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포커스
닫힌 교문을 연 대학 캠퍼스 - 고려대, 건국대, 중앙대, 서울의대
박혜명 김수경 2005-04-08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밭에~

대학 캠퍼스가 ‘닫힌 교문’을 연다. 서울에서는 한국외대가 처음으로 시작한 ‘담장개방’ 사업이 다른 학교와 공공기관에도 들불처럼 번지는 중이다. 이미 지방의 계명대와 청주대는 담장개방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도서관 개방, 문화강좌 등을 제공하면서 지역사회 속으로 몸소 걸어들어가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 중 지역주민들의 쉼터가 되거나 도심의 공원으로 자리잡은 학교들을 살펴보았다. 도심 한복판 대학로에 자리한 서울의대, 과감한 캠퍼스 리노베이션으로 화제가 된 고려대, 정문을 광장으로 변모시킨 중앙대,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호수공원을 가진 건국대가 이번 탐방의 대상이다. 네곳의 대학은 각각 독특한 공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에 따라 지역주민이나 일반인들이 각 캠퍼스를 접하는 방식과 분위기도 결정됐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지만 봄날을 기다리는 ‘오픈 캠퍼스’로 산책을 떠나보자.

고려대학교

햄버거 먹으며 잔디서 뒹굴까

정문에서부터 확 트인 광경. 2003년 봄, 공사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의 중앙광장은 학교의 첫인상부터 이전과 다르게 느끼도록 한다. 넓은 운동장이 움푹 팬 자리엔 1000대까지 수용 가능한 주차장과 중앙광장 도서관,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고, 지상은 정확히 구획된 잔디밭과 울타리 없는 분수대, 의자들로 채워졌다. 주변에서 이만한 휴식 공간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주민들은 신식 공원을 닮은 중앙광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건물 사이사이 난 길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느린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1905년 설립돼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 고려대는 모 대기업에서 지어준 100주년 기념관을 비롯해 지난 2∼3년간 정신없는 리노베이션과 신축 공사로 캠퍼스 곳곳을 뒤집고 갈아엎었다. 그 때문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모든 길은 아스팔트화됐고, 흙길을 밟지 못하는 대신 주민들은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전문점, 화장실 등 깔끔한 신식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초등학생 또래로 보이는 남매와 바람을 쐬러 나온 한 주민은 “일단 공간이 넓어서 아이들 놀기에 좋고, 먹을 데도 있어서 좋다”고 평가한다. 외아들과 아내와 함께 10년 만에 모교를 찾았다는 어떤 이는 “너무 많이 변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그저 웃는다. 세련되게 변해서 좋다고 해야 할지, 낯설어서 싫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그는 “여기는 운동장이 있었고, 저기는 길이 저렇지 않았는데…”라며 10년 전 캠퍼스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쓸 따름이다. 너른 전경이 다소 차갑게 느껴진다면,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본관 뒷길을 거닐어도 좋다. 한때 다람쥐들이 다녔다 해서 ’다람쥐길’로 이름붙은 이 길은 문과대학과 법대를 이어주는 샛길인데, 빽빽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몇발자국만 떼고 나면 그대로 멈춰서고 싶어지는 산책로다.

중앙운동장이 없어지면서 조그만 규모로 대체된 캠퍼스 남쪽 농구장을 지나다가 ‘교내 주류 판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게시판과 스티커를 든 예닐곱의 학생 무리를 만났다. 고려대는 지난해 가을께 ‘스포츠 레스토랑’이라는 모호한 명칭을 앞에 붙인 호프집 ‘위하고’의 오픈을 허용했다. 주말에는 영업하지 않으므로 주말이 아니면 바람 쐬러 나오지 못하는 주민들은 이용해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말하자면 고려대 안에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유일한 편의시설이다.

주차장 관리요원 장건열씨

“주차장 완비입니다”

고려대 캠퍼스를 주말에 지키는 사람들은, 당직을 맡은 총무과 직원과 SECOM의 경비요원, 그리고 주차요원들이다. 경비실은 여타 단과대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엔 굳게 잠겨 있다. 고려대는 교내 리노베이션과 함께 수위를 줄이고 각 건물의 관리인 수를 늘리면서 주말 경비는 SECOM에 맡기는 방향으로 경비 시스템을 조정했다. 2002년 10월부터 주차요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는 장건열(65)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학교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며 웃는다. 지금은 넓고 깨끗한 중앙광장을 찾는 일반인이 많지만, 공대 캠퍼스에 공사 중인 녹지운동장이 완성되면 학교 모양새가 또 달라질 것이라면서, 장건열씨는 “학교가 여기저기 공사를 했으니 보기 좋아진 건 당연하다. 하지만 예전 같은 자연미가 없어서 삼엄해진 느낌이다”라고 개인적인 인상을 살짝 보탰다.

