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인 7인 특강 [3] - 문소리·박찬욱 ②
사진 정진환 정리 박은영 2005-05-31

5월16일 두번째 특강,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캐릭터’라는 주제로 배우 문소리를 만나다

“영화는 내 종교이자 남자친구, 무서운 선생님”

“오늘 강연 제목이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캐릭터’인 걸 보면, 저를 다양한 장르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로 평가하신 것 같아요. 소재나 형식에 반복적인 요소가 있고, 그런 것들로 분류될 수 있는 게 장르일 텐데, 제가 출연한 영화 대부분이 장르에 맞추기 어려운 영화들이었어요. 왜 장르와 손 잡고 일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제가 인형 같은 외모가 아니라 사람 같은 외모를 가진 관계로 장르영화와 친해질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장르영화 배우들은 데뷔부터 정해진 타입이 있잖아요. 김지미씨는 모던 여성, 최은희씨는 고전 여성, 장미희씨는 지적인 여성, 그리고 문근영양은 국민 동생, 이런 식으로요. 저는 <오아시스>를 통해서 모든 이미지를 깨버렸다고 생각해요. 6월에 들어가는 것도 비장르영화인데, 그런 인연은 제 관심이 거기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도쿄 필름엑스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아시아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자극받았고 많이 배웠어요. 돌아와서 시나리오를 보니까 천편일률적인 거예요. 아시아로 뻗어나가는 한국영화가 왜 산업 안에서 다 비슷해져가는 걸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다른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어요. 그런 영화들이 한국영화가 발전하는 데 더 큰 디딤돌이 되고 자양분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죠.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한 것 같긴 한데, 그렇게 특별하거나 새롭진 않았어요. <박하사탕>의 순임이만 해도 구원의 존재로 나왔는데, 그런 캐릭터는 기존에 많았고요. <바람난 가족>은 전통적 도덕이나 관습에 저항한 캐릭터이긴 한데,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영화들에서 있어왔고요. 차이라면 결말이 다르다는 거겠죠. 옛날 같으면, 자비로운 남편의 구원을 받거나 처벌받거나 그랬을 텐데 그렇게 가지 않았으니까요. 색다른 캐릭터라면 <오아시스>와 <사과>가 그렇죠.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도 착한 이미지로 승부하지 않는, 정면으로 ‘나 재수없어요’ 하고 도전하는, 새로운 캐릭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더 새롭고 독특하고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나타나고, 저도 그 안에서 할 일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오기민 | 대학 시절 연극을 했고, 영화는 <박하사탕> 오디션을 통해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고등학교 때 최민식 선배님이 출연하신 <에쿠우스>를 보고, 엄청난 쇼크를 받았어요. 대학 가서 연극반에 들어갔고, 극단 사무실로 출근하기도 했어요. 졸업하고 나서 다시 서울예대 연극과에 합격했는데, 남자친구가 오디션 광고지를 건네주더라고요. 그래서 난 연극할 사람이다, 왜 헛바람을 넣고 그러냐, 막 화를 냈죠. 그랬는데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더 화를 내기에 남자친구 화 풀어주려고 갔어요. 대규모 공개 오디션이었는데, 1차 보고 나와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뭔가 해보고 싶어졌달까. 그러다 합격했죠. 감독님한테 여쭤보니까, 언제 찍을지 모르겠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도 연극과 가는 건 권하지 않겠다 그러셔서, 등록금 찾아다 엄마 드리고, 시간을 가졌죠. 난관을 뚫고 절 캐스팅해주셨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오기민 | <박하사탕>은 사회적인 의미가 컸는데, 그런 것이 연기에 영향을 끼쳤거나, 생각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었나요.

=당시에는 무슨 얘긴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컷마다 감독님이 만족할 때까지 표현하는 게 과제였으니까요. 이 영화의 안티 스타 시스템은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쳤죠. 신인감독의 가능성을 같이 열어주고 발견해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배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감독님께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성욱 | <사과> 직전에 일상적인 연기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는데요. 배우는 연기 속에 자신을 숨기게 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지.

=저는 매끈하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보다 거칠고 센 것에 더 어울리고, 그런 표현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럴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사과>를 택했어요. 내용도 캐릭터도 특별하지 않은데, 모든 게 어우러져서 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요. 드러낸다는 것에 대해선, 진실이 중요하지 않은 풍토 때문에 더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작품 안에서는 빗장을 열어야 하는데, 평소 닫아오던 것이 버릇돼 걱정이 들기도 해요.

