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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황홀, 제주의 숨결을 담다, <김영갑 사진전>
2005-03-25

3월23일∼4월5일ㅣ세종문화회관 신관ㅣ02-399-1151

사진가 김영갑의 작품은 제주 자연의 숨결과 바람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보다 순결할 수 있을까. 자연의 숨결이 피어나는 순간, 김영갑의 사진은 자연의 호흡이며 맥박이다. 그는 신들이 잠들어 있다는 제주의 표정을 20여년 넘게 담아오고 있다. 어떤 이는 진정한 제주의 모습을 그의 사진을 통해 먼저 알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영갑의 제주경(濟州鏡)엔 매혹적인 끌림이 있다. 감동의 파노라마에 비친 신비로운 야생의 자연에는 바람에도 향기가 묻어난다. 마치 셔터소리에 영혼을 지닌 한줄의 시구가 음성이 되어 전해오듯, 눈으로 찍은 풍광의 정념(正念)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고이고이 인화되어 쌓여간다.

“어느 날 나에게 광풍과도 같은 루게릭이 엄습해왔다. 루게릭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나는 그런 병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으며, 불치병이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 나는 용감한 투사였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두려움에 눌려 당당함은 안개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건강한 동안에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 여기며,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작품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러다 어느 날 주사위를 던져 죽음의 수가 나오자, 나의 당당함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내 몸의 근육은 이 순간에도 촛농처럼 녹아 없어지고 있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고리를 잡는다고 한다. 삶과 죽음은 그만큼 가까이에 등을 맞대고 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은 곧 진실의 관문인지도 모른다. 죽음과 직면한 뒤 세상의 작은 행복을 보게 됐다는 김영갑.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은 삶의 진실이 녹아든 한편의 서사시와도 같다. 어떤 이는 그 사진을 두고 눈물나도록 아름답다고도, 삶을 던져 영혼까지 찍어냈다고도 한다. 바로 제주 사람조차 볼 수 없었던 제주의 속살까지 담아내,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에 있지 않다는 비유가 있을 정도이다.

“루게릭을 몰고 온 구름 역시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오늘도 흔들린다. 구름이 흐르는 대로 흔들린다. 맑은 날은 빠르게, 흐린 날은 더디게, 구름따라 흔들린다. 죽음을 피할 수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언제까지나 당당하게 싸울 것이다. 구름이 내게 길을 가르쳐줄 것을 믿기에….”

여전히 맑고 빛나는 눈을 잃지 않은 사진가 김영갑은 현재 제주 한라산의 옛 이름을 딴 ‘두모악갤러리’(www.dumoak.co.kr)를 운영 중이다.

글 김윤섭/ 월간 <아트 프라이스> 편집이사·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