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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vs <가발> [3] - 다섯 가지 키워드
김수경 김도훈 2005-05-24

소재

<분홍신>_ 29켤레의 분홍신

영화 <분홍신>은 안데르센의 동화인 <분홍신>(The Red Shoes)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등장하는 신발은 말 그대로 ‘분홍색’이다. 장박하 미술감독은 개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디자인을 생각했으나 김용균 감독은 “신발이 지나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싫다”는 입장이었다. 이야기 자체의 힘이 분홍신보다 더 돋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의 내용상 지나치게 고전적이어서도, 현대적이어서도 곤란했다. 그래서 시대를 타지 않는 형광빛이 도는 비단천으로 제작했다. 보여지지 않는 신비감을 주려했기에 반사율이 지나치게 많은 소재는 피했다”는 게 장박하 미술감독의 이야기. 구두는 총 29켤레가 제작되었다.

<가발>_ 1천만원짜리 가발

<가발>의 촬영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광경은 분장팀이 채민서를 따르며 끊임없이 빗질을 하는 일. 극중에서도 지현이 수현의 머리를 빗겨주는 장면은 자연스레 등장한다. 제작비만 1천만원에 달하는 가발. 현장에서 준비되는 가발은 보통 두개. 원 감독이 전체적인 화면톤이나 색감을 가발에 맞추겠다던 부분이 스크린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티저포스터

<분홍신>_ 제 다리를 잘라주세요

2종으로 만들어진 <분홍신>의 티저포스터는 피묻은 분홍신을 가슴에 안은 소녀의 상반신과 분홍신을 신은 소녀의 다리만을 보여준다. “원혼의 이미지를 살리지만 모델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도록, 분홍신의 강렬한 색감이 살아날 수 있는 포스터”를 원했던 청년필름이 선택한 사람은 <얼굴없는 미녀>의 포스터를 제작했던 김용호 사진작가. 티저포스터를 위한 사진촬영은 지난해 겨울 영종도 덤불 숲에서 진행되었다.

<가발>_ 앙상한 등뼈, 풍성한 가발

<가발>의 티저포스터는 삭발과 노출 때문에 공개 즉시 화제가 되었다. 일부 호사가들의 기대와 달리 앙상하게 등뼈를 드러낸 몸은 신체 전문인 러시아 모델의 몸을 삭발한 채민서의 얼굴과 합성한 사진이다. 앤틱한 전체적인 분위기에 유화를 연상시키는 푸른 톤의 타일, 하얀 욕조에는 가발이 걸려 있다. 가발은 전체적인 레이아웃으로 삽입된 머리카락 모양의 문양과 액자구성을 이룬다. 제작사와 감독이 승강이를 벌인 두 가지 제목, <가발>과 <올>이 나란히 새겨졌다.

여배우

<분홍신>_ 김혜수, 박연아

내적인 몰입은 물론, 적합한 외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는 김혜수는 “선재는 연기조차 장르에 묻힐 만한 캐릭터라 연기자로서 나 스스로에게 옳은 선택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해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결심했다”고 더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료한 답변을 들려준다. 태수 역의 박연아는 능숙한 전문 아역배우들과는 달리 즉각적이고 순도 높은 연기를 해내면서 제작진의 탄성을 자아내는 아이다. 김용균 감독은 “배우의 기질이 본능적인 프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야단칠 때도 마음이 편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발>_ 채민서, 유선

수현 역의 채민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연기할 때 처음에는 그저 힘이 빠진 상태를 표현하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어진 상황에 감정을 맞춰서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고 느꼈다”라고 전했다. 한층 차분해졌다는 게 주위의 평가. <4인용 식탁>을 경험한 지현 역의 유선은 “전작에서는 관찰자였다면 이번에는 관찰자인 동시에 체험자가 된다”고 캐릭터를 설명했다. 말을 못하는 설정에 대해 그는 “내적인 독백을 시나리오의 여백에 모두 기록했다. 슛 들어가기 전에도 감정 연결을 위해 사람들에게 가급적이면 말을 걸지 않는 과정을 계속했다. 지금은 말을 하지 않고 연기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부연한다.

미술

<분홍신>_ 관습은 벗고, 자존심은 남아 있는 공간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미술적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이전의 관습들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는 임형택, 장박하 미술감독은 선재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세트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둡고 칙칙하고 낡았지만 ‘자존심은 남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오피스텔은 추락한 생활환경과 선재의 과시적인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아늑하거나 따뜻한 느낌은 없고, 온통 습기와 곰팡이로 얼룩진 장소지만 선재의 자긍심을 반영하는 구두 진열장만은 화려하다. 색깔과 소재와 디자인이 각양각색인 구두들이 전구까지 달린 유리진열장 안에서 도도하게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가발>_ 인공성을 최대한 줄여라

“세트라는 건 어차피 인공인데, 인공적인 면을 배제하고 가려니 힘들다”는 장춘섭 미술감독.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피하기 위해 공포영화의 컨벤션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가발>의 프로덕션디자인. 남서울대 유리공예과에서 제작한 공예품들과 거실 중앙에 배치된 유리 부조가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올드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장르적인 면보다 정서적인 접근이 많아서”라고. 조명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촬영분량이 많아 암부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다. 폐쇄성을 드러내는 공간들을 그때그때 개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미술팀의 몫이다.

음악과 음향효과

<분홍신>_ 클리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용균 감독은 “물론 소리로 놀라게 하는 것도 기본이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깜짝 놀라는 공포, 잔혹함 때문에 고개를 돌리게 되는 공포,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공포. 공포는 여러 종류가 있지 않나. 클리셰들을 이용하는 데 두려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김용균 감독의 말이다. 음악은 <장화, 홍련>의 이병우 음악감독이 맡았다. 아직 오리지널 스코어가 만들어진 상태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장면에서는 어딘가 어긋난 듯 기묘한 선율을, 섬뜩한 시각적 공포를 자극하는 장면에서는 서정적인 음악을 쓸 예정. 비주얼과 사운드의 변증법적 만남인 셈이다.

<가발>_ 미니멀한 음향

원 감독은 “음악을 쓰더라도 가능한 한 단순한 선율이나 소리의 동원을 통해 미니멀리즘 태도를 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흔히 등장하는 깜짝 사운드는 <가발>에는 가급적 배제된다. 극중에 죽은 부모의 납골당에 수현이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목소리로만 구성된 음악을 쓰겠다는 계획이나 오프닝에 쓰일 북소리로만 된 테마음악은 <가발>이 들려줄 소리들이 절제와 담백한 성격을 띨 것이라 짐작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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