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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3] - <원더풀 나이트>의 이경의
사진 정진환김수경 일러스트레이션 김재훈 2005-05-17

가작 <원더풀 나이트>의 이경의

평범한 결혼이 위대하다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한 로맨틱코미디 <원더풀 나이트>는 이중삼중의 복안으로 재수 끝에 탄생한 와신상담의 결실이다. 당선자 이경의(26)씨는 지난해 막동이 공모에서 소동극 <3일만 버티는 남자>를 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가 올해 준비한 카드는 더블 캐스팅. 당선된 <원더풀 라이프> 외에 <이노센스>라는 시나리오를 제출한 이경의 작가는 철학을 전공했고, 대전 영화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를 처음 배웠다. 집필 구력은 2년, 장편은 3∼4편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방송, 독립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아이템 작가 등 짧은 기간 동안 강하게 스스로를 트레이닝한 이력을 가졌다. “그중 1년은 아르바이트하느라 보냈다”라는 것이 그의 전언. 2003년 싸이더스HQ의 시놉시스 공모에서 <전지현 따라잡기>로 당선된 일도 그가 ‘될성부른 떡잎’임을 보여준다. 등록금이 연출과보다 적아서 시나리오과로 전과했던 그는 작가가 되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오빠집에 얹혀살며 “잘되면 차를 사 주겠다”라는 꼬드김 하나로 버틴 그는 당선을 알린 전화를 은행에서 연락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의외였다고. “후반부 대사를 수정하고 싶다”며 쑥스러워하는 그가 말하는 <원더풀 나이트>.

-<원더풀 나이트>의 집필동기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결혼을 앞둔 첫사랑이나 옛 애인들이 찾아오는 경우를 들었다. 1년 전에 쓰다가 안 풀려서 보류했는데, 공모를 앞두고 <이노센스>가 설정이 너무 약한 것 같아 <원더풀 나이트>를 다시 읽어봤다. 그리고 보름간 두개를 동시에 썼다.

-결혼식 부분이나 사진 동아리처럼 스쳐가는 장면의 디테일이 잘 묘사되었다.

=시골 결혼식장에서 촬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사진 동아리는 학교 다닐 때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대개 거지를 찍어오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내가 처음 거지 아저씨를 찍었을 때, 친구가 똑같은 사람을 찍어 온 일도 있었다.

-<전지현 따라잡기> 시놉시스가 당선된 뒤 완고를 써보라는 제의는 없었나.

=주위에 상금 얼마 받았느냐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다. 50만원인데 세금 공제하니 35만원. 공부하는 차원에서 내가 먼저 모니터링을 부탁했다. 쓰다보니 소설 같다는 평가가 많아 그만뒀다.

-한국영화 중 가장 맘에 드는 시나리오는.

=<살인의 추억>. <원더풀 나이트>의 장평, 자간격을 포함한 레이아웃은 <살인의 추억>과 똑같다. 읽기 편하지 않나? (웃음) <살인의 추억>은 미묘한 웃음의 포인트를 가졌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은 일상에서 웃음을 찾아내는 포인트가 너무도 절묘하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고 말했는데.

=패밀리 레스토랑은 다 섭렵했다. 던킨도너츠, 배스킨 라빈스, 피자헛도 마찬가지. 대전CGV에서 아르바이트할 때가 제일 좋았다. 사실 당선 통보를 받던 날도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

=오프닝만 써놓은 공포물이 한편 있고, <텐 미니츠>라는 멜로를 준비한다. 이효리의 <텐 미니츠>는 10분 만에 남자를 사로잡는 컨셉이지만 내 시나리오는 10분 만에 남자를 뺏기는 여자의 이야기다.

시놉시스

7년간의 연애를 거쳐 결혼을 눈앞에 둔 은행원 화진. 공무원인 도빈과의 결혼을 앞두고 화진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예비남편에게 무료함과 권태를 느낀다. 결혼 준비과정에서도 사사건건 도빈과 다투던 화진은 주위의 부추김과 과음이 맞물려 어느 날 밤 묘령의 남자와 원 나이트 스탠드를 치르고 만다. 기억나는 것은 그날의 분위기와 남자 이름 석자뿐. 하지만 화진에게는 어떤 기억보다 달콤했고, 그는 자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결혼을 다시 생각하게 할 만큼.

