽 베송과 장 자크 베넥스를

“누벨바그의 역사적 유산을 파괴한 감독들”로 의심한 비평가들은, 1997년 카소비츠, 주네, 장 쿠넹 등 젊은 감독들은 ‘신경과민자들’로 명명했다.

장 쿠넹의 <도베르만>을 둘러싸고는 <르몽드>의 비판론과 프랑스판 <프리미어>의 옹호론이 맞서기도 했다. 칸

출품이 거절된 올해의 화제작 <아멜리에>을 두고는 <리베라시옹>이 극우적 프로파간다라고 맹공하고 나섰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개인 관람을 요청할 만큼 화제가 됐던 <아멜리에>를 <리베라시옹>의 세르주 카간스키는 성적,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지워버려 오늘의 프랑스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반영화’라고까지 극언하고 있다. <루브르의 유령, 벨페고어>는 프랑스의 대표적

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의해 뤽 베송 학파의 어리석은 산물로 평가됐다.

이외에도 코스튬 드라마와 호러와 무협을 뒤섞은 <늑대의 후예>, 뤽 베송의 새로운 배급사 유로파가 배급하는 사무라이 같은 거리의 아이들에 관한

영화 <야마카시>, 특수효과 담당 출신 피토프의 대작 <비독>도 평론가들의 호의를 결코 얻을 수 없지만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작품들. 평론가들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은 극장가를 제압하며 프랑스영화의 점유율을 높여주고 있다. 멀티플렉스시대에 발맞춰 더욱 시각적으로

세련되고 더욱 감정적이며 더 높은 제작비가 투입된 프랑스의 뉴뉴웨이브 기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관에 몰두하는 대작들이

다양한 영화들을 몰아내고 프랑스영화산업을 제패하기를 프랑스영화인들은 원하진 않고 있다.

성지혜/ 파리 통신원

허문영 기자 moon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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