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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이 직접 쓴 <달콤한 인생> 제작기 [2]
2005-03-29

나이트클럽

2004. 8. 22 지루 촬영에 조루 액션!

어느덧 촬영도 8회차를 가고 있다.

서울의 모 호텔 나이트.

선우와 늦은 시간 나이트클럽 룸에 들어와 강짜를 부리는 백 사장(황정민)파 똘마니들간의 액션신을 찍는 날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가볍고 쿨하게 설계된 액션이다.

가볍고 쿨한 액션 설계지만 나름대로 40여컷. 이틀 동안 나이트 영업에 방해되지 않고 끝내려면 10시간 안에 20여컷을 끝내야 한다.

계산해보면 1시간에 2컷을 쳐나가야 한다. 류승완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테이블 위로 뛰어올라간 선우가 천장에 붙은 샹들리에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두명의 똘마니를 가볍게 처치해야 한다. 테이블은 삐걱거리고 소파와 테이블이 워낙 커 카메라 동선은 안 나오고 천장은 왜 이렇게 낮고 샹들리에는 왜 이렇게 큰지. 테이크 한번 가면 깨진 유리잔이며 테이블 세트하는 데 20여분 소요. 아… 오만 가지가 속을 태운다.

결국 7컷 찍고 끝났다. 다음날 나머지 분량을 다 소화해야 한다.

1분도 채 안 되는 액션인데 왜 이렇게 힘든 거지?

내가 액션을 왜 한다고 그랬지? 제기랄.

우리의 액션 컨셉은 지루 촬영에 조루 액션이다.

깡판

2004. 9. 25 “구더기만 신경쓰지 말고 나도 좀 신경써줘요”

인천 수협 공판장.

백 장의 지시로 오무성(이기영)과 동남아 갱들이 선우를 습격, 그들의 아지트인 일명 깡판이라고 불리는 수산물 공판장으로 선우가 영문도 모르고 린치당하는 장면을 찍는 날이다.

을씨년스럽고 휑한 공판장 내부는 생선 비린내만으로도 누아르 분위기를 물씬 내뿜는다.

바닷가라 그런지 해만 떨어지면 기온이 급강하했고 거기서 이병헌은 남방 하나로 밧줄에 묶인 채 피를 뒤집어쓰고 차가운 세면바닥에 누워 있다가 그 상태로 공중에 매달려야 했다.

영화가 럭셔리한 분위기에서 어둡고 음습하고 불온한 기온이 감도는 누아르 분위기로 반전되는, 본격적인 누아르의 때깔과 공간 미장센을 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장면이다, 라고 스탭들에게 전달했다. 하긴 매번 이번 촬영은 이래서 중요하고 저래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 어디 있으랴….

썩은 생선토막과 내장들을 여기저기 던져놓고 그것도 모자라 서울에서 구더기를 공수해왔다. 그런데 추워서 그런지 구더기들이 비실비실하다. 내가 구더기들을 움직이게 건드려보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보다못한 조감독이 다가와 구더기들에게 꽥 하고 소리친다. “야! 너희들 안 움직여?”

아… 불쌍한 구더기들. 그 구더기들에게 소리치는 더 불쌍한 우리 조감독.

공중에 불쌍하게 매달린 이병헌이 우리를 불쌍하게 쳐다본다.

“구더기만 신경쓰지 말고 나도 좀 신경써줘요. 좀 내려주든지….”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연일 강행군에 스탭들의 진행은 굼뜨고 해는 또다시 떠오르고 뭐가 이렇게 진행이 더딘지 연출부를 소집했다.

이소영 조감독, 오세경 조감독, 연출부 신은영만 달랑 왔다.

“나머진 어딨냐? ”

“안규는 깡판 문에 손이 껴서 손이 으스러졌고요. 민석이는 담 뛰어넘는 시범보이다가 다리 금갔는데요. ”

내 마음도 으스러지고 금이 간다.

청평 폐창고

2004. 10.7 ∼ 17 천하무적 이병헌

청평 폐건물에서 잡혀온 선우가 문석(김뢰하)의 수하 12명을 상대로 목숨을 건 생사의 탈출 시도를 벌인다. 이 장면은 우리 영화의 3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 ‘라 돌체 비타’ 살육전과 밀매 사무실 총격전과 더불어 가장 고난도의 촬영강도를 요구하는 중요한 신이다. 연기자와 스탭들은 한치의 오차없이, 사고없이 무사히 끝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또 그만큼 초긴장 상태로 촬영에 임하고 있다. 정두홍 무술감독, 여경보 스테디캠 기사, 데몰리션 이희경 팀장 등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도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와 불각목과 12인의 무술연기자와 카스턴트와 특효, 특분이 총동원되는 그야말로 육체적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비되고 요구되는 빡센 촬영이다.

