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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그녀는 너무 예뻤다, <댄서의 순정>

투덜군, 예쁜데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댄서의 순정>에 실망하다

예전 <미술관 옆 동물원>이 개봉된 직후, 이정향 감독이 이런 고충을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심)은하씨가 너무 예뻐서 영화를 찍는 데 애먹었어요.” 이 발언은 영화 개봉 직후 판촉모드로 전환된 감독의 영업부장적 발언쯤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 말에 수긍했다. 사실 그렇다. 다 큰 처자가 혼자 사는 집에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남자가 불쑥 쳐들어와서 눌러앉아버렸는데, 그 남자가 이 처자를 전혀 여자로 생각지 않는다… 뭐 이런 설정에서 주연배우가 너무 예쁘면 대체 어쩌겠냔 말이지.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 관객에게는 본전회수 심리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정도는 알고도 속아주는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 모드’를 가동시킨 상태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덕분에, 딴 사람도 아닌 심은하를 ‘별로 예쁘지도 않고 털털하고 푼수기 범람하는’ 캐릭터로 끝까지 밀어붙인 <미술관…>쪽의 작전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집주인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 기본적인 설정이 <미술관…>과 거의 다르지 않은 <댄서의 순정> 역시 똑같은 딜레마를 안고 출발한다. 이 영화 또한 ‘주연배우가 너무 예뻐서 문제’인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총각 혼자 사는 집에 불쑥 들어와 살게 된 옌볜 처녀. 이 총각은 이 처녀를 여자로 생각하지도 않는데다가 오히려 구박까지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 두 남녀는 서로 파트너를 이루어 춤 연습까지 해야 한다. 게다가 이 춤은 상호간에 상당한 밀착을 요하는데다 “춤출 때만큼은 서로 사랑에 빠져야만 하는” 그런 카인드 오브 춤이다. 아아, 어렵다 어려워….

이 불편하고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설정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역시 짜고 치는 고스톱 모드의 힘이다. “너의 눈을 믿지 마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쟤는 안 예쁜 애야. 전혀 안 예뻐. 전혀 안….” 거의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가동되기 시작한 이러한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면 문근영을 좀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여줄 것인가에 거의 모든 영화적 역량을 집중시킨 듯한 중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그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 이 영화가 진정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모든 힘겨운 노력은, 영화 후반부에 가서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문근영이 연기한 ‘채린’이라는 캐릭터는 <미술관…>의 춘희와는 달리 영화 속에서도 원래 예쁜 캐릭터였던 것이다.

어차피 상업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리얼리티란 대단한 것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판타지에도 기본적인 룰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룰을 판타지라는 이름을 앞세워 무시하는 순간 영화는 더없이 지루한 것이 된다. 아무리 성실하고 귀엽고 똘똘하고 예쁜 주연배우가 고군분투를 하고 있더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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