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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숍부터 장례식장까지, 애완동물 관련 업체 탐방기
사진 오계옥오정연 2005-03-18

너는 펫~♡, 얘네는 펫 친구~♡

곁에서 잠든 애완동물의 몸을 손바닥 가득 쓰다듬어본 사람은 안다. 드넓은 우주 한복판에서 엄청난 인연으로 마주한 이 생명체가 나를 온전히 믿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감동을. 장 그르니에는 자신의 고양이 물루가 “잠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지워준다”고 표현한 바 있다. 세상살이가 한없이 막막한 순간, 뜻밖에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 반드시 인간일 필요는 없다. 대문을 여는 순간 나를 위해 달려온 강아지가 보여주는 반가운 몸짓이 사뭇 눈물겨울 때가 있다. 무심하게 곁을 지키던 고양이가 모르는 척 따스한 앞발을 내 손에 얹어주면, 문득 행복해지곤 한다. 그것은 이 진중한 친구들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분양숍과 병원, 스튜디오와 장례업체, 서로 다른 네 가지 장소에서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을 만났다. 물론 모든 애완동물 친구들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관건은 우리의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뿐, 정답은 없다.

아가들의 평생 반려인을 찾습니다

고양이 전문 분양숍

콜록콜록. 방금 들어오신 분, 문 좀 닫아주시죠. 제가 몸이 좀 약해서요. 머나먼 러시아에서 한국에 온 것이 2003년 11월 초. 그 뒤로 심한 풍토병에 시달렸거든요. 저는 이 분양숍의 마스코트 지오라고 합니다. 네? 손님이 왔는데, 편안한 캣타워에서 내려올 생각도 안 하는 건방진 고양이라고요? 계속 잔소리하실 거면 시간낭비 말고 그만 나가주시죠. 마음에 꼭 드는 이상형이 존재하지 않는 건 이곳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꼭 집어 어떤 종류를 데려가겠다 작정하고 왔더라도 일단은 느긋하게 둘러보셔야 할 겁니다.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소중한 인연을 만드는 것이,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이곳은 유행따라 바꾸고, 고장났다고 버릴 수 있는 장난감을 파는 곳이 아니랍니다.

이태원 부근에 위치한 수입고양이 전문분양숍의 문을 열자, 나비(노르웨이포레스트)와 헤라(메인쿤)의 추격전이 한창이다. 캣타워에서 낮잠을 청하던 지오(스코티시폴드)에게 인사를 건네자니, 며칠 전 몸을 푼 러시안블루 일가를 돌보던 유상욱씨가 나타난다. 2003년 12월 오프라인숍을 개업한 그는, “아무에게나 꼬리치지 않는 지조, 늘 반짝거리다가 관심가는 물체가 나타나면 유난히 커지는 눈이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고양이와 함께하는 이 직업을 택했다고 말한다. 세계 각지의 캐터리(고양이 사육장)로부터 고양이를 수입해 낯선 환경에 적응시킨 뒤, 최선의 인연을 찾아주는 것이 그의 할 일. 이를 위해선 손님의 객관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고양이와 같이 살았던 경험 여부, 가족사항, 생활 환경은 물론이고 직업이나 성격도 고려대상이다.

“처음 키우시는 분은 성격도 좋고 털이 많이 안 빠지는 중장모종, 네브스카야가 좋고요. 남자분들에겐 자랐을 때 강렬한 인상을 가지게 되는 메인쿤을 권해드리기도 합니다. 조용한 성격을 가진 분에게는 스코티시폴드도 잘 어울리고요.”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분양이 불가한 이들이 있으니, 싼값에 상품(?)을 구입해서 되팔려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이는 손님, 생명체를 책임지기엔 아직 어린 고객이 그들이다. 그러나 가장 큰 경계 대상은 애완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한 충무로의 악덕업자들. 공기주사를 놓아 병약한 새끼들을 처치하려는 업자에게서 구출한 생명이 몇이던가. 그러므로 그의 분양숍에는 사고파는 애완동물은 없다. 소개를 주고받는 반려동물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으니,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 무렵. 자기들끼리 놀다 지친 지오캣의 터줏대감들이 찻잔들 사이로 아슬아슬한 테이블 진출을 시도한다. “헤라야∼.” 다정한 부름에 ‘니야옹’거리던 헤라, 이내 익숙한 손길에 몸을 맡기고 골골거린다.

