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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을 비판한다 [2] - 김홍준
사진 정진환 정리 이종도 2005-05-10

창조적 소수로 남을 수 있을까

다시, <씨네21>에 대해 말하고 싶은 열두 가지 것들

1. 정확히 9년 전, <씨네21> 창간 1주년을 맞아 나는 위 제목의 글을 ‘특별기고’했다(<씨네21> 100호 특별기고, 내가 <씨네21>에 대해 말하고 싶은 열두 가지 것들). 그리고 이제 10주년 기념호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축하나 덕담에 앞서서, 더이상 내가 9년 전처럼 열심히(!) <씨네21>을 읽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우편으로 배달되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정기구독을 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정기구독을 하기 때문에 그나마 <씨네21>을 매주 만나고 있는 형편이다.

2. 그렇다면 왜? 물론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종이에 씌어진 글씨보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글씨를 읽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살아간다. 어쩌면 <씨네21>의 독자들은 ‘종이’ 잡지를 읽는 거의 마지막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9년 전 나는 “전문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씨네21>이 과연 잡을 수 있을까, 라고 물었는데, 지금 내게는 그 질문이 너무도 여유롭게 느껴진다.

3. 그런데 <씨네21>이 스스로를 ‘정론지’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나? <씨네21>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왔나? 아니면 지난 10년간의 한국의 영화가, 영화계가, 영화인이, 그러한 ‘정론지’의 역할을 <씨네21>에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것일까? 그런데 ‘정론지’라는 개념은 아직도 유효한가?

4. 창간 이후 1년간의 <씨네21>에서 나는 “특집 10베스트”를 추리고 선정이유를 달았다. 그리고 그 선정이유는,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흔치 않은 원칙이며 바람이라 믿는다. “선정이유- 우리 사회의 영화 문화/현상을 시의적절하게 정리, 관객과 영화인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솔직한 문제제기, 할리우드영화와 주류영화의 그늘에 가린 ‘다른’ 영화들을 조명, 권력과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묶인 지금/여기의 영화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 엄숙주의를 벗어던지고 주변 장르 또는 금기시된 영역을 차분하게 소개, 한국 영화산업의 핵심 주제에 객관적인 자료와 편견없는 시각으로 접근….”

5. 9년 전, 내 글 속에 등장했던, 사람 이름을 제외한, 고유명사들(그리고 지금 그 이름들이 환기하는 시간의 흐름!). 종로서적, <누들 누드>, <부자의 그림일기>, <비트>, 그리고 <리스본 스토리>.

6. 9년 전, 내가 꼽은 “가장 속시원한 이야기를 한 필자”- 이정하, 그리고 이재현. 그들이 보여주었던 “충심에서 우러난 직언”과 “지식인의 정직한 자화상”의 추억. 혹시 그들이 절필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는지?

7. “정말 제대로 된 논쟁을 보고 싶다”고 9년 전에 나는 적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내가 게으른 탓에 놓쳤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여기의 영화를 두고 벌어지는 제대로 된 논쟁을 본 기억이 아직까지도 내게는 없다. 그러한 논쟁을 앞으로라도 보게 되리라는 기대 또한 희미해져간다. 이것이 부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겨난 나의 편견이기를!

8. <씨네21>의 얼굴, 표지에 대하여 몇 마디 한 것을 그대로 옮긴다.

“가장 인상적인 표지- 맨 가슴에 전태일을 담은 박광수 감독(30호).

가장 용감한 표지- 두개의 ‘수컷’ 기호를 엮어놓은 ‘국산 게이영화, 볼 준비가 돼 있습니까’(38호).

가장 진부한 표지- 필름 조각 속에 스타들의 얼굴을 늘어놓은 ‘95 세계영화결산’(34호).

가장 촌스러운(의도적이었나?) 표지- 서극, 관금붕, 왕가위 감독 얼굴들의 조악한 몽타주(20호).

9. 10년. 그냥 10년이 아닌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걸친 한국의 10년. 그중에서도 한국영화의 10년. 다른 분야의, 다른 나라의, 다른 시대의 50년일 수도 있고 100년일 수도 있을 만큼 변화의 깊이와 너비를 가늠할 길 없었던 10년. 앞으로의 10년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한다 할지라도, 그 변화들의 씨앗을 잉태하였다는 점에서 갈수록 그 의미가 진하게 매겨질 지난 10년. 그 10년을 스크린쿼터와 문화 다양성과 시장점유율과 국제영화제와 멀티플렉스와 한류를 이야기하며 <씨네21>은 여기까지 왔다. 대단한 10년, 대단한 <씨네21>!

10. 그래서, 다시 한번 <씨네21>에 부탁하고 싶은 몇 가지. 대중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되, 어쩌면 ‘창조적 소수’로 남아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음을 각오하길, 속도와 물량과 자극으로 경쟁하려는 유혹을 계속 뿌리치길, 시대착오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필요하다면 ‘정론지’의 역할을 스스로 맡아 나서길, 무엇보다도, <씨네22>로 제호를 바꿔야 할 날까지 살아남길.

11. 비슷한 글이지만, 심지어 많은 부분 그대로 옮기기까지 했지만, 이 글을 쓰는 일은 9년 전보다 몇배 더 힘들게 느껴진다. 축하나 회고가 아닌,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일까? 그런데 왜 ‘일개’ 독자인 내가 그런 고민을 해야 하지?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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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감독·영상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