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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같은 남자, 칼 같은 배우, <가능한 변화들>의 배우 김유석
사진 이혜정김수경 2005-03-24

<강원도의 힘>에서 여주인공 지숙(오윤홍)과 술을 마시다가 취해 아파트 테라스에 매달리던 경찰관을 기억하는가. 스크린에 담긴 카메라 앵글 밖의 촬영현장에는 그가 떨어질까봐 이삿짐 사다리차에서 노심초사하던 연출부가 있었다. 그 연출부는 풋풋한 신인이던 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훗날 내가 내 영화를 만들면 꼭 당신과 작업하고 싶다”고. 풋풋한 신인이던 김유석이 결국 약속을 지킨 민병국 감독에게 새롭게 받아 쥔 역할이 <가능한 변화들>의 종규다. 김유석은 연기자인 동시에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러시아 쉐브킨대학에서 2년, 슈킨에서 2년간 스타니슬라프스키론에 입각한 시스템 안에서 연기를 배운 그는 강단뿐 아니라 “그를 끝까지 믿어줬고 스스로 책임감을 느낀다는” 극단 미추에서도 7년을 가르쳤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코치에 가깝죠”라고 말하지만 김유석은 자신이 경험한 러시아의 교육체계와 국내 예술교육의 장단점을 세세하게 지적할 만큼 꼼꼼하다. “다른 건 몰라도 교육은 잘못되면 폭력이니까”라는 자신의 말처럼.

“카리스마 있는 역도 잘할 것 같아요, 라고 말들은 하지만 절대 맡기지는 않죠”라고 웃는 그의 모습에는 이제는 좀 알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즐거움을 느끼면서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이 남자의 변화는 브라운관의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보는 분위기. 대하사극 <토지>의 김환이 길상을 만나 한풀이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햄릿적 독백은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대본상으로 다섯 페이지가 넘는 장면이었는데 그의 연기력을 믿고 제작진은 원컷으로 찍어냈고, 결과는 대성공. 무대와 스크린의 그는 첫인상처럼 평범하고 부드럽지 않다.

“평범하게 생겼지만 이 속에는 지랄 같은 것들이 있다”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그는 “뒤틀리고 인생 자체를 씹어내는 캐릭터를 선호한다”고 했다. 사실 무대 위에서 그가 꾸준히 맡아 온 라스콜리니코프나 햄릿 같은 정극 캐릭터들은 이를 입증한다. 평소에는 털털하고 나사가 하나 풀린 것 같지만 작업에 들어가면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일상의 변화처럼 작업 중의 그는 날이 서 있다. 그가 슈킨에서 “대본없이 매일 3∼5분 분량의 극을 스스로 만들어 연기하던 그 시절”처럼 말이다. 이런 경험은 TV단막극에서 그가 보여주는 집중력의 토대가 되었다. “방송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단막극”은 “영화라면 제작비가 부담스럽고, 연속극에서는 나오기 힘든 캐릭터와 느낌”이라는 측면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장르다.

김유석은 철저히 준비한다. <가능한 변화들>의 종규 역할을 위해 병원에 가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미세한 몸의 움직임까지 관찰하는 것은 그에게는 기본. “영화 속에 종규가 수현을 만나서 반대편으로 가려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이쪽에 있으면 마음대로 만질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자리를 바꾸려는 것” 같은 예상하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동선 처리는 이러한 철저한 대비에서 비롯된다. 곧 관객을 만나게 될 <엄마>도 마찬가지다. “개차반, 돌아온 탕아, 트러블 메이커”인 둘째아들 역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경마장과 파친코를 몇주간 드나들며 미리 개인적인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갔다. “이를테면 도박사들이 보여주는 그런 모습, 숨을 죽이고 집중하다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는 모습” 같은 디테일은 현장을 유심히 지켜보지 않으면 체득하기 어렵다.

고1 때 <색시공>이라는 연극에 넋이 나갔고,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나이를 속여 들어갔던 산울림 워크숍 1기의 <출세기>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연기는 연기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배운 것처럼 혹독하게 자기를 단련했다면 20대 중반에 이미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는 냉철한 반성도 하는 나이에 그는 서 있다. 이제야 꽃을 피운 선배들과 치고나오는 후배들 사이를 느리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한 계단씩 충실하게 내디뎌온 김유석의 발걸음은 바야흐로 “사람 좋은 인상보다는 강렬한 연기의 길”로 접어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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