건국대학교

같이 호수 한바퀴 돌까

“원래 저 자리까지 전부 호수였어.” 지금은 노천극장과 동아리회관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화양동 주민 한병현씨는 말했다. 건국대학교 근처에서만 30년을 산 토박이인 그는 호수 주변과 건물들의 발자취를 설명하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과거에는 현재 전철역이 있고 상가가 밀집한 쪽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1955년에 만들어진 일감호를 옆으로 두고 정문인 상허문 방향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 건국대 장안벌의 명물, 인공호수 일감호는 대체로 협소한 다른 인공호와는 달리 1만9천평이 넘는 탁 트인 전경을 자랑한다. 매년 5월에는 낚시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축제기간인 이 시기에는 호수 중앙에 자리한 작은 섬 와우도에 보트를 타고 건너가는 일도 가능하다.

아이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김동연씨는 일감호가 내려다보이는 우성아파트에 산 지 올해로 7년째라고. “날씨는 아직 쌀쌀하지만 아이가 오리에게 먹이주는 걸 좋아해서 올 봄에는 처음으로 나왔다”고 그는 말했다. 밤에 부인과 함께 야간산책을 즐기거나 휴일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일도 많다고. 그는 과거에는 울타리가 없어서 아이들이 호숫가로 내려가거나 물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학교쪽이 정비해준 부분을 고마워했다. 물도 많이 맑아진 편이라고 한다. 등나무 덩굴이 있는 쉼터를 기준으로 법대 앞에 자리한 오른쪽 호숫가 벤치에는 대체로 연인들이 많이 앉는 분위기다. 노천극장이 있는 왼쪽에는 홍예교라는 작은 다리와 물레방아가 자리한다. 아이들이 홍예교 위를 뛰어다니는 정경을 수시로 발견할 수 있다. 일감호를 한 바퀴 돌고 등산로를 오르는 것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이제는 정규화된 아침운동 코스다. 아쉬운 것은 등나무 덩굴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경관이 한창 공사 중인 주상복합 건물이 완공되면 다소 가려질 것이라는 점이다. 건국대 주변에서 약속이 있거나 근처에 살고 있다면 일감호에 들러 봄날의 노을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듯하다.

건국문 수위 정하복씨

“열린 학교, 사고는 내가 막는다”

“시간이나 계절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든다는 점이 건대 캠퍼스의 특징”이라는 정하복씨(33)는 경력 2년차, 건국문의 수위다. 건국문은 어린이회관 방향에 있고, 일감문과 더불어 학생들의 왕래가 가장 잦은 곳이다. “학교가 아무리 개방되어도 면학분위기가 우선”이라는 원칙론을 펼치는 그는 술먹은 사람은 무조건 쫓아낸다고. 대체로 동네 토박이나 매일 운동하는 이들은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경험론. 인터뷰도 경력 20년의 수위장님 허락을 얻고, 학교에 도움이 된다는 설득 뒤에 응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깊은 곳은 수심이 2m가 넘는 일감호 주변을 주의 깊게 지켜보며 갑작스런 사고에 항상 대비하고 있다. 학교가 넓어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순찰을 한다”는 수위장님처럼 그가 이 학교의 산 증인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로로 가는 특이한 통로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과 창경궁 사이에는 서울대병원이 있다. 그곳에 서울대학교 의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악캠퍼스에 다니는 타과생들도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연건캠퍼스에서 만난 본과 3학년 이오성씨는 설명했다. 하나 실제로는 의대생만 800여명에 치과대학, 간호대학, 보건대학원의 학생 수를 더하면 웬만한 종합대학 인원을 훌쩍 넘어서는 많은 학생이 대학로에 둥지를 틀고 있다.

서울대 의대는 다른 학교처럼 지역주민의 쉼터나 공원의 성격보다는 많은 유동인구를 가진 통로이며 대학로라는 넓은 광장의 일부처럼 작동한다. 그것은 “3차 진료기관인 탓에 중환자들이 많은 서울대병원과 함께 있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터. 본과 2학년인 이범석씨는 병원식당을 함께 쓰는 일상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하나 소개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가운 입은 사람은 의사일 텐데 가방 메고 다니는 저들은 누구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때는 “몇년 지나면 가방 멘 사람들이 가운 입는다”라고 답한다고.

마로니에 공원쪽에 가까운 의학도서관은 평일에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지만 토요일이면 한산하기 그지없다. 이유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집회와 시위로 토요일은 피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이라서 환자나 사람들과의 인접성을 장점으로 설명하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은 같은 이유로 괴리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본과 2학년 한재욱씨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떤 분위기로 지내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다른 학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업량이 많은 의과대학의 특수성 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장소만 공유하는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오래된 건물인 의과대학 본관, 시계탑, 의학박물관 때문에 사진촬영을 하거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서울의대는 병원이라는 특수환경을 감안할 때 운동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가벼운 산책로에 적합한 녹지와 보행로를 지니고 있다. 참고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아침, 의대 정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왼쪽이면 병원에 관계된 사람 혹은 그저 이곳을 통로로 이용하는 일반인이다.

