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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의 발견1: 데이비드 고든 그린 [2] - 인터뷰
사진 이혜정김도훈 2005-05-17

“내 영화에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는 없다”

영화평론가 홍성남(왼쪽)과 대담 중인 데이비드 고든 그린(오른쪽) 감독.

5월4일 아침 9시, 전주국제영화제 프레스센터에서 영화평론가 홍성남과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이 만났다. 떡진 머리에 반쯤 감은 눈으로 나타난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자유로운 몽상가이자 조숙한 영재소년처럼 사람과 시간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느리게,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매우 이른 아침의 ‘역류’(Undertow) 같은 대담을 여기에 싣는다.

홍성남 | <언더토우>는 테렌스 맬릭 감독이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데뷔작인 <조지 워싱턴>을 본 테렌스 맬릭이 <언더토우>의 각본을 가지고 찾아왔었다. 그의 영화들은 언제나 나에게 대안을 제시한 작품들이었고, 그를 만나는 순간 온몸이 덜덜 떨릴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그가 가져온 각본의 영화화를 수락했다.

홍성남 | <언더토우>는 장르를 나눌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보통의 스릴러하고 다른 점이라면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나는 장르영화의 본질과 전통적인 클리셰를 가져와서 예술적으로 재구성했다. 또한 내가 아끼는 70년대 싸구려 액션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의 친밀감’ 같은 것을 첨가하고 싶었다.

홍성남 | 당신 영화들에서 보이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독특하다. 마치 캐릭터들의 시간 자체를 굉장히 허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편집실에서 나는 시계를 벗어놓고, 대본을 집어던지고, 그저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 잡아서 느낌대로 편집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감정적인 진실을 찾길 원한다. 첫 영화 <조지 워싱턴>은 3시간 분량이었는데 느낌대로 편집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

홍성남 | 영화의 배경이 현대사회에서 무척 멀어진 듯한 모습의 남부 미국이다. 특히 퇴락한 공장 근처의 마을이라든지 공간 자체가 굉장히 퇴락한 듯한 느낌이 든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나의 영화는 절대로 리얼리즘 계열이 아니다. 나는 유년 시절로부터 기억에 남아 있는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내 유년 시절은 고물더미나 낡은 철로, 폐공장 등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내 영화 속에서는 휴대폰도 체인 레스토랑도 찾을 수 없다. 내 기억 속에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억된 유년을 그대로 화면에 옮기고 싶었다. 물론 그런 기억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한번 필터로 걸러진 상태다. 그래서 그냥 몽상적인 머릿속의 필터를 이용해서 공간을 창조해냈다.

홍성남 | 그래서인지 당신 영화 속 시간은 현대일 수도 있고 50년대일 수도 있다. 특정 시대를 읽어내기가 힘들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내 영화가 어떤 특정시대에 국한돼 보이도록 만들기는 싫었다. 휴대폰이나 카메라 처럼 특정 물건들이 영화 속에 들어가면 특정 시대의 작품으로 한정되게 된다. 하지만 주변환경에 있는것을 최소화하면, 9살짜리 미국 소년이 주인공이든 90살짜리 프랑스 할머니가 주인공이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수명이 긴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홍성남 | 그래도 미국 남부라는 장소는 어쨌든 한정된 장소 아닌가.

데이비드 고든 그린 | <언더토우>의 세트는 아르헨티나에서 본 것을 본떠 만들었고, 독일 드레스덴에 가서 본 사진을 바탕으로 캐릭터들의 옷을 만들었으며, 사람들은 북부 캐롤라이나도 조지아도 아닌 내가 지어낸 남부 억양으로 말을 한다.

홍성남 | 그렇다면 당신은 영화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중 중요한 것은 시각적인 분위기인데, 어떻게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가.

데이비드 고든 그린 | 스타벅스 커피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써! (웃음) 내 영화 속에 프랜차이즈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맥도널드, 월마트 등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혐오하며 그것들이 캐릭터들로부터 영혼을 앗아간다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의 똑같은 획일성이 지겹다.