오기민 | 연기 공간을 넓게 주는 이가 있을 거고, 틀을 짜주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는 이도 있을 텐데, 그런 기준에서 감독님들 얘기를 해주세요.

=이창동 감독님과의 작업은 고난의 시간이에요. 가슴에 들어 있는 것을 코너에 몰아놓고 꼼짝 못하게 한 다음에 모든 걸 인정하고 직시하고 포기하게 하죠. 그리고 새로운 걸 연기하게 하세요. 뒤로 넘어갈 만큼 힘든데도 마약처럼 다시 당기는 그런 작업이에요. 임상수 감독님은 대사는 그대로 하게 하면서, 감독님과 비슷한 말투를 강요하세요. 몸은 자유롭게 해주는 편이고요.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님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표현하려는 바가 있었지만, 엄마 부분은 여자를 잘 모른다면서, 제게 많이 맡겨주었어요.

오기민 | 남자 감독들이 여자를 모르고 못 다룬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분들의 여성에 대한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대부분 남자 감독은 여성에 대해 판타지가 있거나, 자신을 억압하는 무서운 존재로 보더라고요. <바람난 가족> 때는 감독님을 많이 못살게 굴었어요. 멋있어 보이는 여자들의 모습을 모아서 만든 캐릭터에 불과하지 실제로 한국사회에 이런 여자는 없다고요. 여성에 대한 판타지에 강한 반면, 남자에겐 잔인하신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님과는 나이 많은 선생과 학생이 얘기하듯 해서 잘 모르겠지만, 역시 판타지가 많으시죠. 남자의 인생을 회개하게 하잖아요. 여자가 속이 넓은 인간이다, 라고 인정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성욱 | <바람난 가족>의 캐릭터는 <처녀들의 저녁식사> 강수연 캐릭터의 아줌마 버전인 것 같아요. 지적인 자유주의자의 판타지적 측면이 있었겠지만, 진보된 여성 캐릭터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강수연씨 역할인 은호정이랑 이름도 같아서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저는 김여진씨의 아줌마 버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몸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 그 여자가 얼마나 자유롭게 섹스했는지 나타나지 않아요. 감각적으로 정서적으로 예민해서, 몸이 원하는 것을 욕망을 찾아서 해결할 줄 아는 여자죠. 그게 그 여자의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살다보니 그게 어려운 일이란 걸 알겠어요.

오기민 | 가벼운 질문 하나 할게요. 촬영 없을 때 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어슬렁거려요. 차에 있는 거는 답답해서 싫어해요. 막내 스탭들 하드도 사주고, 다른 배우들 연기를 지켜보기도 하고.

오기민 | 자신이 연기한 부분을 전혀 안 보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남의 것까지 보는 배우가 있죠.

=저는 보는 편이에요. 마음속엔 늘 자격지심이 있어요. 영화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영화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연기는 컷할 때 즉각적으로 알거든요. 모니터 통해서는 다른 파트와의 조화를 보는 거죠. 그게 공부가 돼요.

이성욱 | 캐릭터와의 거리나 상호작용은 어떻게 하나요.

=제가 달려가서 애원하는 경우도 있고, 그쪽에서 먼저 오는 경우도 있고요. 이창동 감독님이 ‘문고리만 잡으면 된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처음부터 문을 열어서 여기 내 방이네 하고 들어가는 것보다 지켜보고 만져보고 상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문고리가 잡히는 순간에는 몸이 짜릿하고 너무 재밌죠. 근데 어떤 캐릭터는 문고리가 없고, 어떤 건 이상한 문고리가 달렸고 그래요.

오기민 | 평범하지 않은 역할들을 했는데, 그중에서 자신과 닮은 캐릭터는 뭘까요.

=다 비슷한 구석이 있죠. 내면을 따지면, <오아시스>의 한공주와 가장 비슷할 수도 있어요. 낙천적인 것도 그렇고, 가끔 잘난 척하는 것도 그렇고, 집에만 있는 것도 그렇고. 감독님이 한공주가 겉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안으로 다가가기 쉽도록 저랑 비슷하게 잡아주셨어요. 제 물건을 세트에 갖다놓게도 하셨고요. 그 캐릭터가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송강호 선배는 <효자동 이발사> 캐릭터가 가장 가깝다고 말씀하시지만.

