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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대해 몰랐던 일곱 가지 이야기 [2]
사진 정진환 2005-03-07

비밀 넷. 연극 <아트> <청춘예찬>

이 연극 문전성시의 비밀

한편의 연극이 끝나고 무대에서 세트들이 치워지고 나면 연극은 자취없이 사라진다. 영화는 필름으로 남고 그림은 캔버스 위에 남지만 연극은 흔적이 없다. 혹자는 이를 연극의 호환불가한 매력으로, 혹자는 이것을 연극의 살길을 막막하게 하는 가난의 요소로 꼽는다지만, 어쩌겠는가 그 사람이 우리 엄마이듯이 그것이 연극인 것을. 하여, 연극의 앙코르, 연장 상연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올라갈 때마다 자본금이 드는 연극의 속성상 그만큼 사랑받고 있거나 사랑받을 자신이 있다는 제스처다. 대학로에 현재 상연 중인 많은 작품들 중에서 단연 두 작품이 관객과 열애 중이다. <아트>(야스미나 레자 원작, 황재헌 번안·연출)와 <청춘예찬>(박근형 작·연출)은 독특하고 탁월한 대본을 바탕으로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작품군이다.

<청춘예찬>

친구 하나가 하얀색 캔버스에 하얀 선이 그어진 1억8천만원 상당의 그림을 걸작이랍시고 사들였다 치자. 그 황당한 씀씀이에 다른 친구가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치자. 그 시비가 시비를 물고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친구들 사이엔 시시콜콜한 전쟁이 시작된다. <아트>의 연출은 하얀색 캔버스 위 하얀 선만큼이나 무대 장치들을 과감하게 삭제하여 배우들의 재담과 연기를 향한 집중력을 배가시켰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질투는 나의 힘>의 배우 박해일, <플란더스의 개>의 고수희를 세상에 선보인 연극 <청춘예찬>은 초연 이래로 4년이 지났지만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비범한 시선으로 풀어내면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의욕 없고 전망 없는 삶에서도 삶이 지속되는 한 이어지는 인연과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낮고 무뚝뚝한 음조로 읊는다. 두 작품 모두, 두번, 세번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보고자 하는 관객을 위해 ‘더블 캐스트’라는 특이한 팬서비스를 제공한다.

▶ <아트> | 원작 야스미나 레자 번안·연출 황재헌 화·목·토 출연 오달수, 이남희, 유연수, 수·금·일 출연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 공연일 1월7일∼ 평일 8시, 토 4시30분·8시, 일·공휴일 3시·6시, 장소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문의 ☎1544-1555

▶ <청춘예찬> | 작·연출 박근형 출연 김영민, 김영필, 김동현, 고수희, 오근영, 엄효섭, 천정하 외 공연일 1월4일∼2월27일 평일 7시30분, 토·일 4시30분·7시30분, 장소 블랙박스 시어터(구 바탕골 소극장) 문의 ☎02-760-0010

비밀 다섯. EBS 미니시리즈 <지금 마로니에는>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나무는 왜 심었을까?

대학로가 대학로가 된 것은 1985년 제5공화국이 군사정권 이미지를 쇄신코자 시행했던 ‘대학로 차 없는 거리 문화행사’가 시작되면서다. 애초, 1975년 서울대 문리대가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과 문예회관 일대에 자리잡고 있을 적 ‘대학로’는 그야말로 속칭이었다. 지금은 복개되어 8차선 차도가 되어 있는 서울대학병원 앞길엔 작은 개천이 흘렀고 학생들은 이를 ‘센강’이라, 그 위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 불렀다. ‘대학로’ 역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진 이름이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대학로가 예전 대학로였던 자취는 별반 남아 있지 않지만, 마로니에 공원의 마로니에 나무는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정원에 심어졌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마로니에 나무는 누가, 왜 심었을까?

EBS 문화사 시리즈 제3편 <지금도 마로니에는>(정하연 극본, 이창용 연출)은 1960년대를 당시 이 캠퍼스를 주름잡던 김지하, 김중태, 김승옥 세 청년을 중심으로 조망하고 있는 32부작 미니시리즈다. 제1편 드라마 <명동백작>, 제2편 다큐멘터리 <100인의 증언, 60년대 문화를 말한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드라마에서는 고등학교 때 4·19 혁명을 겪고, 대학 초년 5·16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청년’ 정신을 드라마와 내레이션을 혼합한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5·16쿠데타 직후의 상황을 1부로 시작하여 8부까지 방영됐다. 이제 슬슬 김중태는 5·16 쿠데타의 성격을 규정하기 시작하고, 김승옥은 마악 <생명연습>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김지하는 청춘의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해설자 정보석이 60년대 세 인물과 시대 사이를 오가며 던졌던 질문, 마로니에 나무는 누가, 왜 심은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이다.

김지하, 김중태, 김승옥 세 인물을 중심으로 조동일(평론가·국문학자), 전혜린(수필가·번역가), 천상병(시인), 김현(평론가) 등 문인들의 젊은 시절과 오태석(극작가·연출가), 신중현(대중음악가) 등 당대 예인들의 청춘이 어떻게 파란만장을 구가했는지 계속된다.

