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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보길도, 유물론, 영화 그리고 와인

늦여름, 가랑비가 옅은 안개와 뒤섞여 내릴 때 불영사 초입에 들어섰다. 불영계곡의 아늑하고 멋진 경치 사이로 난 길은 신비롭기까지 해서 ‘내가 무릉도원을 다 가보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가만히 모습을 드러낸 사찰은 고즈넉하고 정갈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속으로 터져나오던 감탄은 절정을 맞았다. 강원도 울진을 지나 그냥 내키는 대로 차를 몰고 달리다가 만난 곳이었다.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아 다음해 봄 지인들을 몰고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신비로움은 반복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5월의 빛나는 파리를 처음 보고 ‘세상에나, 도시가 이럴 수 있구나’ 싶었다가 11월의 파리를 가봤더니 음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홍콩이 그랬고, 런던도 그랬다. 처음 본 감동이 두 번째로 이어진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10년 전 첫 휴가 때 갔던 보길도를 도저히 다시 찾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꿈같았던 그때의 느낌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따지고 보면 그들은 늘 그대로다. 다만 내 눈과 마음이 달라져 있을 뿐이다.

그 교회와 거기서 만났던 예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변한 게 없다. 얼마 전 창립 50주년이라고 아주 오랜만에 찾아간 교회는 예전처럼 조촐했고, 사람들은 따뜻했다. 서슬퍼런 5공화국 시절, 중3 때 처음 찾아간 그 교회의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는 시국사범의 석방환영예배로 갑자기 바뀌어 들썩였다. 이미 박정희 때부터 교회는 시국사범들이 출소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었고, 민중신학의 진원지였다. 그랬으니 대학 시절 교회의 토요집회에서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그 결실로 불온책자를 내도 교인들 중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대학으로 줄기차게 이어진 교회 생활은 유신론과 유물론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지만 제도권 학교에서 맛볼 수 없는 자유와 기쁨의 공기를 늘 선사해주었다. 발걸음을 멈춘 지금도 교회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내 눈과 마음이 달라졌을 뿐이다.

유신론과 유물론을 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나 언제부턴가 감각을 숭상하는 유물론자가 된 것 같다. 영화도 그래서 뒤늦게 ‘선택’했다. 영화는 감각에 호소하는 미디어다. 감각으로 다중의 감각을 자극하고 기호와 취향의 폭을 넓혀주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다중의 감각에 변화를 일으켜야 가능할 것이다. 그것에 기여하고 싶은데 만드는 재주가 없으니 영화에 대해 끼적거리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래서인지 관습투성이에 판타지로 점철된 영화를 보면 보수의 이데올로그를 만난 것 같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수없이 좋은 영화를 봤으니 내 감각은 상승일로여야 하는데 딱히 그렇지가 않다. 자꾸 모든 게 심드렁해진다. 영화로 세상의 비밀을 봐버린 탓일까. 결혼도, 돈도, 출세도 그냥 심드렁하다. 속이 편해지니 좋긴 한데 정작 단순한 사물에 집착하게 된다. 예컨대, 술. 술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들이켜는 것에 비례해서 내 정신을 즐겁해줄 뿐이다. 예전에 나보다 서너배 술을 즐기는 선배가 좀 걱정스러워서 “선배, 이렇게 좋은 술 오래오래 먹어야지. 그러려면 아껴먹으면서 건강도 챙겨야지” 하고 충고하기까지 했다. 난 술을 오래 먹기 위해 정이 덜 가는 담배를 끊었다. 술에 대한 감각을 업그레이드하긴 했다. 와인은 신의 선물 같다. 담백한 듯 감미로우며 약효는 세다. 마침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닥쳐올 죽음이 안타깝다면 그건 와인을 더이상 먹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지만 또 언젠가 와인을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이 달라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