급기야 화진은 그 남자 ‘이원우’를 찾아나선다. 그날 호텔에 투숙한 이원우는 모두 세명. 처음 만난 이원우는 가출했던 고등학생. 두 번째 이원우는 한술 더 떠 여대생이다. 모든 환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찾아낸 이원우. 그것은 화진이 꿈에 그리던 미남 피아니스트인 백준서의 본명이다. 준서는 그녀에게 로맨틱하게 다가서고 화진은 결혼에 대한 결심이 흔들린다. 도빈은 야심차게 준서에게 여러 차례 결투를 청하지만 번번이 패배한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제주도로 떠나는 이원우와 화진. 그리고 결혼을 포기하고 그들을 쫓아가는 도빈. 삼각관계에 대한 마지막 결정이 내려진다.

(시나리오 발췌)

S#1 예식장

(초략)

케잌을 옮기던 남자, 사진사에게 판넬을 받아들고,

나팔을 불던 여직원과 함께 예식 홀 앞 적당한 자리에 판넬을 세운다.

사진사는 자연스럽게 온풍기 앞에 앉은 남자에게로 간다.

업주 (흘낏 사진 보며) 오늘 신부는 얼굴이 제법 반반하네.

사진사 당연하지. 저렇게 다듬어 주느라 사진관에 들인 장비 값이 얼만데.

업주 오늘은 또 누가 제 무덤 파려고 두 시간 삽질할래나.

사진사 무덤 속에서도 무덤인 줄 모르고 잘만 살면 되지, 뭐.

업주 그래, 그렇게 속고 속여서 하는 게 결혼이다.

(중략)

S#3 마사지실

미용실 안에 따로 마련된 마사지실.

마사지 침대에 걸터앉은 화진을 미진이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화진, 짝짝이 눈으로 애처롭게 미진을 쳐다본다.

화진 아직?

미진 (끄덕끄덕)

화진 (절망스러운) 오늘 그 사람… 안 올지도 몰라.

미진 무슨 소리야, 결혼식에 신랑이 안 오다니…… (화진 보니 울컥 화나는) 그러게, 누가 미친 짓 하래?!

기다렸다는 듯 화진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금세, 미안해지는 미진.

미진 왜 이래, 화장 다 지워지게.

화진 (벌컥) 그러니까, 빨리 찾아내!

절망스러운 두 여자.

S#8 휴게실

어느새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은하와 화진.

화진 그치? 그치?

은하 자기한테 말야.

화진 나?

은하 처방전 하나 써 줘?

화진 ?

은하 자.

화진 (김빠지는) 난 또…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은하 섹스 말야.

화진 뭐?

은하 근데, 결혼할 남자 말고 다른 남자랑.

화진 (누가 들을새라) 미쳤어?

은하 그래? 니 말대로라면 우리나라 예비신부의 태반이 제정신이 아니란 소린데.

화진 혹시…… 선배두?

은하 (으쓱) 별거 없어. 그리고 쿨하게 헤어지면 돼. 굳이 찾아나서기 귀찮으면 하다못해 첫사랑이라도 없어?

화진 그래도….

S#27 거리/택시 안

문이 닫히고 택시가 출발한다.

마치, 중대한 관문 하나를 넘긴 듯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화진.

주머니에서 생각난 듯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휴지 같기도 하고…

보면, ‘호텔 헤인즈’ 호텔 로고가 새겨진 냅킨이다.

그리고, 그 위로 쓰여진 이름 석자,

‘이원우’.

(V.O) 당신과 함께 있을 땐, 시간조차 영원해요.

(V.O) 이원우 고객님, 모닝콜입니다.

화진, 뭔가 결심을 굳힌 듯.

화진 (택시기사에게) 아저씨, 헤인즈 호텔로 가주세요.

S#45 레스토랑

(초략)

웨이터, 후식으로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가져온다.

화진 뭐야?

도빈 천천히 먹어.

화진, 심드렁하게 아이스크림 먹으며,

화진 혹시 이 안에 반지 넣은 거 아니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스푼 위에 반짝이는 링.

순식간에 푸식― 김새는 소리가 들린다.

곱게 폈던 린넨을 테이블에 던져두며 완전히 인상 구겨지는 도빈.

화진 (민망한) 미안.

도빈 됐어.

화진 그냥 한번 해본 말이야. 정말 그랬을 줄 몰랐지.

도빈 됐다, 관두자.

화진 그러게 왜 갑자기 안 하던 짓 하고 그래, 그것두 이렇게 뻔하게.

도빈 그래, 내가 그렇다! 내가 그렇지 뭐. 평범하고, 뻔하고!

음악 좋고, 분위기 좋던 레스토랑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리는 두 사람.

화진 알면, 그냥 주지 왜 이런 데 담궈서 사람 곤란하게 만들어! 끈적거리게!

도빈 모르고 먹다가 확 목구멍에 넘어가버리라고 그랬다, 왜!

또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