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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회화로 떠낸 내 마음의 동심원 <오이량전>
2005-04-07

4월12일까지/ 갤러리 아트사이드/ 02-725-1020

작가 오이량은 ‘웰빙 실리콘 회화’라는 새로운 개념의 판화를 선보이고 있다.

오이량의 판화에는 뭔가 특별한 끌림이 있다. 전통적인 판화기법이나 재료에 얽매이지 않는 그만의 독창적이고 끊임없는 실험정신, 그 결과 태어난 것이 ‘실리콘 회화’로 불리는 특이한 판화기법이다. 판화에 대한 일상적인 개념을 훌쩍 뛰어넘는 오이량만의 판화기법은 영원히 색상이 변하지 않고 부식도 되지 않는다는 실리콘(silicone)을 이용한다. 우선 3∼4㎜ 두께로 넓게 펼쳐내 응고시킨 실리콘을 얇은 손칼국수 면발처럼 마름질 재단한 띠를 화면에 수평으로 ‘일정한 룰’에 의해 붙여나간다. 이때 얻어낸 두터운 화면의 요철은 점점이 번져나가는 타원형의 동심원을 닮는데, 이는 꼭 ‘존재의 심연’에서 울려퍼지는 파동을 전하는 듯하다. 또한 최근 작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규소 성분으로 세상에서 가장 연성 재질의 돌인 실리콘과 천연 재료들이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파랑, 노랑, 초록 등 형형색색 화려한 색옷을 입은 그것은 녹차, 자개, 황토, 숯, 솔잎 등 천연 재료의 가루가 첨가되어 ‘천연 웰빙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1988년 도쿄 유학 시절부터 ‘존재’의 의미에 심취해 있던 오이량은 그러한 테마로, 90년대 후반까지, 검은 바탕 주조의 한 가지 색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표현을 한 모노크롬화 형식의 동판작업에 매진한다. 그러다가 98년부터는 얇은 알루미늄 종이를 이용한 은판화 작품과 캔버스 위에 실리콘으로 이뤄낸 회화작업들을 병행하기 시작한다. 은판화는 판화물감 대신 얇은 알루미늄이나 납종이를 사용하는데, 제판 작업을 마친 동판 위에 0.1∼0.2㎜ 두께의 종이를 얹고 접착제를 뿌린 뒤 다시 판화지를 올려 프레스로 찍어내는 방식이다.

작가 오이량의 실리콘 회화. 시작과 끝의 경계마저 모호한 동심원의 파장은 어떠한 실체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감을 좇는다. 이 지문 모양을 닮기도 한 공명(共鳴)의 떨림은 ‘중심점은 있되 끝점이 없거나 혹은 그마저 무시한 무한의 확장개념으로 동심원을 해체’해나가기도 한다. 이처럼 ‘찰나의 순간들을 가시화시키는 파문’은 작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호흡과도 같은 존재인 셈이다. 반면 점과 선을 이용해 표현한 은판화 작품은 주역 사상을 바탕으로 삼라만상의 생성원리를 해석하여 보는 이에게 복을 기원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존재감의 생명에너지가 농축된 도상들은 동양의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깊이를 더한다. 결국 그의 작품은 우리의 삶을 관장하는 자연을 담아낸 축소판이며, 또 다른 차원과 공존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글 김윤섭/ 월간 <아트 프라이스> 편집이사·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