이병헌은 깡판에선 줄곧 매달려 있다가 여기에선 온몸에 비와 흙세례를 받은 상태에서 무술연기자 12명과 일대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이병헌은 개인 건강 관리사를 둘 정도로 그야말로 죽도록 고생했다.

청평의 밤기온은 뼛속까지 시려왔고 그 상태에서 이병헌은 온몸에 수십톤의 비를 뒤집어쓰야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바디캠이라는 특수촬영장비를 몸에 부착하고 그 상태에서 와이어를 메고 공중비상을 해야 했고, 불각목을 휘둘러야 했고, 좀비처럼 지겹고 끔찍하게 달려드는 문석 수하들과 위험한 카스턴트도 해야 했다.

우리는 그들을 12인의 좀비 조폭이라고 불렀다.

이병헌의 고생이, 수십명의 스탭들의 생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다. 열흘 동안 이병헌 죽도록 고생시키기는 사고없이 만족스런 장면들을 만들어내며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누아르기 때문에 블랙톤과 암부촬영에 세밀한 신경을 써야 했고 며칠뒤 본 프린트는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때깔과 블랙, 암부 표현력을 담고 있었다. 그들의 노고와 열정과 혼이 장면 하나하나에 소중하게 담겨 있었다.

이병헌은 자기가 출연한 10편의 영화를 모두 합친 것보다 육체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였지만 촬영장에선 엄살 한번 부리지 않았다.

천하무적 이병헌.

밀매사무소 세트

2004. 11. 1 ∼ 7 “오달수, 정녕 정상이란 말인가…”

오달수와 김지운 감독

에릭

양수리 2 스튜디오.

그 밀매 사무소 세트는 마치 해적 소굴처럼 해달라는 주문에 맞춰 미술팀이 스카이라운지 다음으로 심혈을 기울인 공간이다.

강 사장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밀매 사무실로 총기를 구입하러 오는 선우와 밀매단이 만나는 장면이다.

김해곤, 오달수, 에릭, 러시아인 바딤이 이병헌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

쉬는 시간에 <댄서의 순정>을 찍고 있는 근영이에게 받은 포토메일을 저장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오달수가 슬쩍 근영이 사진을 쳐다보더니 묻는다.

“따님이십니까?”

오달수, 정녕 정상이란 말인가?

오랜만에 세트장 안이 붐볐다.

특히 여자 스탭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에릭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세트장에서도 온 몇몇의 여자 스탭들도 있었다.

특히 세트장 안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여성 스탭도 있었다.

우리 스탭인 것 같은데 누구지? 하고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밥차 아주머니였다.

청평 폐창고신에 이어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선우 오피스텔신

2004. 11. 24 “병헌씨 알몸, 생각보다 흉해∼”

선우의 오피스텔 공간은 극히 선우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조직의 넘버2이거나 스카이라운지 지배인의 모습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선우의 모습을 연출해내야 했다.

선우의 단출하고 심리적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회색공간에 심플한 집기들, 소파에서 잠드는 설정 등으로 연출했다.

선우가 보스의 애인인 희수에게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자기도 모르는 설레는 마음으로 샤워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는 장면을 찍는다.

이병헌이 욕실로 들어갈 때 윗도리뿐 아니라 팬티도 벗어버리게 했다.

말하자면 전라로 욕실에 들어가는데 다른 스탭들에게 말하지 않은 관계로 모니터를 지켜보던 이소영 조감독이 악! 소릴 내며 놀란다. 놀란 건지 좋아한 건지 구분이 안 되지만.

이병헌 엉덩이 깐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좁은 오피스텔 안이 여성 스탭들로 득실거렸다.

조감독도 모니터 앞으로 바싹 붙었다.

결국 현장편집에선 엉덩이 깐 테이크가 아닌 다른 테이크를 붙였다.

편집본을 본 이병헌이 물었다.

“전라로 들어간 테이크 안 썼네요.”

“응.”

“왜요?”

“흉해서.”

크랭크업

2004. 12. 5 ∼ 17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었으면 좋겠어요”

스카이라운지 ‘라 돌체 비타’ 대살육전.

끝이 보인다.

양수리 제1 스튜디오에 세워진 세트장은 그 화려함과 스케일의 위용으로 세트를 구경하러온 영화인들로 연일 붐볐다.

특히 영화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파나플렉스 호리는 실제와 같은 효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돌아서면 무슨 말을 할진 모르지만.

배우들이 한명씩 떠나간다. 생김새와는 전혀 딴판으로 곱고 섬세한 마음을 가진 문석 역의 김뢰하도 못내 아쉬웠던지 자신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이 끝났는데도 쉽게 세트장을 떠나질 못한다.

우리 현장에서 최고 인기맨이자 최고 어른인 김영철 선배도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떠난다. 그간 김영철 선배가 작품과 스탭들에 보인 애정과 배려는 단순히 영화에 출연해 연기를 하는 연기자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떠나셨다.