당연하게도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동물병원

헤헤. 여러분 반가워요. 여기는 제가 아주 어릴 적 심하게 아팠을 때부터 돌봐주신 고마운 분들이 있는 병원입니다. 저는 태어난 지 7개월 된 마르티스, 차돌이고요. 오늘은 심장사상충 주사를 맞고, 외부기생충 약을 바르기 위해 왔죠. 신나는 산책을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선 한달에 한번씩 이런 고통은 감수해야 한대요. 아무에게나 너무 꼬리치는 것 같다고요? 옛날부터 가족 다음으로 가깝게 지낸 선생님이신데 만나면 반가운 게 당연하죠. 이게 다, 장애가 있었던 저를 포기하지 않았던 가족들과 선생님들 덕분이에요. 저를 가족으로 여겨주어서, 눈빛으로 제가 원하는 걸 읽어내고 최선을 다해주어서,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고요.

“몇살이에요?” “남자앤가보다. 씩씩하게 생겼네.” “얘가 요즘 당뇨병이 심해서요….” 실속있는 육아정보와 은근한 자식자랑, 진지한 감탄과 위로의 말이 오가는 이곳은 동물병원 대기실. 보호자들의 수다가 소아과 병동을 방불케 한다. 진료실 안에서는 김주민 부원장이 차돌이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애들이 많이 찾게 되는 대학병원과 달리 동네 병원에서는 어릴 때 애를 먹였던 새끼들이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요즘 애완문화가 제법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개뿐 아니라 고양이, 토끼, 햄스터, 페릿 등 다양한 애완동물이 병원을 찾을 때, 사람과 비슷한 생활을 누리게 된 탓에 백내장, 당뇨병, 심장병, 디스크 등 인간과 유사한 병치레로 고생하는 동물들을 치료할 때, 병세가 심하고 돈이 많이 들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내는 보호자를 마주할 때가 그런 순간들. 물론 가슴 아픈 경우도 있다.

입원시킨 뒤 찾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병원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인 믹스견 덩이는 예전에도 사랑을 받지 못했는지, 아직도 사람 손이 다가오면 경계를 풀지 못한다. 또 다른 동물병원의 송재호 원장은 말 못하는 동물들이 정확한 진료를 받자면 각종 검사들로 인해서 진료비가 비싸지는 것은 당연한데, 아직까지도 많은 보호자들이 저렴한 가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아쉽다고 조심스레 덧붙인다. 생면부지의 생명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이들이라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여름 일원동 모처에서 구출한 유기견 원동이(코카스파니엘)의 미용을 위해 병원을 찾은 김송혜민씨는 “단지 비용뿐 아니라 동물을 물건 다루듯 하는 예전 병원의 진료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지금의 병원으로 옮겼다고. 공연한 엄살이 아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의사든 환자든, 소중한 생명을 그만큼 소중히 다뤄주길 바라게 되는 곳이 병원 아니던가.

나비야, 김치이~♡

애완동물 전문 사진 스튜디오

치~즈.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 이름은 루비, 반년 뒤 두살배기가 되는 마르티스랍니다. 보다시피 전 지금 일생일대의 스튜디오 촬영 때문에 정신이 좀 없네요. 여긴 저처럼 가족들 품에 안겨온 친구들뿐 아니라 광고모델 친구들이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곳이죠. 이렇게 요란법석을 떨다니, 무슨 특별한 날이냐고요? 에이~ 촌스럽긴. 사진을 기념일에만 찍으란 법 있나요. 겨우내 길렀던 털을 깎아버려야 하는 여름이 오기 전에, 아리따운 자태를 기록해두고 싶다고 언니들이 난리였거든요. 이들이 이처럼 원하는 데 어쩌겠어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죠.

“루비 혼낼 때 뭐라고 그래요?” “루비! 맴매한다!” “아이, 루비 착하다. 잘했어.” 곱게 털을 빗어내려 동물 만화 속 공주 같은 강아지 주변에 둘러선 이들. 동물 전문 스튜디오의 손영찬 촬영실장과 루비의 두 언니, 김우경, 애경씨 자매가 그처럼 무섭게 화를 냈다가 친절모드로 돌변하는 이유는 하나. 단 1초도 머물지 못하는 루비의 시선을 한곳에 잡아두기 위해서다.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은 편. 무서운 대형견처럼 짖으면서 루비의 주의를 끌던 손영찬 실장, 어쩌다 들려줬던 괴성에 루비의 귀가 쫑긋해지자 이젠 홍콩 무협영화 주인공으로 돌변한다. 옆에서 구경하던 기자가 그 어지러운 풍경에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두 가지 배경에서 서너 가지 포즈를 지휘하던 손영찬 실장이 30분 만에 촬영 종료를 선언한다. 아니 벌써? 제대로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이 10장이나 될까? 그 와중에 루비가 눈을 감았거나, 표정이 이상한 컷이 대부분이면 어쩌려고….

