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2] - <공중곡예사>의 박대민
사진 정진환정한석(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션 김재훈 2005-05-17

당선작 <공중곡예사>의 박대민

사소한 상상력에서 뽑은 재밌는 이야기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공중곡예사>의 박대민(30)씨가 <씨네21>로부터 기다리는 연락은 두 가지였다.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는 소식과 얼마 전 신청한 <씨네21> 데이터베이스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는 소식. 그래서 “<씨네21>인데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거 아르바이트 하라는 전화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순간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몇 곱절 더 좋은 낭보가 날아든 셈이다.

건축과를 4학년 2학기까지 다 다니고도, 이미 대학 3학년 때 결심했던 늦깎이 열정으로 동국대 영화과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 손을 잡고 영화관을 드나들고, 한때 유행했던 예술영화 불법 비디오테이프 보기도 불사했던 전형적인 시네필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 덥다>(2000), <이봐요, 무얼 찾고 있나요?>(2002) 등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후자는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선생님과 여고생 사이의 사랑을 소재로 한 하이틴 로맨스 종류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다가 지금의 <공중곡예사>로 선회했고, 아이템을 확정한 3주 뒤 충무로에서 이미 유사한 영화 <혈의 누>가 촬영을 시작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한번 들어선 길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오늘의 당선에 이르렀다. 추구하는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이고, 재미있는 영화는 “이야기가 좋은 영화”라고 믿는 사람이다. 초반까지 같이 작업한 죽마고우 ‘김봉서’씨에게는 당선 소감 중 실명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지킴으로써 고마움을 표했다.

-당선 소감은.

=4월 말에 발표라고 나와 있어서 둘쨋주부터 계속 <씨네21>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당선되는 상상도 해봤다가, 나락으로 다시 떨어졌다가를 반복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시나리오 쓴 기간은.

=빨리 쓰는 편은 아니다. 지난해 8월에 아이템을 잡은 뒤 8개월 정도 걸렸다. 자료조사 시놉시스 작업을 오래 했고,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한 건 올해 1월 말부터였다.

-<공중곡예사>를 구상한 계기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사셨던 동네에 일제시대 때 그런 일을 하셨던 분이 있었다… 는 말은… 뻥이고(웃음), 원래는 다른 아이템이 있었다. 하이틴 로맨스 종류였다. 그런데 중간 정도 써놓고 다시 보니 영화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이 없었다. 다른 아이템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고종은 전의에 의해서 독살되었다.” 고종을 치료하던 궁중의사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그런 제목의 기사였다. 그걸 보고, 흥미가 생기더라. 어떤 학자가 설로만 나돌던 이 이야기를 근거할 만한 문서를 찾았다는 그런 얘기였다. 그 문서의 출처를 보니까 덕혜 공주가 일본에서 들은 이야기를 글로 남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거 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다 생각했다. 역사적인 접근보다는 저걸 알아내는 수사 방법을 생각해봤고, 그 시절에 덕혜 공주가 탐정에게 의뢰해서 수사한다는 설정은 어떨까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너무 역사적이어서 다루기가 힘들 것 같아 구한말 탐정 이야기라는 설정만 남겨놓고 다른 이야기로 바꿨다.

-<혈의 누>와 비슷한 역사 추리물이다.

=다들 <혈의 누> 이야기를 한번씩 하더라. 이거 아이템 잡고 나서 한 3주 있다가 <혈의 누>라는 영화가 크랭크인 들어갔다는 <씨네21> 기사를 봤다. 그 영화는 도대체 뭘까 궁금했고, 먼저 하는 게 유리한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영화는 훨씬 전에 구상된 영화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리고 <혈의 누> 같은 영화가 잘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역사물이면서 추리물이라는 기획 포인트가 같다는 것인데, 그런게 한편만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끝까지 한번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장편 데뷔작을 만드는 거다. 졸업 뒤 35mm로 작업해서 거의 다 만들어놓고 완성 못한 영화가 있는데 그것도 완성해야 한다. 일단 6월쯤 촬영 들어갈 충무로 영화 한편의 현장편집을 할 것 같다.

