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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결계 안의 뒤죽박죽 일상,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

우편번호는 모르겠고, 만파(卍巴)시 불가사의 마을 아시아라이 저택. 만약 당신이 우체부라면 이 주소가 당신의 구역이 아니기를 함께 기도하자. 일단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어 출입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자칫 저택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동에 휘말렸다가는 ‘단순 사망’이 아니라 9999년 동안 개구리 지옥에서 양서류들의 피부 관리를 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판타지 장르에 대해 조금 안다 싶으면, 이 만화에 함부로 손대지 말기를 바란다. 이상야릇한 사건과 연이은 개그에 휘말려 만사를 젖혀두고 몇번씩 작품을 탐독할지 모른다. 만약 당신이 판타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강력한 봉인의 힘으로 단 한장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수수께끼의 ‘대소환’ 이후 마법계와 인간계가 마구 뒤섞여버린 상황. 이른바 ‘중앙’이라는 곳의 강력한 통치가 행해지고 있지만, 길거리에서는 인간의 도덕률로는 장악되지 않는 이 세계 존재들의 살인과 폭력 등 과격한 행동들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아시아라이 저택은 사연 많은 존재들이 들어와 사는 연립주택으로, 어쩐 일인지 ‘중앙’은 물론 온갖 헌터들의 표적이 되고 있어 심심찮게 시끄러운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저택 안에서만은 화가, 작가, 마법사, 고양이 인간들이 평화롭게 혹은 궁상스럽게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이 만화의 핵이다.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은 ‘미소년 동성애 만화-파타리로’, ‘SF 근미래 만화-니아 언더 세븐’처럼 하나의 장르가 과도하게 숙성하면 등장하는 마니아형 개그 만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완전히 ‘웃음’을 위해 매진하는 편은 아니며, 고유한 판타지로서 자유분방한 세계 묘사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대 유대교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파리 대왕 베르제블,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지옥 천사들의 신전 ‘만마전’, 일본 관서 지방의 변신 동물인 콩너구리와 같은 다양한 판타지적 존재를 마구 등장시키면서 그 안에서 미스터리, 로맨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유머’를 만들어낸다. 개개의 익숙한 요소들을 다차원적으로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하이퍼미디어. 아마도 만화 이상으로 이 일을 해낼 매체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