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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20세기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의 연기력, <캐리>
2005-03-25

<캐리>는 제작 당시의 정치적인 사정으로 일부분이 삭제된 채 공개됐다. 허름한 빈민 숙소와 걸인들의 생활을 담은 장면이 그 이유였다.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시스터 캐리>를 원작으로 둔 <캐리>가 도시와 인간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다루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1950년대 미국의 반공·보수 이데올로기는 짧은 묘사조차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캐리> DVD의 16번째 챕터에 복원 결과가 실렸다고 해서 그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소박한 인민주의 영화의 묘사보다 그 정도가 오히려 덜한 터라 더욱 놀라웠다.

사실, 디어도어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는 1900년에 발표될 때부터 원성을 샀던 작품이다. 미주리주의 컬럼비아에서 시카고로 온 시골뜨기 여인 캐리(제니퍼 존스)는 직장에서 쫓겨나 다시 시골로 내려가게 되자 드루에(에디 앨버트)의 정부가 되지만, 레스토랑의 지배인인 허스트우드(로렌스 올리비에)와 만난 뒤엔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구식 도덕가들은 세월이 흘러 두 남자와 헤어진 캐리가 뉴욕에서 여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을 참아내지 못했다. 남자와 사회는 부도덕하다고 낙인찍힌 여자가 비난을 피해 평탄한 삶을 누리는 걸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개인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사회의 부당함과 비참한 현실을 해부하려던 드라이저의 시도는 제대로 읽힐 기회를 잃고 말았고, 캐리가 ‘왜 난 고귀한 것을 잃고 살아왔던가’라고 물으며 이상을 동경하는 순간은 부정된다.

윌리엄 와일러의 <캐리>는 그 실패를 반복했다. 와일러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드라이저의 거친 멜로드라마를 심심한 소프오페라로 바꿔버렸다. 캐리의 뒤를 쫓기에 바쁜 카메라가 시카고와 뉴욕의 밑바닥 인생을 다루는 건 애초에 힘든 일이었으며, 제니퍼 존스의 시종일관 순진해 보이는 얼굴은 에른스트 루비치의 <클러니 브라운>에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돋보인 건 남자, 로렌스 올리비에였다. <캐리>의 마지막을 허스트우드로 장식한 윌리엄 와일러는 <푸른 천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했던 여인의 곁을 떠나는 올리비에의 쓸쓸한 뒷모습은 <푸른 천사>에서 눈물어린 최후를 맞는 에밀 야닝스의 그것에 버금간다. 물론 허스트우드가 가스를 틀고 자살한다는 원작의 결말이 사라져 감동이 덜하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파라마운트가 허스트우드 역에 일순위로 밀었던 배우가 캐리 그랜트였다는 사실을 듣는다면 그런 원망쯤은 접어야 할 게다. 비극의 주인공 캐리 그랜트, 상상이나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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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ibu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