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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 리포트 [2] - 서울 시내 달콤한 가게 탐방
사진 정진환 오계옥남은주 2005-05-20

‘절대 단맛’을 찾아서

“우리, 언젠가는 초콜릿 가게에서 만나자”

[달콤한 가게1] 압구정 초콜릿 박물관

이곳을 굳이 압구정 초콜릿 박물관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가게가 제주도의 초콜릿 박물관과 함께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초콜릿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우리도 나이들면 이런 곳을 만들자던 꿈을 쌓아둔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아가방 창업자이며 골드뱅크 부사장이었던 주진윤씨, 부인은 지금 시티뱅크에서 일하는 한예석씨다. 자식들이 물려받아 대를 잇고, 그 초콜릿 가게로 가끔 가족들이 모이는 풍경이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 꿈 덕분에 2000년, 제주도와 압구정동에 ‘초콜릿 박물관’을 열었다. 동양 최초의 초콜릿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초콜릿을 연구하는 팀도 두었다. 녹차와 백년초, 솔잎, 호두처럼 진귀하고 특별한 재료들을 넣고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일도 해왔다. 키위, 산딸기, 멜론, 석류, 복숭아, 딸기들의 상큼한 과일맛이나 호두, 땅콩, 아몬드처럼 오돌토돌 씹히는 재료들이 어우러져 한개마다 전부 다른 풍미를 자랑하는 것이 이 가게의 특징이다. 신선한 카카오 향이 혀끝의 달콤한 맛을 부추긴다.

벌써 5년. 그동안 많은 비싼 수입 초콜릿 회사들이 들어왔고 수제 초콜릿 가게도 생겼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내며 작은 초콜릿 한개마다 전부 다른 맛을 만들어내는 이 가게만 고집하는 단골이 많다. 방부제는 물론이고 설탕도 절대 넣지 않는다. 아직도 나이들면 지금은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돌아와 모이는 곳이 되리라는 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의: 서울 02-515-2172, 제주도 064-792-3121

“나는 지금 천국에 있다”

[달콤한 가게2] 마농

이화여대 앞의 이 작은 초콜릿 가게에 들어서면 초콜릿 향에 잠시 몽롱해진다. 초콜릿 성분과 마약 성분이 같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보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이리 행복해지니. 바비인형의 소품 같은 작은 진열장에는 저마다 모양과 색이 다른 초콜릿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초콜릿 세계의 용어로 말하면 프랄린, 봉봉, 트뤼플, 쇼콜라가 가득한 왕국이었다. 이 가게의 초콜릿은 모두 벨기에의 초콜릿 장인이 매달 꼼꼼히 포장해서 보내주는 것이라고 한다. 벨기에 사람들은 한 사람이 1년에 10kg 정도의 초콜릿을 먹으며 나라 전체로는 1년에 14만t 정도의 초콜릿을 생산하는 자칭타칭 ‘초콜릿 왕국’이다. 값싼 식물성 지방을 단호히 거부하고 카카오 버터만 쓰고,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마다카스카르 등지에서 들여온 풍부한 카카오 덩어리로 맛을 지키는 벨기에의 초콜릿 장인들은 오만하기까지 하다. 그 까다로운 ‘작품’을 파는 마농의 추천작은 쇼콜라. 10가지도 넘는 향이 빚어내는 복잡다단한 향을 부드럽고 가벼운 질감의 초콜릿 덩어리가 달래고 조율한다. 한입 깨물었을 때 만국 공용의 형용사는 해리스가 이미 말했다. “나는 지금 천국에 있다!”

문의: 02-365-5413

“초콜릿 과자와 크림이 만났을 때”

[달콤한 가게3] 루시 파이

오 제발, 초코파이 생각은 잠깐 잊어라. 서양인들은 특히 미국인들은 집에서 만든 파이를 이야기할 때 거의 경건해지기까지 하는데 그게 설마 ‘정’(情) 때문일 리는 없지 않은가. 그들의 어린 시절에는 파이의 추억이 따라다닌다. 일요일이면 빨강머리 앤의 화덕에는 파이가 얹혀지며, 작은 아씨들의 모임은 늘 과일 파이로부터 시작하고, 추수감사절은 호박 파이의 날이다. 미식가들의 정찬에는 빠질지언정 가족들이 모인 따뜻한 식탁에는 빠지지 않는다. 맛있는 재료들을 모아 풍성하게 구워내는 것, 이것이 파이다.

도쿄 제과학교와 파리의 코르동 블루를 거친 루시 파이의 주인은 ‘진짜 파이’를 구워낸다.

이 가게를 유명하게 만든 초콜릿 푸딩 파이는 너무나 달콤하고 맛있어서 비명이 나온다고 ‘스크림 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오레오 쿠키를 잘게 부수어 밑에 깔고 그 위에 프랑스산 다크 초콜릿을 얹고 마지막으로 설탕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생크림을 얹는다. 세 가지 다른 질감과 맛이 부드럽게 조화된다. 딸기 타르트는 또 어떤가. 가벼운 스펀지 시트에 딸기를 곱게 갈아 커스터드 크림, 생크림을 섞는다. 맨 위에는 다시 딸기를 반으로 갈라 얹는다. 생딸기보다 달콤하고 생크림보다도 부드러운 감칠맛이 확 퍼진다.

파이의 가격은 한 조각에 4천∼5천원 선으로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애플파이 하나에 홍옥이 8∼9개는 넉넉히 들어간다는 주인의 성의를 생각하면 다시 흐뭇해진다.