“동물 사진이라고 꼭 어려운 건 아니에요. 사람처럼 포즈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는 없지만 동물들한테는 어색한 표정이 없거든요.” 손영철 실장은 슈나우저에겐 강직한 자세, 발랄한 코카스파니엘은 자연스런 털관리, 차분한 마르티스는 공주 같은 분위기가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밝고 명랑하며 당당한 모델의 성품. 그 천성을 인위적으로 꾸며낼 줄 모르는 친구들이기에,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서 간직할 수 있는 사진 한장이 더욱 소중하다. 한때 애완동물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으려는 일반 고객으로 넘쳐나던 동물 전용 스튜디오들. 이제는 제품 광고 모델을 주고객으로 삼고 있다고. 그러나 이런 실적 저조를 단지 애완업계의 불황 탓으로 돌리기는 힘들다. 어쨌거나 동물친구들의 깜찍한 표정을 담은 사진은 인터넷 사이트 사진 게시판의 단골메뉴 아니던가. 결국 우리네 지갑 속, 혹은 책상 한구석을 차지하는 건 애정을 주고받는 존재의 가장 자연스런 모습이다. 더이상 전문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 뿐, 그 찰나를 포착하려는 정성은 변함이 없다.

하늘 가는 길, 끝까지 지켜볼게

애완동물 장의사

안녕. 안녕. 여러분. 제가 이승과의 연을 끊은 지 1주일이 되어오는군요. 너무 슬퍼하진 말아요. 누군가 나를 길거리에 버려두긴 했지만,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나 또순이라는 이름을 얻었거든요. 결국 하찮은 병으로 삶을 포기해야 했지만, 마지막 길이 행여 외로울까 온 마음으로 함께한 이들이 있으니까요. 더러워진 내 몸을 닦아주고, 보살피는 이 없던 나에게 수의를 입혀주고, 외로운 나의 가는 길을 누군가 지켜줬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에요.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를 위해 울어주고, 정성을 다해 나를 기억하는 이가 있어서, 그래서 행복했답니다.

애완동물 장의사 임성민씨가 또순이(마르티스)를 염하는 내내 두손 모아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김민정씨.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사진기자에게 묻는다. “또순이 사진이 잡지에 나가나요?” 그렇다는 대답에, 그는 황망하게 중얼거린다. “불쌍하게 집도 없이 살다가, 죽어서 스타되네.” 김민정씨가 아파트 단지에서 주인없이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또순이를 발견한 것이 지난해 추석 무렵. 병원에서는 또순이에게 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이었지만, 꾸준히 곁을 지키는 이가 없었기 때문인지 병세는 겨울을 지나면서 급격하게 악화됐고, 결국 아무런 가망도 없는 또순이를 안락사시키기에 이르렀다. “한 차례 버림받았던 아이였기 때문인지 더욱 신경이 쓰인 탓에” 김민정씨는 급하게 수소문하여 장의사까지 찾았다.

기르던 개에게 이름표라도 달아줬다면 이렇게 주인을 잃는 유기견은 없지 않았을까 여러모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는 그이지만, 또순이의 마지막 길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인지 화장터를 떠나는 그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본시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이 그렇다. 모든 장례 절차는 보내는 마음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함인 법. 2000년 애완동물 장의사를 시작한 임성민씨가 수시(收屍), 염습(殮襲), 습의(襲衣), 입관(入棺), 발인(發靷), 화장 혹은 매장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를 동물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동물의 시신을 일일이 꿰매어 복원하고, 동물병원 냉장고에서 꽁꽁 얼어버린 시신을 녹이는 일이 때로 귀찮고 하찮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에 가까운 절차를 고집한다고 그는 말한다. 물론 고지식한 장례 의식이 이별하는 순간의 숙연함을 모두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가 기억하는 한 중년 남자는 내내 절제된 태도로 일관하다가, 화장이 모두 끝난 뒤에야 먼 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더랬다. 기어이 참아지지 않는 눈물 한 방울의 비밀은, 바로 진심이다.

취재협조 지오캣, 펫프렌즈 동물병원, 한사랑동물병원, 이솝스튜디오, 강아지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