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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데뷔, 방은진 [2]
오계옥 박은영 2005-03-29

배우의 길, 놓은 것이 아니다

<301·302>

<산부인과>

<수취인불명>

연출 단편 <파출부, 아니다>

방은진의 감독 데뷔 선언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럼, 이제 연기는 그만두게 되는 건가? “이 길을 택한 건 암암리에 내가 쓰고 주연하고 감독하는 영화를 하겠다는 막연한 꿈 때문이지만, 배우냐, 감독이냐 하는 구분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영화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영역을 확장해간다는 느낌으로 봐주면 좋겠다.” 아닌 게 아니라, 방은진을 배우로서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면, 그건 무척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박철수 감독은 방은진을 가리켜 “여건만 조성된다면, 홀리 헌터 이상의 훌륭한 배우가 될 재목”이라고 칭한다. 실제로 방은진은 <301·302>에서 고독과 소외 속에서 음식과 성에 대한 욕구가 비대해지는 301호 여자가 되었을 때도, <수취인불명>에서 혼혈 아들과 함께 반실성한 채로 살아가는 기지촌 여성의 비극을 체현했을 때도, 그 용감한 선택에 토를 달 수 없을 빼어난 해석을 보여주었더랬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의 커리어는 부침이 심했다.

데뷔 초부터 상복이 많은 그였지만, 언젠가부터 역할 운이 따르지 않더니, 급기야 “개점 휴업”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들어오는 상업영화들은 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날 필요로 하는 작은 영화의 작은 역할들을 했는데, 그게 배우 이미지에는 치명타였던 거다. 날 캐스팅하려다가 제작사 반대로 못했다는 젊은 감독들을 보면서, 내가 그랬다. 덜 상업적이라 미안하다고. 이제 내가 캐스팅하는 입장이 돼보니까, 뭔지 알 것 같다. 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래도 젊은 여배우만 선호하는 풍토에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 “남자들은 역할 연령 폭이 넓은 편이잖나. 서른 넘어도 이십대로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여자들은 실제 나이 이하로는 안 봐준다. 남자들에게 기득권이 있는 한, 여자를 볼 때 어머니나 부인 보듯 하는 시각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나 살아생전에 안 바뀔 거다.”

남의 인생 속에 자신을 던져두고 “어떤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던 재미와 충족감을 잊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배우로서 내 인생의 대표작”이 언제쯤 나올까, 하는 기대는 잠시 뒤로 접어두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감독으로 검증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첼로> 때부터 함께했던 스탭들은 방은진에게 “전에는 가끔 ‘배우’로 보이더니 지금은 전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곤 한다. 그건 방은진 자신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카메라 앞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방향을 못 잡았는데, 지금은 정확히 카메라 뒤에 가 있다. 배우들 보면서, 카메라 앞에 어떻게 저렇게 서 있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웃음)

나의 메시지는 관객이 찾아줄 것

그간 방은진이 보여준 행보 중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얼굴을 비치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회참여적인 모습이다. 그는 이라크 파병이 결정됐을 때 1인 시위를 벌였던 것을 비롯해서, 새만금 지키기, 영등위 개혁 촉구, 정신대 문제,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등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는 그런 활동을 신기해하는 언론을 향해 “배우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일갈하던 자타공인 ‘정의파’다. 이런 맥락에서, 그간 그가 만진 시나리오가 모두 여성이 이끌어가는 이야기였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오로라 공주>를 비롯해 감독으로서 만들고자 하는 영화도 ‘여성성’과 ‘사회성’의 자장 안에 있는 건 아닐는지, 뭔가 발언하고 주장하는 영화는 아닐는지, 궁금해질 법도 하다. “나, 페미니스트 아니다.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른다. 여자로 태어나 여배우로 살아온 것뿐이다. 솔직히 이 사회에서 여자들이 겪는 불평등이나 불합리함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동등하게 섞여서 일했기 때문이겠지. 다만 강대국 논리나 환경문제에 민감해서 참여하게 된 건데, 그것도 연출 준비하면서는,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하게 됐다.” 결손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끝까지 가져갈 주제”로 꼽기는 하지만, 특별히 의미나 메시지에 대한 욕심은 부리지 않을 참이다. 그런 건 관객이 찾아내고 만들어주게 마련이니까.

방은진 감독이 내민 출사표의 상당 분량은 그에게 힘을 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말로 채워졌다. “강우석 감독님, 명계남 대표님, 이창동 감독님, 이춘연 대표님, 문성근 선배, (설) 경구….” 시상식에서 한손에 트로피를 또 다른 손에 꽃다발을 안은 수상자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며 읊어주던 명단은, 며칠 뒤인 크랭크인 당일(3월14일)에 다시 버젼업되어 전해졌다. 동시 녹음(강봉성), 촬영(최영환), 편집(김현) 등 기다린 덕분에 함께하고 싶은 스탭들과 스케줄을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고 고마웠다는 이야기. 그는 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봄과 여름을 나고, 가을에 관객을 만날 때까지,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를 배우로 기억하고 아꼈던 팬들로서는, 그가 감독으로서 힘겹게 첫발을 떼었던 만큼 한발한발 즐거이 내딛고 돌아와주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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