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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와 <독일, 창백한 어머니>가 고발하는 전쟁의 상처

전쟁은 영혼을 잠식한다

<피와 뼈>와 <독일, 창백한 어머니>에서 전쟁과 역사는 영화의 바탕화면처럼,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다. 적국의 폭격기가 바탕화면처럼 지붕 위를 날고, 전시 라디오 방송이 배경음악처럼 불쑥불쑥 끼어든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과 일본의 하루다. 전장의 병사가 아니라도 전쟁의 상처를 피해갈 수 없다. 전쟁은 일상까지 습격한다. 라디오는 패전 소식을 전하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무너진 집은 복구할 수 있지만, 부서진 가족은 복구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가정의 전범이 되고, 어머니는 이중의 피해자가 된다. 전쟁의 상처는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 원폭 피해처럼. <피와 뼈>의 아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소원하고, <독일, 창백한 어머니>의 딸은 어머니의 아픔을 연민한다.

<독일, 창백한 어머니>-전쟁은 오래 지속된다

<독일, 창백한 어머니>에서 “나치를 사랑하지 않았던” 리네는 “나치가 되지 않은” 한스와 결혼한다. 나치는 나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스를 전장으로 끌고 간다. 리네는 방공호에서 딸 안나를 낳는다. 폭격으로 집을 잃은 모녀는 지붕을 날아다니는 마녀처럼 유럽 곳곳을 배회한다. “아빠는 살아계셔야 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점령군 병사에게 강간을 당하는 순간에도 “이건 그냥 꿈이에요”라고 되뇌면서. 마침내 전쟁이 끝난다. 초췌한 얼굴의 아버지가 돌아온다. 아내를 닮은 여인들에게 총을 쏘고 울먹이던 청년 한스는 어느새 “우리는 최후의 한명까지 싸울 거야”라고 되뇌는 독일 병정으로 바뀌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세월의 공백은 메워지기 어렵다. 리네와 한스는 서로를 낯설어한다. 그리고 한스는 “나는 나에게 익숙해져야 해”라고 말한다. 전쟁 뒤의 한스는 전쟁 전의 한스가 아니다. 영화 속 도둑신랑 동화처럼 전쟁은 한스를 잡아먹고, 리네를 삼켜버렸다.

초췌한 아버지는 창백한 어머니를 착취한다. 한스는 몸 성히 돌아왔지만 마음까지 온전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불구가 되면서 성기능도 잃어버렸다. 한스는 리네를 의심하고, 출세에 골몰한다. 리네는 “난 사랑을 원해요”라고 절규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다. 한스는 “나도 힘들어”라고 답한다. 전쟁이 앗아간 시간은 그렇게 그들을 갈라놓았다. 리네에게 모진 세월을 이겨낼 힘이었던 딸도 더이상 살아갈 의미가 되지 못한다. 어머니는 딸의 얼굴에 스프를 끼얹고, 딸의 애원에도 자살을 시도한다. 리네 자신의 “우리가 겪은 일이 우리의 얼굴에 나타날 테죠”라는 불길한 예언은 불행한 현실이 된다. 리네의 얼굴은 굳어지고 일그러진다. 한스가 암송하는 브레히트의 시처럼 “낡은 겨울의 얼음 소나기가… 초원을 덮친다”. 영원히 봄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딸 안나는 “나는 결혼하지 않았어요. 엄마 아빠를 보고 결심했죠”라고 독백한다. 그들의 지붕 아래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넘쳐난다. <독일, 창백한 어머니>는 한 여인의 비극을 통해 “전쟁은 오래 지속된다”라고 말한다.

<피와 뼈>-야만의 역사, 야만의 가족사

<피와 뼈>의 전쟁과 역사는 <독일, 창백한 어머니>보다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독일, 창백한 어머니>에서 영화 내내 깔리는 공습 사이렌은 <피와 뼈>에서는 영화 초반에 스치듯 지나간다. ‘반자이’와 ‘만세’의 대립도 짧은 에피소드로 스쳐간다. 재일조선인 감독은 공산주의자 조선청년들이 오사카 파출소에 모르토프 칵테일을 던지는 행위에도, “조선해방전쟁이 끝났다”는 대사에도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잔칫날 한복을 입고, 제상을 차리는 장면처럼 그저 그 시대, 그 사회의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다.

<독일, 창백한 어머니>가 선한 청년을 전쟁이 어떻게 망쳤는가를 고발한다면, <피와 뼈>는 폭군 아버지는 원래 나쁜 놈이었다고 말한다. 감독은 김준평을 위해 역사를 변명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어쩌면 <피와 뼈>의 아버지, 김준평은 동아시아 어디에나 (오늘도) 있을 법한 가부장이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영화 속 한국말처럼, 김준평에게서 식민지 본국에서 이등시민으로 살아가야 했던 재일조선인의 쓸쓸한 그림자를 지우기는 어렵다. 그 낙인은 아무리 무게를 덜어내도 무게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피와 뼈>의 배경인 오사카 이쿠노는 일본 최대의 재일동포 밀집 지역이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인이 버린 땅에서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살았다. 이쿠노는 제국주의 시대에 병기제조창이 있어 집중 폭격을 받았던 황량한 땅이다. 동포들은 그곳에서 돼지를 키우며 생존했다. 야만의 땅에서 야만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가정의 폭군 김준평은 아내를 강간하고, 자식들을 때리고, 동포들을 착취한다. 그렇게 모은 돈이 그의 피고, 그렇게 키운 자식이 그의 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들 다케시가 떠나던 날, 부자는 골육상잔을 방불케 하는 격투전을 벌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먹질, 발길질이 오고간다. 김준평이 다케시와 빗속에서 벌이는 피 튀기는 육박전은 흙탕물에서 버둥거리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징그럽지만 쓸쓸하고, 처절하지만 서글프다. 이렇게 야만의 역사는 야만의 가족사로 축조된다.

전쟁이 끝나도 행복은 오지 않는다

<피와 뼈>의 어머니는 <독일, 창백한 어머니>의 홍보 카피처럼 세상의 모든 슬픔을 끌어안는다. 남편의 외도를 참아내고 아들의 말썽을 수습하며 친지들을 건사한다. 동아시아의 어머니에게 사랑은 차라리 사치다. 어머니는 사랑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엄두도 못 낸다. “아빠는 살아 있어야 해”라는 주술을 거는 대신 “차라리 죽어버려”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오직 소원이라면, 원수 같은 남편이 어서 빨리 죽어서 남편의 재산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뿐이다. <피와 뼈>에서도 불행한 가족사는 유전된다. 김준평의 딸은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람에게 시집간다. 그러나 아버지의 다른 이름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다. 남편의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동생에게 방 얻을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동생은 누나의 부탁을 외면한다. 누나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누나가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너 아버지 닮아간다”였다. <피와 뼈>는 흙탕물에서 치고박고 버둥거리는 것이 재일조선인 남성의 역사라면, 천장에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는 것이 재일조선인 여성의 인생이라고 증언한다. 참혹한 풍경이다.

오늘도 우리는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야만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독일, 창백한 어머니>가 증언하듯이 전쟁이 끝나도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폭격의 흔적은 복원할 수 있지만, 정신의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 전쟁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 어떤 이름으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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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