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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맞아도 가학사관 할겨?

베를린 근교에 있는 드레스덴은 매우 아름다운 도시다. 내 경우에는 거기에 가서야 비로소 독일도 유럽의 일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60년 전 그곳에는 무서운 일이 있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가 초토화되고, 소이탄이 만들어낸 불바다 속에서 수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드레스덴은 군사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도시였다. 독일이 런던을 공습한 것에 대한 다분히 감정적인 보복으로 바로크풍의 건물로 가득 찬 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드레스덴 폭격 60주년 사진전을 보러온 이들 중에는 당시의 공습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민간인 살상의 일차적 책임이 연합국에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전쟁은 우리가 시작하지 않았냐?”고 대답한다. 비록 연합군의 과잉행위로 고통을 받았지만, 먼저 다른 나라의 도시에 폭탄을 퍼부어 고통을 안겨준 것은 자신들이니 연합군을 탓할 주제가 못 된다는 것이다. 희생자는 추모하나, 먼저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 이게 독일사회의 평균적 윤리의식이다.

물론 독일사회에 평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전 밖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네오나치들이 폭격의 희생자들을 제 방식대로 추모하고 있었다. “아우슈비치의 유대인 학살자나 폭격기 위의 영국 조종사나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희생자를 추모하겠다는 데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 시위를 주도한 극우성향의 NPD 의원들은 그 직전 의회에서 유태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올릴 때에는 참여하지 않고 곧바로 퇴장해버린 바 있다.

독일은 비교적 철저한 과거 청산작업을 해왔다. 그 작업에는 시효가 없어서, 바로 얼마 전에도 나치 공군 조종사의 이름을 딴 부대의 명칭을 바꾸라는 법원의 명령이 내려졌다. 그 장교가 히틀러와 괴링에게 훈장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네오나치들은 독일이 전후에 계속 추진해온 이러한 반성의 노력을 종종 ‘내셔널 마조히즘’이라 비난하곤 한다. 한마디로 자기의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며 자신에게 매질을 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일종의 자학증세라는 것이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과거사의 반성에 인색하다. 따라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자기 반성을 일종의 자학증으로 보는 견해가 독일과는 달리 사회에 꽤 널리 퍼져 있다. 책임 있는 정치가들도 툭하면 망언을 하고, 버젓이 전범의 위패가 있는 신사 참배를 시도하는 것도 실은 그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들이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구사하는 대표적인 수사학이 바로 ‘자학사관’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로 그들은 특히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 개입하여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기술한 부분을 삭제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재미있게도 ‘자학사관’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에도 등장했다. 최근에 뒤늦게 해방 이전의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 군부독재 시절의 역사를 반성하려는 노력이 행해지자, 여기에 반발하는 자들이 심심찮게 구사하는 수사법이 바로 ‘자학사관’이라는 어휘다. 흔히 네오나치나 군국주의자들은 독일이나 일본에나 있는 별종들이라 생각하곤 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모든 나라는 제 나라의 또라이들을 갖고 있다. 머리만 밀지 않았지 히틀러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면 손을 뻗어 “하일”이라고 외칠 또라이들은 대한민국에도 많다.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것을 ‘자학증’이라 부르는 것이 또라이들 특유의 사회방언. 반성을 하는 게 자학사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또라이들의 성취향이 가학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놓고도 만족을 못한다.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벌건 대낮에 가죽 옷 입고 채찍질할 태세다. 그러니 저들의 것이야말로 ‘가학사관’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이들 보면 솔직히 확 채찍을 빼앗아 맛보기로 좀 두들겨주며, 그 반응을 관찰해보고 싶다. 얘들, 맞아보고서도 여전히 가학사관 할까?

일러스트레이션 신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