시놉시스

1909년 제국 말기의 경성. 한때 조정에서 일하던 홍진호는 스스로를 ‘탐정’이라 칭하며 이러저러한 잡일을 수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편 제국의원 의생인 광수는 어느 날 숲속에서 버려진 시체를 주워 실습 삼아 해부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높은 관료의 아들이자 실종된 사체였음을 알게 되는 것은 나중이다. 광수는 누명을 쓸까 두려워 진호를 찾아 범인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이어 또다시 일어나는 연쇄살인. 조선 말의 탐정 진호는 어느 곡예단에 이 살인사건이 연루되었음을 직감하고 한성신보 기자로 위장하여 접근한다. 그곳에서 곡예단을 이끄는 단장 억관과 그의 쌍둥이 동생 응관을 주목하게 된다. 어느 날 어린 곡예사 기동이 공중그네 묘기를 하던 중 사고로 죽게 되고, 곡예단의 마술사 후지야마도 단장 억관과 다투다 죽게 된다. 결국, 후지야마와 억관의 싸움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가 일부 드러나고, 진호는 곡예단에 얽혀 있는 음모의 실체에 점점 더 접근한다.

(시나리오 발췌)

S #65. 숲속, 오후(비)

(중략)

아이들이 시체를 발견한 곳에 도착한 두 사람.

그러나 원래 시체가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다.

광수 여기 맞아요? 없는데?

진호, 주위를 둘러보는데

밤사이 비가 많이 내려서 그랬는지 시체는 저만큼 떠밀려가 덤불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덤불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진호. 광수도 뒤늦게 발견하고 진호를 뒤따라간다.

덤불 속에 반쯤은 파묻힌 시체.

진호, 시체의 발을 잡고 힘껏 잡아당긴다. 잘 빠지지 않는 시체.

진호 같이 좀 당깁시다.

광수가 합세해서 다리를 한쪽씩 잡고 힘껏 당기자 잘 빠져나오지 않던 시체가 어느 순간 ‘쑤욱’ 하고 덤불에서 빠져나온다. 그러면서 몸이 뒤집어져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눕는 시체. 시체의 얼굴이 드러나 는데 하루 만에 퉁퉁 붓고 파랗게 질린 것이 보기가 역겹다.

진호 어때요? 광수 똑같애요. 똑같애. 옷 벗기고 손발 묶은 방법도 같고. 전신을 흉기로 찔러서 죽인 것도 그렇고. 같은 놈이 한 짓입니다. (자상들을 보며) 이것들도 양날 칼로 찌른 것이네요.

얼굴을 알아볼 요량으로 군데군데 붙어 있는 풀잎이랑 진흙 따위를 떼어내고 손으로 얼굴을 쓱쓱 문대 는 진호. 그리고는 한 발짝쯤 떨어져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낯이 익다. 어디서 본 듯하다.

CUT-IN-공연장 귀빈석에 앉아 단장과 얘길 나누던 남자의 모습.

진호 이 사람, 저번에 공연장에서 본 사람입니다. 칼 던지기 묘기를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자랑 이야 길 하는 걸 봤습니다.

광수 칼 던지기요?

진호 그래요. 그리고… 그 자가 쓰는 칼, 날이 양쪽으로 나 있습디다.

광수 (흥분해서) 정말입니까! 그럼 그자가 범인일까요? 예? 그 자랑 얘길 했던 사람이 그 자가 쓰는 칼에 죽었지 않습니까?

시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시체를 살펴보는 진호. 흉기에 찔린 흔적이 몸 전체에 퍼져 있다. 그중 어 떤 것은 심하게 벌어져서 한두개는 그냥 들어가버린다.

옆으로 다가와 자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광수.

광수 (진호가 눈여겨보던, 틈이 많이 벌어진 상처를 가리키며)

큼직한 게 이게 결정적인 사인 같죠? 근데 아니거든요. 뭐, 이만큼이나 쑤시고 보면 피를 많이 쏟아서 언젠가 죽기야 하겠지만… 여긴 어쨌든 속 안이 비어서 별로 치명적이지가 않아요.

(옆구리 쪽의 자상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결정적인 거는 이쪽이죠. 여기 이 안쪽으로 간장이 있는데 이 방향에서 찔러 들어가면 그냥 즉삽니다. 이렇게 칼을 쓰는 게 능숙한 걸 보면 역시 그 칼 던지기 한다는 놈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놈 혹시 전문 살수 아닐까요?

진호 물론 그럴 수 있겠지만, 그냥 막 찌르다가 거길 찌른 것일 수도 있겠죠. 묘기를 부리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