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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모란장, 노량진 수산시장, 광장시장, 경동시장- 재래시장 견문록
글·사진 이영진 2005-03-11

사람 냄새 그득한 시장에 가다

최근 정부는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밀려 겨우 연명하고 있는 재래시장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나쁠 건 없다. 제대로만 된다면 재래시장은 손님을 다시 끌어모을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큰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되살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재래시장의 소리와 냄새와 맛이다. 여기 담은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은 얼마 되지 않아 자취를 감출지 모를 일이다. 그런 아쉬움으로 재래시장의 일부를 채록했다. 편집자

제1장: “밥 빌어먹기는 장타령이 제일이라”

모란시장

성남 모란장은 끝자리가 4, 9인 날에만 선다. 서울에선 찾아볼 수 없는 5일장이다. 그러니 진기한 것 투성이다. 지하철역부터 시장 입구까지 어지러이 늘어선 난전에선 별의별 물건들을 다 판다. 바닥에 깔아놓은 좌판에는 눈깔사탕부터 도장까지 없는 게 없다. 헌신 기워주는 신기료장수가 없다는 게 외려 신기할 따름이다. 이젠 다 사라졌겠지, 했던 광경들이 시장 안에서도 계속 펼쳐진다. 장국 냄새가 진동하는 식당 앞에 척, 하고 등장한 두 남자는 외지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트로트 메들리 테이프를 , 해진 가죽가방이 미어터지도록 채워넣은 이 2인조 동무장사(동업자)들은 점심을 챙길 여유가 없다. 한치가 품바 춤사위를 계속하는 동안 얼굴에 수저를 붙이며 유리겔라 흉내를 내던 한치는 손님이 자리 뜰세라 식당 안을 돈다. 드디어 한명의 고객 확보. 단돈 몇 백원이라도 깎아보려는 손님과 더이상 내줄 수 없다는 장꾼의 에누리 기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흥정은 오래지 않는다. 사는 자가 많지 않으니 파는 이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덤은 그래도 있다. 플라스틱 의자에서 물구나무 서는 묘기는 모란장 남철, 남성남 커플만의 서비스다. 이들은 흥에 겨워 지나는 아낙들의 손을 잡고 ‘브루스’를 청하면서 서서히 옆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들의 뒤에 ‘새 잡는 기계’(낚싯대에 그물을 걸쳐서 그 안에 장난감 새 두 마리를 넣어가지고 다니는)를 파는 무표정의 뜨내기 장수가 따른다. “우리 어렸을 적 저 걸로 새 많이 잡았는데….” 서른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둘이 주고받는 말이 그 뒤꽁지를 또 문다.

제2장: “장꾼보다 엿장수가 많다”

모란시장

난생처음 5일장까지 왔겠다, 슬렁슬렁 둘러보고 갈 순 없는 일. “술값만 내면 돼지고기 안주는 무료”라고 내건 포장마차들이 줄지은 옆쪽 공터에선 장날마다 ‘지상 최대의 쇼’가 열린다. 바로 ‘춤추는 엿장수’가 마련한 야외 무대. 한가운데서 목울대가 부서져라, 앰프야 찢어져라, 여장을 한 남자가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부르고 있다. 차디찬 땅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굳게 심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명카수’ 소리를 들을 만한 정도는 못 되는데 이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단 말인가. 가창이 끝날 무렵, 매운바람 피하려고 뒤돌아서는데 “이, 엠병할 놈은 왜 여기까지 와서 곗돈 이야길 하는겨?”라는 일성이 터져나온다. 춤추는 엿장수의 (진짜 주특기인) 욕설 만담이 주르르 쏟아진다. “뻐꾹아, 이놈아. 밥값 좀 벌었냐?” 호박엿 들고서 웃음을 흘리던 뻐꾹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고개를 젓자, 춤추는 엿장수가 “엿을 팔려면 이렇게 팔아야지” 하면서 치마를 펄렁거리며 군중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더니 한 아줌마에게 치마를 덮어씌우고선 “밥값을 내놓지 않으면 계속 이럴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지갑을 찾는 아줌마. 시퍼런 만원권 지폐를 보더니 춤추는 엿장수 한술 더 뜬다. “우린 잔돈 없어. 뻐꾹아 거기 엿 좀 더 갖고 와라”라고 소리친다. “우리 집에 많다니까. 빨리 돈으로 줘.” 아줌마 표정은 거의 사색이다. 춤추는 엿장수, 사람들 놀리는 게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안 되겠다. 엿 물리고 노래 테이프로 갖고 와라. 세트로 된 거.” 두 사람의 옥신각신은 계속되고, 한번 터진 좌중 폭소는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제3장: “이 장 떡이 큰가 저 장 떡이 큰가”