방호장 이창원씨

“사람 상대하는 의학이니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죠”

“1981년 8월1일.” 연건캠퍼스에서 일하기 시작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창원(54) 방호장(건물 관리와 경비를 총괄하는 직책)은 시간대별로 서울대 의과대학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조목조목 시간별로 설명했다. “오전 6∼7시에는 간호사와 3교대를 하는 직원, 8시에는 교수진과 업무를 보는 직원, 그리고 오후 2시가 되면 다시 재교대 인원이 움직인다”며 학생들을 비롯한 유동인구가 이곳의 아침을 깨우는 시간은 새벽 4시면 시작이라고. 24년을 이 곳에 바친 그는 지하철 4호선이 개통되고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대학로를 차없는 거리로 조성했던 옛이야기와 배드민턴, 테니스를 즐기던 주민들에 관한 기억들을 술회했다. “당시만 해도 낭만적인 공간이었지만 현재 대학로는 유흥업소가 상대적으로 너무 많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의학이 사람을 상대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사람들 사이에 놓인 서울의대의 위치는 적절하다”는 그의 생각이 많은 의사들이 자라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중앙대학교

상징탑 앞에서 만나요

중앙대학교 흑석동 캠퍼스에는 정문이 없다. 정문이 없으므로 당연히 단짝을 이루는 담장도 없다. 2002년 10월 중앙대는 국내 대학 처음으로 정문과 260m에 이르는 정문 주변 담장을 허물었다. 광장으로 변한 정문은 무엇보다 미관상으로 매우 쾌적한 인상을 준다. 친구를 기다리던 법학과 2학년 조현욱씨는 “학교에 처음 놀러오는 친구들이나 신입생들은 제일 먼저 정문이 어디냐고 묻는다. (정문이 광장으로 변해서)약속을 할 때 사람을 기다리기도 알아보기도 매우 편하다”라고 바뀐 정문의 장점을 지적했다. 상징탑 아래 순환도로에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좁은 도로사정으로 마을버스와 셔틀버스가 뒤엉켰던 과거의 상황도 공간의 성격 변화로 약간은 해소된 면이 있다. “전처럼 불안하게 타고 내리지 않아도 된다”라고 지역주민들은 부연한다. 마을버스의 정류장에서도 담을 끼고 정문을 통과해야 했던 수고는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지난 1월 개원한 중앙대병원과 지속적으로 신축되는 주위 건물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학교 근처 도로의 전면적인 재정비는 불가피할 것 같다.

3년째 접어드는 정문과 담장 개방의 여파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흑석동이 주변 유동인구가 적은 편에 속하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터. “토박이들이 많아서 학교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상징탑 근처 잔디밭에서 쉬시던 윤용호 할아버지는 말했다. 청룡호가 바로 보이는 중문이나 후문의 담장을 아직 개방하지 않은 이유는 정문에 비해 유동인구가 적어 현실적인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아서다.

산의 높은 곳에 자리한 후문 주변 대학원과 공대쪽보다는 정문부터 청룡호에 이르는 나무가 우거진 길, 대학극장과 도서관 주변이 사람들에게 선호받는 산책코스이다. 축제 때면 주위의 거센 만류에도 불구하고 빠지는 사람이 꼭 생기는 청룡호의 조형물에 비둘기들이 앉아 쉬는 광경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정문이 없는 대학캠퍼스의 모양새가 궁금한 이라면 한강을 낀 흑석동으로 봄나들이를 권해본다.

안내데스크 김정민씨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정문이 없는 중앙대의 입구에 다른 학교에는 없는 공간이 있다. 수위실 옆에 나란히 자리한 안내데스크. 이곳은 각종 증명서나 공문서를 발급해주는 본관의 역할과 학내 위치, 행사 등을 알려주는 인포메이션센터를 겸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도 가능. 1년 정도 이곳에 근무했다는 김정민(26)씨는 “호응이 매우 좋다. 일단 접근이 용이하고 밤 10시까지 개방되어 있어서 학생 서비스 차원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즐거워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무실이 아닌 개방된 곳에서 근로학생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그들의 생활과 더 가까워져서 좋다”고. 안내데스크가 생긴 뒤로 예전처럼 신입생들이 강의실을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르거나, 나이 드신 분들이 헤매는 일이 줄어든 것도 큰 성과다. 그는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을 쐬러, 겨울에는 학생들이 추위를 피해 찾아드는 쉼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