홍성남 | <조지 워싱턴> <언더토우>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두 번째 영화인 <올 더 리얼 걸스>는 아이들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매우 재미있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아이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나는 스스로를 어른스러운 책임감이나 권위가 전혀 없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인 캐릭터를 만들 때마다 곤혹스럽다. 필요해서 어른 캐릭터를 넣긴 하지만, 부정적인 요소로 이용할 뿐이다. 성인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는 연기도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한다. (웃음)

홍성남 | 그것과 연관이 있는 이야기인데, <조지 워싱턴>에서 “They used to try to find clues to all the mysteries and mistakes God had made”(그 아이들은 신이 만든 모든 미스터리와 실수들을 증명하려 하곤 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영화를 만들면서 탐구하고 싶은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가.

데이비드 고든 그린 | 어린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을 정당화해줄 사람이나 그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내 스스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종교, 철학, 권위 같은 고삐들을 통해 생의 정의를 찾으려 한다. 왜 사람들은 그런 권위에 기대는 것일까. 그걸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이 성인들조차 생각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을 통해 순수한 관점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홍성남 | <언더토우>를 보면 신화적이거나 동화적인 요소들이 떠오르는데. 의도적인 삽입인가.

데이비드 고든 그린 | 의도적이었다. <언더토우>는 실제 벌어졌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실제 이야기를 언론에 전했던 아이는 당시 11살이었다. 그래서 신문에 실렸던 그 사건은 수많은 거짓과 과장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11살짜리 소년이 그의 드라마틱한 가정환경에 대해 거짓말한 것이 매우 재미있다고 여겼다. 그는 거짓말을 방어책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그가 느꼈던 공포를 용감함으로 보이도록, 두려움을 마치 모험처럼 보이도록 꾸며냈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작품들과 조지 스티븐슨의 <보물섬>처럼, 그는 동화책 속에서 읽은 것들을 현실과 버무려서 이야기했을 것이고, 나는 그 사실에 또다시 허구를 가미했다. 사실과 허구가 서로 보완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홍성남 | 비주얼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데, 세편 모두 촬영을 같은 사람과 했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내 스탭들은 모두 영화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다. 그래서 각자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둔다. 절대로 모니터를 본다든지 음향을 체크한다든지 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챙기는 것은 촬영감독의 몫이고, 편집은 편집자가 할 일이고, 사운드는 음향감독이 더 잘한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을 총괄하고, 배우들에게 지시를 내릴 뿐이다. 사람을 제대로 이용하면 언제나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온다.

홍성남 | <언더토우>는 전문배우들이 섞여 있고, <조지 워싱턴>은 모두 비전문 배우들을 썼다. 연출방식이 전문배우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가.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매우 다르다. 실재 모습 그대로를 쓰고 싶어 캐스팅한 비전문 배우들에게는 기술적인 테크닉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배우들과 일할 경우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거라서 기술적인 지시를 많이 내린다. 하지만 전문 배우들과 일할 때라도 그들을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싶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그저 배우처럼 연기한다. 그런 게 싫다. 나는 오히려 더듬고 헤매는 사람들이 좋다. 그래서 “배우처럼 연기하지 마”라고 지시하곤 한다.

홍성남 | 스타 캐스팅은 할 생각이 없나.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배우에 따라 다르다. 톰 크루즈는 좋고, 멜 깁슨은 안 된다. 그는 정신나간 작자다.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는 괜찮다. 유명한 스타들 중에서도 좋은 배우들은 분명히 있다.

홍성남 | 주류영화를 감독할 생각도 있다는 말인가.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당연하다. 지금 막 차기작 구상을 끝냈다. 숀 윌리엄 스콧(<아메리칸 파이>)이 주인공인 주류 10대 코미디를 만들 예정이다. 방귀나 배설을 이용한 저질 유머가 많고, 팔아먹기 좋은 코미디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 스튜디오를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 이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사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할 수 있다. 계속해서 개인적인 영화들만 만든다면 나는 앞으로 영화를 만들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홍성남 | 앞으로도 많은 영화들을 만들게 될 텐데 미래를 위한 어떤 롤모델을 가지고 있는가.

데이비드 고든 그린 | 단 한명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과 미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들은 영화만이 대단한 것이라 여긴다. 난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일들을 다 하면서 예술의 경계선을 흐리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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