오랜만에 하는 영화라 불편한 것도 많았을 텐데 항상 웃음과 너그러움을 잃지 않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탭들의 일용할 양식을 손수 챙기셨다. 솔직히 그러기 쉽지 않다.

죄송하고 존경합니다.

떠나는 동료 선배 연기자를 보며 무지막지한 빡센 촬영으로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이병헌이 내 옆으로 와 앉는다.

“나도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었으면 좋겠어요. 감독님.”

“그렇군. 내일 봐.”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세트를 둘러보았다. 그 럭셔리했던 스카이라운지가 여기저기 핏물을 뒤집어쓴 채 깨진 유리들과 구멍 뚫린 기둥과 벽, 집기 파편과 탄피 등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크랭크업은 다가오고 내 마음도 현장처럼 어지럽기만 하다.

언젠가 류성희 미술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영화 만든다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왜 만들면 만들수록 쉬운지는 것 없이 더 어려워지는지 참담한 심정으로 토로한 적이 있었다.

“이 영화를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결과에 상관없이 진심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아… 나는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걸까? 결국 한해를 넘기고 마지막 촬영을 끝낸다.

선우와 희수의 희수집 앞 골목길 장면.

매서운 추위였는데 희수 역의 신민아는 반바지와 나시티로 견딘다.

그런데도 춥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해보겠다고 한다.

어느덧 성장한 연기자 신민아가 느껴진다.

밤촬영을 끝내고 도시의 여명장면을 찍기 위해 몇몇의 필요한 스탭만 남았다.

그간 말못할 고생을 했던 스탭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나는 헌팅을 하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왜 항상 이따위로 드라이한걸까? 재수없게시리…. 이병헌도 떠났다.

한때는 보조 출연자 빼고도 100명이 넘는 인원이 현장에 있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컷을 찍는데 촬영부와 몇명의 연출부, 제작부만 남았다.

빌딩 사이로 해가 나온다.

누군가 서광이 비춘다라며 좋은 징조네요 했다.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시며 이 영화로 데뷔해 매번 어려운 주문을 그대로 들어주며 좋은 때깔을 만들어낸 김지용 촬영감독, 신성열 조명감독과 어색한 포옹을 했다. 쑥스러워하긴.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병헌을 생각했다.

이병헌은 지금쯤 달콤한 잠에 들었을까?

후반작업

2004. 3. 1 ∼ 15 “우리 잘 가고 있는 거야?”

REC에서 최재근 편집기사와 한달 넘는 편집을 했다.

현장 편집을 합하면 아마 백수십번은 반복해서 봤을 거다.

그럴 때마다 장면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결국 몇개의 버전을 돌아 처음 버전으로 돌아왔다.

이 길을 알기 위해 우리는 무수히 여러 길을 돌아다녔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달파란과 장영규의 독특한 음악이 그림에 붙여지면서 기묘한 정서와 감흥을 가져온다.

믹싱이 끝나면 노심초사, 전전긍긍, 진퇴양난, 첩첩산중, 설상가상의 심정도 거짓말같이 사라지며 조금씩 냉담해지기 시작한다.

마치 애지중지 키워논 딸을 남의 집으로 시집 보내는 아버지가 딸을 쳐다보는 마지막 표정을 짐짓 냉담하게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거 비숫한 심정이 든다.

이유진 피디에게 우리 잘 가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감독님 영화, 다른 영화랑 다르잖아요. 알쏭달쏭한 화법으로 위안비스므리한 말을 한다. 오정완 대표한테 물었다. “잘 가고 있는 거야?”

생뚱맞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어디 간다고?”

얼마 전부터 류승완의 <주먹이 운다>와 4월1일 같이 붙는다는 불길한 소문이 들려왔다. 소문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아, 나는 참 재수도 없다. 류승완의 대표작과 붙다니.

류승완 감독한테 전화했다. “편집 잘 안 붙는다고 시간 좀 끌어.”

“편집 다 끝나는데요.” “믹싱 시간 좀 끌어.” “믹싱 할 게 없어요.”

“후시 안 해?” “우린 쓕! 쓕! 이런 소리밖에 후시할 게 없어요.”

오 마이 가뚜!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매일밤 류승완이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길을 걷고 있는데 류승완이 내 다리에 매달려 내 다리를 입으로 물고 있다.

내가 떼어내려고 버둥거리다가 우리 합동 배급하자는 말로 결국 떼어놓았다.

언제 있었는지 봉준호와 박찬욱이 걱정된다는 말을 했다.

“정말 걱정이에요. 미치겠어요.”

“난 <친절한 금자씨> 걱정이라고 말한 건데.”

이런 꿈을 꾸다니.

영화를 만들 때마다 매번 이렇게 황당한 악몽을 꾼다.

아, 나는 영화를 만들면서 언제쯤에야 달콤한 꿈을 꿀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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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운/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