오기민 |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보는데요, 최근 관심있는 이슈가 있다면.

=다 함께했으면 좋겠는데, 저에게 집중되는 건 부담스럽죠. 서운한 건 제 이름을 사용할 생각만 한다는 거죠. 더 다양한 사람들이 남들과 생각을 나누는 풍토가 됐으면 좋겠어요. 5월21일이 문화다양성의 날인데,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을 만든다고 알고 있어요. 잘 해결돼서 스크린쿼터가 힘을 받을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라모네 교수 초청 강연도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고요.

오기민 | 하고 싶은 영화, 역할이 있다면.

=몸을 많이 움직이고 싶어요. 다찌마리영화도 좋고, 스포츠영화도 좋고. 몸 움직이는 게 배우에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기력 떨어지기 전에 많이 해보고 싶어요. 좋은 영화 안에서 아름다운 배우가 되는 게 좋겠죠.

이성욱 | 매니지먼트가 영화 제작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를 계기로, 스타 파워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요.

=욘사마는 일본에서, 장동건씨는 중국에서, 산업적으로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 있잖아요. 상당히 유용하고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우로서 제 행보와 큰 관련은 없을 것 같네요. 작고 다양한 영화를 하는 게 제 목표예요. 할리우드는 배우들이 제작에 나서는 경우가 많던데, 그들이 제작하는 영화들 중에 색다른 게 많더라고요. 노하우를 갖고 있는 제작사가 살아남고 보호받아야겠지만,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같이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관객1 | 배우가 되길 권했던 눈썰미 있는 남자친구는 어떻게 됐나요? <효자동 이발사> 캐스팅 때 야구 보다가 불려나왔다고 들었는데, 어느 팀을 응원하던 중이었나요? <씨네21>은 스스로 대단한 매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배우들에겐 어떤 매체인가요.

=<박하사탕> 촬영 들어가면서 헤어졌는데, 결혼해서 아들 낳고 잘살고 있어요. 야구는 홈경기라고 대부분 LG를 응원하기에, 저는 두산을 응원했어요. 10 대 2로 이겼다는데, 끝까지 못 봐서 아쉽죠. <씨네21>은 영화하기 전부터 연정을 품었던 매체거든요. 그래서 발전된 모습 보이지 않아도, 사서 봐요. 영화 얘기할 수 있는 좋은 동료가 아닌가 생각하죠.

관객2 | <외계의 제19호 계획>이라는 단편에 출연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독립단편영화에 또 출연할 계획이 있나요.

=여섯편 정도 했어요. 최근에도 민동현 감독과 단편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일정이 안 맞았어요. <봄산에> 이지행 감독의 단편 <호랑이 프로젝트>에 ‘여배우 문소리’로 잠깐 출연하기도 했어요. 단편 작업은 영화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그것마저 메인스트림에서 가져가선 안 된다, 신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관객3 | 현재 남자친구는 있나요? <박하사탕> 때 먼길을 돌아가겠다 했는데, 그 맘이 변치 않았는지요.

=여배우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이고 정서적인 여러 가지 면을 표현해야 하고, 자유로워야 하는 직업인데, 공인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말로, 사생활에서까지 성인군자이길 바라더라고요. 저도 많은 남자 만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오랫동안 모든 한을 일로만 풀면서 살았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웃음) 그리고 돌아가든 질러가든 상관은 없어요. 산을 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무도 보고 꽃도 보고 산삼도 캐먹고,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관객4 | <호랑이 프로젝트> 엔딩 크레딧에 ‘간식 제공 문소리’라고 되어 있던데, 간식으로 뭘 제공했나요? 또 하나, 예전 <키노>에서 정성일 편집장이 즐겨하던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배우님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

=야식부장, 이런 직책 맡는 거 좋아해요. 피자, 밥, 정종 같은 걸 제공했어요. 영화란 뭘까요? 그거 몰라서 계속 하고 있는 건데. (웃음) 영화는 종교 같은 존재이고,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친구 같은 존재이고, 우리 가족의 밥벌이기도 해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해주는 친구이기도 하고, 무서운 선생님이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여러 가지 것이 돼주고 있어요.

<영화인 7인 특강 - 문소리 편> 전문보기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