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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여자가 ‘무뇌충’이야? <에쥬케이터>

투덜양, <에쥬케이터>의 사고뭉치 여성 캐릭터에 분노하다

감독이 나쁜 건지, 내가 나쁜 건지, <에쥬케이터>라는 영화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만약 내가 나빴다면 <에쥬케이터>를 보는 나의 시선이 경직된 페미니스트의 것이어서인지, 정반대로 완전히 남성중심주의에 포획된 건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헷갈린다.

<에쥬케이터>를 보면서 나는 몇년 전 <씨네21>에 씹었던 <태양의 눈물>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는데 이 말 들으면 감독이 무지 열받을 거다. <태양의 눈물>은 안톤 후쿠아라는 감독의 이름이 무색하게 쌍팔년도 스타일로 막 달려가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열받았던 이유는 여주인공 모니카 벨루치 때문이었다. 그녀는 영화에서 지적인 여의사로 분하지만 행동은 질질 싸서 모든 걸 망치고 꼬이게 하는 주범이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터질 듯 끼는 상의 윗단추는 항상 서너개씩 풀어헤쳐 ‘나 섹시하지?’를 외치고 있었다. 여성 캐릭터를 수동적이다 못해 사고뭉치로 만듦으로써 언제나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그려내는 할리우드의 그 식상한 방식을 보기가 괴로웠고, 속도 없이 이런 영화에 좋다고 나온 모니카 벨루치도 한심했다.

그런데 할리우드 상업영화도 아닌데다가 혁명과 인생을 논하는 이 영화도 알고 보면 <태양의 눈물>과 비슷한 구도가 있다. 얀과 피터의 ‘교육’ 이야기를 들은 율이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 놈의 집에 쳐들어가자고 할 때 왠지 불안했지만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대충 작업을 끝내고 얀이 돌아가자고 할 때 율이 붙잡고 한판 놀아보자고 할 때부터 이미 알아봤다. 냉장고 속에서 꺼낸 술병을 들고 이웃에 노출될 수 있는 정원까지 나가는 등 아슬아슬하게 흥청망청하다가 경찰에 걸릴 뻔하고, 나중에 휴대전화까지 집에 놔두고 와서 결국 뒤에 수습 불가능한 사건을 초래하고야마는 모습이라니. <에쥬케이터>는 얀이나 피터와 다르게 율을 너무나 멍청하게 그린다. 대책없고 충동적이기는 세 젊은 것들이 마찬가지인데 언제나 실수를 저지르고 수습 못해 징징거리는 건 율이다.

둘의 삼각관계에서도 파렴치 점수 최고점을 기록하는 건 율이다. 율은 주인집 남자와 부딪치는 사고가 난 뒤 이미 마음속으로는 배신한 남자친구 피터를 불러 뒷수습을 시킨다(전화는 얀이 했다). 피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으면 적어도 다같이 지내야 하는 특수상황에서는 좀 은인자중해야 하지 않은가. 얀이 읍내로 식료품을 사러갈 때 쫓아가서는 분위기 좋은 야외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율을 보면서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지지배야 너는 양심도 없냐. 물론 사랑의 감정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지만, 그리고 배신은 율뿐만 아니라 피터의 오랜 친구 얀에게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보통 여자가 더 사리분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남자의 시선에 경도돼 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남자 사이에 끼어서 분란 일으키는 여성 캐릭터는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여성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라도 감독 및 작가 여러분, 이런 여성 캐릭터는 좀 삼가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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