노량진수산시장

“올해가 딱 30년이야.”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오랜 문지기가 있다. 시장 사람들은 그녀를 ‘커피할머니’라고 부른다. 경찰이던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진 뒤 좌판 다방을 차린 것이 나이 마흔둘. 자식들 장성하기까지 생계를 홀로 꾸리느라 이젠 본인도 다리가 불편한 처지가 됐지만, 여전히 경매가 있는 새벽녘에 시장 입구를 지키며 “물이 끓어야 하는데 자꾸 꺼지네”라는 걱정을 달고 산다. IMF 전엔 하루에 35만원씩 번 적도 있었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할머니는 “이젠 늙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잘 찾지도 않는다”면서도 “집에 있으면 다리가 더 아프다”며 “총각이 석유 곤로나 좀 옮겨줘”라고 한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파장이 없다. 횟집들은 문을 닫았지만 해산물을 도떼기로 거래하는 이들은 자정부터 몸을 움직인다. 커피할머니가 가르쳐준 경매 장소로 언 발을 옮기니, 인부들이 부려놓은 홍합숲 사이를 수십번 오가며 그물망 사이에서 흘러나온 금(金)을 줍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릴레이 경매가 시작되는 시간은 새벽 1시경. “아, 아, 자, 모여요!” 경매사의 마이크 음성에 불을 쬐던 중개사들이 수산물 박스가 있는 곳으로 금세 모여든다. 물량이 많지 않은 낙지 경매는 순식간이다. 카메라를 꺼내들기도 전에 경매사들과 중매인들은 바지락과 홍합 경매 장소로 이동한다. 그런데 이번엔 전과 상황이 다르다. ‘쏼라 쏼라’, 중국말 같은 경매사의 말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다급한 음성인 건 알겠다. 급기야 경매사가 “운임도 안 나와. 이러면 내가 물어줘야 해”라며 채근하지만 중개사들은 땅을 보며 딴 짓이다. 이게 낫나, 저게 낫나, 홍합더미를 만지작거리는 이가 있긴 한데, 그 또한 나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 경매가는 계속 곤두박질친다. 어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제4장: “한푼 장사에 두푼 밑져도 팔아야 장사”

광장시장

삼전시호 개인신(三傳市虎 皆人信)이라.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셋이 우기면 자연히 믿게 된다는 말처럼, 시장의 먹거리판은 언제나 풍성한 말잔치이기도 하다. 굳이 지인일 필요는 없다. “여기 앉으면 되겠네”라고 좁은 좌석을 내주는 건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누구나 쉽게 자리에 끼어들고, 누구나 쉽게 마음을 연다. 물론 술을 나누고, 뜻을 나누는 것이 과해서 고성이 오가는 주먹다짐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광장시장에서 40년 넘게 녹두빈대떡을 부쳐 파는 “그때 그 빈대떡” 아주머니도 그 때문에 굳이 호객 행위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잠깐. 아직 젊으신데, “녹두를 가는 맷돌 수명이 40년이나 됐다”고? 뻥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닌가, 라고 의심할 찰나 자리한 단골손님이 “30년 전에 시어머니가 하던 손맛이랑 하나도 다른 게 없어”라고 대신 답한다. 현재 주인은 알고보니 원조 빈대떡 할머니에게 두달 넘게 기술을 사사받은 며느리로, 맷돌 경력 3년차다. “요즘은 냉장고에 설 지내고 남은 전이 있을 거 아냐? 그러니까 별로 사가는 사람도 없어.”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대신 은행에 입금해주는 사람에게 하루 벌이를 넘겨주면서 아주머니는 “경기 좋아졌다는데 다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반쪽 달라고 생떼 쓰는 젊은이에게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두장 달라는 단골손님에게 세장 얹어주는 인심을 너끈히 발휘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집에 싸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뭐든 여기서 팔아야지.”

제5장: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

경동시장

정월 대보름 전날이지만 머릿속에 그렸던 인산인해 풍경은 아니다. 날은 벌써 어둑해지고, 그럴수록 경동시장 상인들의 마음은 더 바빠진다. “싸게 드릴게. 잠깐 와서 봐.” 상인들은 시선만 줄 뿐 지갑엔 손을 넣지 않는 사람들의 소매를 잡아채기도 한다. 그런데 저기 세 사람. 유독 한가해 보인다. 고무대야에 멸치와 굴과 새우젓을 담아놓은 이들은 간혹 “자, 새우젓이 3천원”이라고 소리를 놓는 게 전부다. “그래도 우린 심심하덜 않어.” 성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지만 27년 동안 경동시장 한 파라솔 아래서 장사를 했다는 세 아낙이다.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그만 물어봐.” “사진은 싫여. 얼굴 나가면 며느리 못 본다니께.” “아들도 없으면서 뭔 소리여. 이렇게라도 서민들이 사는 걸 보여줘야제.” 세 사람은 파라솔만 나눠 쓰는 게 아니다. 질척한 땅에 놓인 막걸리 박스 위에는 엉덩이 셋이 사이좋게 얹혀져 있다. “신랑 없어도 우린 잘살아. (우리 사는 곳이) 달동네지만 여자 셋이서 함께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거든.” 불리지 못하면 나누면 되는 것인가. “어여 가. 여기 서 있으니께 손님들이 다 피해가잖여. 우리도 조금은 팔아야제.” 얼굴엔 웃음 가득이다. 뒤를 보니 막걸리와 덕담을 내주고 흰 봉투를 받는 상조회 풍물패가 눈에 들어온다. 달도 안 떴는데 어깨들이 신명으로 들썩인다. 부자 되는 건 어쩌면 맘먹기에 달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