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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어느 기자를 위한 변명

얼마 전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투기” 의혹에 관한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김원웅 의원의 경우야 그전에도 <시사저널>에서 비슷한 의혹을 제시한 바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최순영 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살기 위해 집을 지었다가 말기 암에 걸린 남편의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팔았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시세차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를 “투기”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이를 “투기”라 불렀다. 최순영 의원에 따르면 김덕한 기자 자신이 취재 당시에 “투기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덕한 기자가 최순영 의원 앞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덕한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는 내게 답장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정작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없고, 대신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해명 글이 달려 있었다.

김덕한 기자의 주장대로 최 의원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편법”을 썼을지는 모르겠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편법은 편법으로 다루어 그것의 윤리성만 따지면 될 일. 그것을 “투기”로 규정하는 것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김덕한 기자가 그토록 자신있게 강조하는 ‘팩트’의 문제는 분명히 아니다. 편법과 투기는 받아야 할 비난의 양과 질이 전혀 다르다. 내가 보기에 “투기”에 가까운 것은 외려 이런 것이다.

“당시 3년째 미분양으로 비어 있던 대전 관저동의 아파트 여섯채를 차례로 구입했다. 처음 구입한 21평형 아파트는 분양가 6400만원이었지만 3천만원은 무이자 융자였고, 1400만원은 국민주택기금 융자였다. 그래서 실제 투입한 금액은 2천만원. 그것조차 3500만원에 전세를 놓으니 곧바로 회수한 금액이 투자금액보다 많았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21평과 24평형 아파트를 각각 세채씩 총여섯채를 샀다.”

이런 방식으로 800만원을 14억원으로 불린 어느 부자의 “독특하고 분명한 철학”을 열렬히 상찬하는 이 기사의 작성자는 <주간조선>의 김덕한이라는 기자다. 최순영 의원의 “투기”를 고발한 그 김덕한 기자와 같은 분일까? 그럴 리 없을 게다. 집 짓는 땅 사느라 남의 집에 잠시 전입 신고한 것을 “투기”라 부르는 엄격한 윤리의식의 소유자가, 돈 벌려고 서민 아파트를, 그것도 여섯채나 갖고 장난치는 것을 “철학”이라 부를 리 있겠는가?

이번 사건이 데스크에서 사주한 일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김덕한 기자가 <조선일보>의 사주를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조선일보>의 공식 입장은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그 일이 터지기 며칠 전 사설에서 요즘 사람들이 “장관하기 겁난다”고 말한다며, 공직 임명시에 “부동산 투자가 보편적인 재산 증식수단으로 간주됐었다는 시대상황을 고려”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널널한 <조선일보>가 설마 김덕한 기자에게 그렇게 야박한 주문을 했겠는가?

왜 진보 성향의 의원만 물고늘어지느냐며, 김덕한 기자의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는 견해도 있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어업에 비교하자면 김덕한 기자의 “탐사보도”는 공직사회에 저인망을 친 것이다. 저인망을 치는 것은 그 지역에 큰 물고기가 없다는 얘기. 그러다보니 최순영 의원 같은 잔챙이만 걸려드는 것이다. 이렇게 김덕한 기자의 더러운 저의를 의심하는 쪽보다는 한나라당이 1급수가 됐다는 해석이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김덕한 기자는 자신이 “기득권 세력의 하수인”으로 매도당할 위험에 처했다고 호소한다. 어느 놈이 그를 “하수인”이라 부른단 말인가? 김덕한 기자를 “기득권 세력의 하수인”이라 부르는 놈들은, 술 한잔 따라주며 “내가 믿었던 김형욱이 나쁜 놈이로구나”라고 한마디 했다고 감히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살인교사범이라 부르는 놈들과 똑같은 놈들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