문의: 02-790-7779

“꿈의 과자 공장으로 오세요”

[달콤한 가게4] 크리스피 크림 도넛

왜 나는 제과점 딸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리스피 크림 도넛 가게가 빚어내는 풍경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커다란 양철통에서 이스트로 부풀린 반죽이 1초에 3개씩 도넛 모양으로 나오더니 기름에 퐁당퐁당 빠진다. 그리고 ‘글레이즈 폭포’라는 별명의 종점에 와서 곱게 간 설탕 물을 뒤집어쓰면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이 되어 따끈따끈한 채로 바로 시식대로 나온다.

과자공장 같은 신기한 풍경도 그렇지만, 처음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는 자못 문화적 충격을 느낀다. 이렇게 달 수가! 그런데 뒷맛이 의외로 가볍다.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에 초콜릿이나 사탕, 과일 시럽을 입힌 다른 도넛을 한개 더 먹을까 하고 진열장을 기웃거리는 자신을 보며 두 번째 충격을 받는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시작한 이 도넛은 미국 남부의 걸쭉하고 진한 단맛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질감은 공기처럼 가볍다. 처음에는 미국 유학파의, 지금은 20대 여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도넛 가게다. ‘제대로 달기 때문’이란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 개장 전 무료로 나눠준 도넛이 6만∼7만개. 지금도 도넛이 막 구워졌을 때는 매장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공짜로 나눠주기 때문에 크리스피 도넛을 먹어본 사람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이 ‘강한 단맛’에 중독된 사람들 2천명이 매일 매장을 찾으며 1만개 이상이 팔린다.

홈페이지: http://www.krispykreme.co.kr/

“<로마의 휴일>의 아이스크림 맛을 아시나요”

[달콤한 가게5] 구스띠모

구스띠모는 이탈리아에서 요리학교를 다니던 박소진씨와 언니 박만영씨, 그리고 이동진씨가 의기투합에서 차린 아이스크림 가게다.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처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동업자가 되었으니 역시 아이스크림은 우정의 상징이 맞다. 박소진씨와 이동진씨는 이미 로마에도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린 전력이 있는데,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은 아주 진하고 달아서 우리가 아는 아이스크림 맛과는 좀 다르다. 구스띠모 아이스크림 ‘초코라또’도 진하고 단 아이스크림이다. 카카오를 아끼지 않고 넣어 처음 입에 넣으면 씁쓸한 카카오 향에 놀란다. 그런데 입 안에 들러붙지 않고 개운한 끝맛을 남긴다. ‘푸르띠디 보스꼬’라고 이름 붙인, 야생과일이 듬뿍 든 아이스크림도 진하고 달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럽다. 설탕도 넣지 않았다는데 과일즙의 단맛만으로도 몸 전체가 솜사탕이 될 듯 달다. 입 안에 씹히는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크랜베리 알갱이들의 새콤달콤한 맛이 톡톡 튄다. 여기에 모든 아이스크림에는 생크림을 공짜로 얹어준다. 강렬한 재료의 맛을 부드럽고 달콤하게 녹여가며 먹으라는 배려다.

구스띠모에서 아이스크림을 제대로 맛보는 법은 이렇단다.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받아놓고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 떠서 커피 속에 담근다. 세 가지 맛이 서로를 감싸며 부르는 절창을 듣게 된다. 어디선가 본 풍경이라고? 영화 <블루>의 여주인공도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커피에 담가서 떠먹으며 상실을 견뎌냈다지.

문의: 02-566-1854

“달콤한 맛의 마무리는 와인으로”

[달콤한 가게6] 구떼 두 미엘

프랑스 식당 ‘구떼 두 미엘’은 벌집 모양의 인테리어로 눈길을 끄는 곳이다. 오후의 햇살이 꿀처럼 반짝여 벌집 모양의 창문을 지나갈 때면 사과와 벌꿀 향기 속에 저녁 정찬이 시작된다. ‘꿀맛’이라는 뜻의 이 식당을 연 것이 2004년 12월이니 아직 6개월도 안 된 셈인데 가볍고 달콤한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요리에 특별히 설탕을 넣는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조명과 달콤한 와인향, 신선한 재료들이 좋은 음식을 달게 먹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오리 고기 요리인 덕킹 팜 샐러드는 사과와 꿀을 갈아서 오리고기에 곁들여 새콤달콤한 맛을 더한다. 안심을 살짝 구워낸 페퍼 필레 미뇽은 통후추의 알싸한 맛이 달콤한 육즙과 어우러진다. 주방의 비밀은 생고기를 저온에서 잘 숙성해야 달콤하고 부드러운 육즙이 배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달콤한 먹을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로 달콤한 와인이 있다. 마침 5월에는 구떼 두 미엘에서 레드 스파클링 와인인 ‘로제타’를 추천 와인으로 내놓았다. 잘 빚은 달콤한 와인은 입맛을 되돌린다. 독일, 소테른, 그라브 지역에서는 식사 전에 마시는 달콤한 와인을 별미로 꼽는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눅진하고 무겁고 달착지근한 와인이 아니라 입 안에 번지는 듯한 부드러운 달콤한 맛이다. 여기에 아주 짙게 담은 잼을 조금 찍어 먹으면, 봄을 타느라 자취를 감췄던 식욕이 갑자기 솟아난다. 할 일에 짓눌렸던 어깨가 가벼워지고 즐길 일만 남은 듯 인생이 즐거워진다. 달콤한 음식의 힘이다.

문의: 02-3445-3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