▶ EBS | 방영일 토·일 밤 9시, 재방송 토 오후 12시30분 극본 정하연 연출 이창용 책임프로듀서 류현위 프로듀서 박호경 기획 EBS 출연 정보석, 이병욱, 최철호, 한범희 외

비밀 여섯. 마로니에 공원 주말 풍경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늘도 있다. 배드민턴 좌판. 보통은 할머니가 앉아 좌판을 지키건만, 주말에는 그 아들이 나와 지킨다. 배드민턴 채 한쌍과 배드민턴 콕 하나 대여하는 데 4천원. 말 잘하면 3천원. 시간은 무제한. 마로니에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옛 풍경, 옛 추억을 가져본 적 있는지? 여기서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해서 아마추어 배드민턴 선수들이 된 이도 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배드민턴 행상 아저씨. 오늘도 있었다.

오늘도 있다. “♬나는 바보인가봐” 마로니에 공원 문예회관 앞에서 징가징가 기타를 치며 두눈 지그시 내려 감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내. “저 정상이에요.” 청중 가운데 외국인을 보더니 “웨어 아 유 프롬?” “아메리카?” “아임 프롬 미아리”, 그러더니, 돌연 웃고 있는 청중을 향해 두손을 번쩍 쳐들고는 “대-한민국” 외친다. 이제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인 박수가 당연히 나온다. “짝짜악짝 짝짝” 다시 외국인을 향하더니 “마이 팬클럽” 한다. 대학로 개그맨 윤효상씨, 지난 89년부터 주말이면 마로니에 공원에 나와 거리를 지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노래하고 개그한 지 17년째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켜요. 정상이 아닌 내가 지켜야지.” 그는 이 대학로를 지키는 동안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고 얼마 전엔 일명 ‘꼴순이’ 딸도 얻었다. “아들 놈들은 ‘꼴통’, 딸은 ‘꼴순이’죠. 올해 첫째가 초등학교엘 들어가요.” 그는 몇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직도 마로니에에서 ‘엠프 문화’가 사라지길 소원하고 주장한다. 작은 문화들이 여기저기서 산발할 수 있도록 제발, 부디 ‘엠프 패권주의’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 하여, 오늘도 맨 목청으로 고래고래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노래하고 개그한다. “상품으로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제공하는 이 은행나무 드리겠습니다. 지난주 상품으로 준 저 은행나무 왜 안 뽑아가요?”

그리고, 마로니에 공원에는 오늘도 여전히 농구공이 튕겨지고 있으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습작생들이 어슬렁거리고, 공포스러울 정도로 푸석거리는 비둘기 떼에게 모이를 뿌리는 겁없는 꼬마들과 노숙자들. 오늘도, 여전히 있다.

비밀 일곱. 맛집, 멋집

외롭고 우스운 가게에 노닐러, 드시러 오세요

안동찜닭, 아이리시펍, 홍초불닭 등 온갖 유행 품목들이 고스란히 휩쓸고 지나가는 곳 대학로. 그러나 이곳에도 짧게는 5, 6년 길게는 수십년씩 제자리와 제맛을 고수하고 있는 오래된 맛집들이 있다. 싸고 저렴하며 때론 허름한 맛집, 멋집을 찾아가세.

▶명륜감자탕 | 꼬부랑 할머니와 그의 딸 할머니가 중년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 가게는 감자탕 외에도 순대국밥이 먹을 만하다. ☎02-763-1723

▶할매냉면 | 전통 냉면이라기보다는 할매의 손맛대로 만들어온 냉면이 손님들의 입맛에 자리잡은 집. 물냉면에 비빔냉면을 섞어놓은 듯한 맛이 시원하고 감칠맛난다. ☎02-747-8512

▶학사평 순두부 | 재래콩으로 직접 만든 순두부찌개가 돌솥밥과 함께 5500원. 누룽지까지 먹고 나면 한끼 식사 과식한다. ☎02-747-4443

▶디마떼오 | 연극인 이원승씨가 이탈리아에서 직접 전수해왔다는 참나무에 구운 피자. 세월은 네월로 흘러 명소로 자리잡았다. 담백한 피자에 재료의 맛과 향이 살아있다. ☎02-747-4444

▶청국장 해장국 마미하우스 | 4천원짜리 청국장을 시키면 양은냄비에 생야채와 달걀프라이가 나온다. 청국장과 비벼 먹으라는 것. 주머니 가벼운 연극인, 학생들이 배 후끈하게 채우고 나올 수 있는 곳. ☎02-765-0842

▶행운 | 김치찌개가 특히 일품인 이곳은 대학로에 터잡은 지만 30여년 된 터줏대감. 칼칼한 해물칼국수도 입맛따라 기분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02-741-2193, 02-3673-5377

▶만리성 | 고급 중국요리점으로 연극인, 무용인 등 중견, 원로 예술인들의 회동 장소로 애용된다. 자장면 맛이 일품이며 특히 삼선짬뽕은 싱싱한 야채의 향이 파릇파릇하게 살아 있다. ☎02-747-0957

▶학림다방 | 대학로를 얘기하면서 이곳을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1956년 서울대 문리대 시절부터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곳으로, 김지하, 황지우, 이성복 등 숱한 문인들이 시대와 열정을 읊조렸던 낭만 장소다. 무엇보다 학림다방 자체 브랜드를 가진 커피맛이 여전히 이곳을 명소로 유지하게 한 비결이다. ☎02-742-2877

▶마당문구 | 단순한 문구점이라고 얕봤다가는 큰코 다친다. 대학로 연극인들이 극장에서, 연습실에서 필요한 온갖 색종이류, 문구류, 제본, 복사 잡일까지를 처리하는 만능 가게. 주인아저씨의 개성 넘치는 복사실력이 근사하다. ☎02-766-1905,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