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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프랑켄슈타인, <킨제이 보고서>

빌 콘돈이 만든 열성적인 전기영화 <킨제이 보고서>

빌 콘돈의 최신작, <킨제이 보고서>는 그의 전작 <갓 앤 몬스터>로 제목을 붙였어도 될 법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동물학자에서 성 연구가가 된 앨프리드 킨제이(1894∼1956)는 1940년대와 50년대 초기 인디애나대학 캠퍼스에서 활동하며 미국의 성적인 자아를 개혁한 일종의 프랑켄슈타인이었다.

대통령 선거 시기에는 좀 늦었지만 올해 가장 정치적으로 관련있는 영화인 콘돈의 열성적이고 지적으로 평범한 이 전기영화는 관용과 다양성을 위한 주장이다. 더욱 이례적으로 <킨제이 보고서>는 신념을 갖게 된 한 개인에 관한 영화다. 유명한 프로필에 안 어울리는 자극적으로 짧은 머리를 한 리암 니슨은 이 미국 개척가를, 만나는 모든 이의 성적인 개인사를 기록한 빛나는 위대한 영웅으로 연기한다(티 시 보일의 새 소설 <이너서클>(The Inner Circle)의 주제이기도 하다).

조르주 바타유는 그 피할 수 없는 분리성을 두고 킨지 프로젝트를 비판했다. “주제의 성적인 생활에 대한 관찰은 결코 과학적 객관성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킨지는 주제가 지닌 집착력으로 이런 비판을 무색게 한다. 초기 열정은 혹벌이었다. 사실 그의 학생 중 하나가 이 조그만 벌레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내놓아 그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아내(로라 리니)가 되었다. 이제 킨지는 관심 분야를 바꿨지만 “인간은 단지 좀더 크고 복잡한 혹벌일 뿐”이라는 신념은 그대로다.

반세기가 지났어도 킨지는 아직도 성혁명의 촉발과 중학과정 성교육, 포르노, 동성애자의 권리, 낙태 등을 망라하는 반도덕의 책임을 져야 할 청교도의 반항아로 간주된다. 동시대인이었던 빌헬름 라이히(프로이트의 동료이자 추종자였던 정신분석가. 성과 에너지에 대한 급진적 이론으로 유명- 역주)가 지지한 성적 급진주의처럼 킨지 프로젝트는 결국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로 몰리기도 했다. 아무도 킨지를 교도소에 넣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의 록펠러 재단 후원도 국회 조사로 철회되었다.

빌 콘돈의 경외심 담긴 전기영화는 두산 마카베예프의 고전영화, <WR: 유기체의 신비>처럼 에로틱한 주름이 잡혀 있지는 않다. 음악은 따뜻하고 아릿하다. 영화는 세쿼이워 나무들 사이를 훑어가며 적절한 우주적 끝맺음을 내린다. 콘돈에 따르면 킨지의 위대함은 압제의 형태인 성적인 무지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가 나중에 “모든 이는 다르지만 대부분은 같기를 원한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이 진실이 존 워터스의 최근 미국 내 지하드에 대한 공헌인 <더티 셰임>(A Dirty Shame)에 흐른다. 킨지가 “성적 절제, 금욕, 결혼 지연”을 세 가지 성적 변태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워터스가 인터넷을 누비며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 비밀 관습들을 마주쳤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킨제이 보고서> 중 영웅이 캠퍼스에서 결혼 준비 강습을 조직하고 남자(주로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자신의 참모)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발견하며 헌신적인 핵심 보조자들이 아내들을 바꾸게 하는 장면들은 순수하게 워터스식 영화의 내용들이다. “모두가 짓는 죄는 죄가 아니다”라는 영화에서 표방하는 도덕감 또한 그렇다. <킨제이 보고서>와 <더티 셰임>의 영화감독들을 맞바꿔도 되겠지? 어느 영화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꽤 잘 어울리는 동시상영영화들이 될 터다. 물론, 파란 주(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주들. 공화당은 빨간색, 민주당은 파란색으로 표현되었다- 역주)들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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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담형((2004. 11. 8.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